AI 핵심 요약
beta- 국방부가 16일 자운대 국군사관학교를 공식 발표했다
- 육사는 태릉, 공사는 김포·대방동·청주로 옮겨갔다
- 해사는 서울서 시작해 진해에 자리 잡았고 입지 논의가 본격화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김포·대방동·청주로 이어진 공군사관학교 초기 교육 현장
안국동 '해사대'에서 진해 군항까지, 해군 장교 양성의 두 출발점
[서울=뉴스핌] 오동룡 군사방산전문기자 = 국방부가 16일 육·해·공군 사관학교를 통합한 '국군사관학교(가칭)'를 대전 자운대로 이전하는 방안을 공식 발표하면서, 자운대 부지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겁다. 자연스럽게 우리 군 장교 양성 기관이 해방 직후 어디서 시작됐는지에 '발상지(發祥地)'에 대한 관심도 다시금 커지고 있다.
태릉·진해·김포·대방동·청주 같은 지명들을, 각 군 사관학교가 실제로 어떻게 옮겨 다니며 자리 잡았는지 하나씩 짚어 보면 된다. 그렇게 정리해 놓고 나면, 앞으로 국군사관학교를 어디에 두는 게 맞는지에 대한 통합사관학교 입지 논의의 방향도 훨씬 선명해진다.

◆태릉 육군사관학교, 군사영어학교에서 국방경비사관학교로 = 육군사관학교의 뿌리는 1945년 12월 미군정이 설치한 군사영어학교에 있다. 군사영어학교는 광복군·일본군·만주군 출신 한국인 장교에게 영어와 미국식 군사훈련을 약 반년간 집중 교육해, 이후 국방경비대 간부와 초기 장교단을 공급한 기관이다.
군사영어학교는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 감리교신학교 자리에 있다가 1946년 4월 태릉 일대로 옮겨 운영됐다. 같은 해 5월 이 일대에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가 창설되면서 현재 육사 캠퍼스의 골격이 세워졌다.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는 그해 6월 조선경비사관학교로 교명을 바꿨다가, 1948년 정부 수립 뒤 9월 5일 '육군사관학교'라는 현 교명을 확정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6·25전쟁 이후 육군사관학교는 1950년 일시 휴교와 1951년 진해 임시 재개교를 거쳐, 1954년 태릉으로 복귀하면서 서울 노원구 공릉동 일대에 '국군의 산실'이란 이미지를 굳혔다. 6·25전쟁 과정에서 초기 생도·병력이 수도권 북부 방어에 투입됐다는 기억, 태릉 일대에 국방경비대·육군 병영이 모여 있었다는 사실 등이 뒤섞여 오늘날 태릉 육사에 대한 상징성을 키워 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포·방화동·대방동, 공군사관학교의 초창기 교육 현장 = 공군사관학교는 1949년 경기도 김포 일대에서 육군항공사관학교로 문을 열며 시작됐다. 당시 항공사관학교는 김포 비행장 인근 방화동에 처음 설치됐는데, 이 '방화동 시절'은 올해 4월 공군 발행 '공군지'를 통해 처음으로 자세히 공개된 바 있다.
조선경비대 항공부대와 항공기지사령부가 수색·덕은동에서 김포로 내려오는 과정에서 김포기지 주변에 항공사관학교가 꾸려졌고, 여기서 제1기 사관생도 97명이 입교해 흙바닥 격납고를 강의실로 쓰며 수학·물리·영어 등 기초학문과 비행 관련 교육을 받았다. 1949년 10월, 공군이 육군에서 독립하면서 학교 명칭도 '육군항공사관학교'에서 '공군사관학교'로 바뀌며 오늘날 공사의 출발점이 됐다.
1950년 6·25전쟁 이후 공군 관련 기관과 교육시설은 수원·대전·대구·진해·제주 등을 거치는 긴 피난시절과 이전 과정을 거쳐야 했다. 1958년에는 서울 영등포구 대방동(현 동작구 신대방동)에 대지 약 45만㎡, 연면적 2만2000여㎡ 규모의 공군사관학교 서울캠퍼스를 준공해 1980년대 중반까지 사관생도를 양성했다.
이 옛 공군사관학교 부지는 1985년 청주 이전 이후 서울시에 인수돼 1986년 5월 개원한 '보라매공원'으로 재탄생했으며, 공원 이름도 공군사관학교 상징이었던 '보라매'에서 따온 것으로 기록돼 있다.
당시 대방동·신길동 일대에는 공군본부와 해군본부 등 군 지휘부가 함께 모여 있던 시기가 있었고, 육군본부는 용산 일본군 부지(현 전쟁기념관 일대)를 사용했다. 3군 지휘부와 교육 시설이 서울에 위치하던 시기였다.
현재도 대방역 인근 여의대방로변에는 공군회관이 자리 잡고 있고, 보라매공원 주변에는 옛 공군사관학교·공군본부 이적지를 활용한 각종 공공·복지 시설이 들어섰다. 이러한 가운데, 공군본부 공보실 파견대가 대방동 일대에서 활동을 이어가며 과거 공군 지휘·교육 중심지였던 공간의 흔적을 유지하고 있다.
1983년 착공한 청주 캠퍼스는 1985년 12월 대방동에서의 이전을 완료했고, 1986년 5월 공식 개교 일정까지 마무리되면서 현재처럼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쌍수리 일대에 자리 잡았다.
공군사관학교는 청주기지 인근 산자락 아래쪽에 위치하며, 약 2km 떨어진 별도 군용 비행장인 성무비행장(성무기지)을 활용해 생도 초등비행교육을 실시하는 체계를 운용 중이다. 성무비행장은 공군사관학교 소속 훈련비행장으로, 공군교육사 예하 제212비행대대가 KT-100 훈련기로 기본 비행훈련을 담당하고 있다.

