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조달 계획 전년比 5조원 급증
번 돈으로 이자 절반만 감당
사채 발행 승인제 등 도입 필요성도 제기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올해 채권 발행 한도가 20조원까지 확대되면서 재무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한층 커지고 있다. 3기 신도시 조성 등 정책사업 수행을 위한 선투자 부담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가운데,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한 분양 및 대금 회수 지연이 겹치며 자금 운용 여건은 갈수록 악화되는 양상이다. 이로 인해 채권 발행 의존도가 높아지는 구조적 악순환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 조차 충당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공사채 발행이 확대되는 점은 재무 리스크를 더욱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일각에서는 경영 혁신 없이 차입 중심의 자금 조달이 지속될 경우 공기업 특유의 도덕적 해이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 들어올 돈 없는데 나갈 돈은 늘어…돌파구는 채권뿐?
30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ALIO)에 따르면 LH는 지난 3년간 꾸준히 채권 발행액 한도를 늘려왔다. 2023년 13조원에서 2024~2025년에는 15조원으로 15.4% 늘었다. 올해 한도는 20조원으로 조정하며 직전 한도 대비 5조원 늘렸다. 2023년과 2024년의 채권 발행 규모는 각각 10조9000억원, 8조9000억원이었다. 지난해 예상 발행 규모는 10조8000억원 정도다.
LH는 매년 연간 자금 수지 전망과 중장기 재무 목표를 기준으로 채권 발행 한도를 설정한다. 당해 연도 사업계획에 따른 보상비, 공사비 등 필수 투자 규모에서 예상되는 현금 회수액을 뺀 부족분을 핵심 기준으로 삼는다. 법적으로는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의 5배 이내에서 발행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기획재정부와 협의하는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의 부채비율 억제 목표치를 고려해 적정 한도를 도출한다.
연말이나 연초 정기 이사회에서 1년간의 공식적인 사채 발행 한도액을 최초로 의결하지만, 중간에 자금 경색이 심각해지면 임시 이사회를 개최해 조정할 수 있다. 실제로 2023년 당초 6조5000억원이던 한도를 13조원 이상으로 100% 상향한 바 있다.
20조원의 신규 발행은 전례 없는 대규모 조달 계획으로 꼽힌다. 올 1~3월(27일 기준) 발행액은 2조7829억원이다. 상환액은 7조7000억원으로 계획했다.
LH 채권 발행 한도가 갑자기 이렇게 늘어난 이유는 3기 신도시 선투자 압박과 택지 대금 회수 지연이 맞물린 결과다. 2023년부터 3기 신도시 토지 보상 등 정부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한 막대한 초기 비용 지출이 본격화됐다. 그러나 고금리와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사태로 민간 건설사들의 택지 대금 연체가 속출하면서 현금 유입은 부족해졌다. 들어올 돈은 막히고 나갈 돈은 폭증하는 구조에서 채권 발행이 가장 용이한 자금 조달 수단이 된 셈이다.
LH 역시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LH 관계자는 "개발사업은 초기 대규모 투자 이후 장기간에 걸쳐 자금이 회수되는 구조인 만큼, 신규 사업이 집중되는 시기에는 부채 증가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공주택 및 산업단지 조성에 따른 보상 착수, 주택 건설 및 매입 물량 확대 등으로 투자 규모는 지속적으로 늘어날 전망이지만, 부동산 및 건설 경기 침체로 판매대금 회수가 둔화되면서 유동성 관리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기존 미매각 부지에 대한 판촉 강화와 신규 토지 판매 전략을 통해 재고자산 회전율을 높이고, 채권 조달원 다변화 등 자금 조달 구조 개선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 차입금 의존도 40% 넘겼다…공사채 발행 통제 강화 목소리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개선됐음에도 불구하고, 이자비용을 감당하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인 상황이다. 2024년 기준 LH의 영업이익은 약 3404억원으로 증가했지만, 연간 이자비용(금융원가)은 6800억원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업이익으로 금융비용을 얼마나 충당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자보상배율은 약 0.5 수준에 그친다. 이는 벌어들인 이익으로 이자의 절반가량만 상환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일반 기업의 경우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될 수 있는 수준이다.
같은 기간 LH의 총차입금은 97조4307억원, 부채비율은 217.7%다. 차입금 의존도는 41.7%까지 치솟아 재무 안정성에 경고등이 켜졌다. 가중되는 이자 부담이 향후 정책 사업 추진의 뇌관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상반기에만 금융원가가 5800억원대에 달할 것이란 예상이 나오면서, 수익이 발생하더라도 막대한 이자 비용이 이를 고스란히 잠식하는 악순환이 고착화됐다는 비판이 고개를 든다.
업계에선 과도한 채권 발행으로 인해 LH가 부채를 바라보는 시선이 안일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공기업 부채의 다수는 공사채 발행 방식으로 생겨난다. 2020년 기준 공기업은 부채의 약 50% 이상을 공사채 발행으로 일으켰다. 그 결과 한국의 비금융 공사채 시장은 국채 시장의 절반에 육박할 정도로 커졌다. 주요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현상이다.
황순주 KDI 선임연구위원은 "한국 공기업은 건전성이나 수익성 등 자체 펀더멘털과 상관없이 거의 항상 최상의 신용도를 인정받는데, 이 같은 암묵적 지급보증이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로 이어진다"며 "유사시 정부의 구제금융이 거의 확실하면 공기업은 재무건전성이나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해 애써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꼬집었다.
LH 같이 재정건전성이 취약한 공공기관의 금융부채 조달 관련 의사결정 체계 상향 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1986년 이후 공기업의 사채 발행은 주무부처 장관의 승인 사항에서 해당 기관의 이사회 의결 사항으로 대부분 변경됐다. 공기업의 자율경영과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실질적으로 기관의 효율성 증대보다는 무리한 외형 확장으로 이어질 경우 재무건전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 또한 나온다.
박성용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재무건전성이 매우 취약한 공기업의 사채 발행 등 금융부채 관련 의사결정 사항을 주무부처 장관의 승인 사항으로 상향 조정하거나,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심의 및 의결을 거치도록 관련 법률 개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이 경우 공기업의 자율·책임경영 체제와 균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chulsoofriend@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