◆진해 해군기지, 해군사관학교와 해병대 장교의 근거지 = 해군사관학교는 1946년 1월 '해군병학교(海軍兵學校)'로 개교해 경남 창원시 진해구 남빈동 진해 해군기지 내에서 해군·해병대 장교를 양성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 이전 단계에는 서울에서도 해군 장교 교육을 시작한 흔적이 남아 있다.
손원일 제독 등 해군 창설 주역들은 1945년 해방 직후 서울 안국동 안동교회에 '해사대' 간판을 걸고 해사대본부를 발족시킨 뒤, 구 교통국 해사 등 서울 일대 해사 관련 시설을 활용해 초기 해군 간부 교육을 진행했다.
오늘날 '해군호텔'로 불리는 서울 영등포구 가마산로 일대와 남영·용산 주변은 해방 직후 해사대본부가 자리 잡았던 구 교통국 해사(정부 부처인 교통국 산하의 해사·해운 담당 부서), 그리고 이후 해군본부·해군회관·해군호텔로 이어지는 해군 조직과 복지 시설의 축이 형성된 공간이다. 흔히, 초창기 해군 장교 교육과 활동의 무대로 자주 언급된다.
이 일대에는 현재도 해군회관과 해군본부 공영주차장, 해군호텔 웨딩홀 등이 남아 있다. 현재 국방부와 해군본부 공보 조직이 이 구역을 출입기자·대외행사 지원 거점으로 활용하면서, 과거 해군 장교 양성·지휘의 흔적을 오늘까지 이어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해군사관학교의 뿌리를 서울과 진해가 함께 나눠 가졌다는 해석이 나오는 것이다.
진해 해군기지는 일본 해군이 조성했던 군항·기지 시설을 해방 이후 우리 해군이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계승·개량한 곳으로, 해군사관학교·해군기지사령부·각종 함정 계류시설과 훈련장이 밀집한 해군 교육과 작전의 중심지다.
진해 일대에서는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이 해상 훈련과 함정 승선 실습을 병행하며 교육받고, 매년 군항제·부대 개방 행사 등을 통해 해군 기지·사관학교가 대중에 공개되면서 "해군 장교는 진해에서 시작한다"는 인식과 공간적 이미지를 쌓아 왔다.
서울의 해사대·초기 교육 시설이 해군 장교 양성의 문을 열었다면, 진해 해군기지는 그것을 본격적인 해군·해병 장교 교육 체계로 정착시킨 '현실적인 발원지'로 기능해 온 셈이다.

◆자운대 통합, '발상지 논쟁'에서 '교육 현실'로 = 정부와 여당은 16일 당정협의회를 통해 대전 유성구 자운대에 군사 교육·훈련시설을 통합한 4년제 국군사관학교를 창설하기로 결정했다. 자운대는 육군·해군·공군대학과 합동군사대학 등 장교 교육기관이 이미 밀집해 있는 곳으로, 통합사관학교 부지로서의 후보로 오래전부터 거론돼 왔다.
이제 논의는 "어디가 더 상징적인가"라는 추상적 경쟁에서, "어디가 장래 전장 환경과 합동작전 교육에 더 적합한가"라는 현실적 비교로 옮겨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군사영어학교·국방경비사관학교가 태릉 일대에 남긴 건국기(建國期) 기억이 있다. 김포·방화동·대방동·청주로 이어진 공군사관학교의 이동 경로도 분명하다. 해군사관학교 역시 영등포 인근 '서울 시대'를 거쳐 진해 군항으로 내려가 오늘의 체계를 만들었다. 이런 흐름을 차분히 정리해 놓고 보면, 자운대 통합사관학교 입지는 '발상지 신화'가 아니라 역사·상징성과 교육·훈련 여건을 함께 따져봐야 할 대상이 된다.
기자의 시각에서 볼 때, 국방부 방침대로 자운대에 국군사관학교를 두고 이곳에서 평시 학과·공통 교육을 맡기는 구상은 현실성이 있다. 공군은 지근거리에서 청주 비행장이 붙은 기존 교육·훈련 인프라를 수시로 연계 활용할 수 있을 것이고, 해군은 진해 군항이라는 해군 특유의 천혜 조건을 그대로 살릴 수 있다. 육군은 전남 장성 상무대의 보병·포병·기갑·공병 등 전투병과 학교가 모인 '실전적' 야전 훈련장을 가까운 거리에서 활용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종합하면, 자운대 국군사관학교의 입지만 놓고 보면 '나쁜 선택'이라고 단정하긴 어렵다. 통합사관학교 입지 논의는 그 졸업생들의 '추억의 정치학'을 한꺼풀 벗겨내고, 앞으로의 '전장'과 '교육 현실'을 기준으로 냉정하게 살펴야할 사안이기 때문이다.
gomsi@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