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소송법 설계도는 여전히 공백
권한 이동보다 '책임 구조' 설계해야
[서울=뉴스핌] 박민경 기자 = 미국 법정 드라마를 보다 보면 한국 시청자들이 자주 떠올리는 장면이 있다. 증인석에는 사건을 직접 수사한 경찰관이 서서 검거 경위와 증거 확보 과정을 차분히 설명한다. 변호인은 그 진술의 허점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위법 수사 여부와 증거의 신빙성을 따져 묻는다. 그 사이에서 검사는 비교적 조용하다. 필요할 때만 질문을 이어가거나 쟁점을 정리하며 공소를 다듬는다. 사건의 사실관계를 직접 형성하는 존재라기보다, 법정에서 공소를 완성하는 법률가의 모습에 가깝다.
이 장면은 미국 형사사법 시스템이 어떤 구조로 작동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 법원을 경험한 법조인들에 따르면, 법원 복도의 풍경부터 다르다고 한다. 법원 건물 안에 검사 사무실이 함께 있는 곳도 적지 않고, 방청석에 앉은 경찰관들 역시 경호 인력이 아니라 담당 사건의 증언을 위해 출석한 수사관들이다. 이들은 수사 단계에서 자신이 내린 판단이나 조치를 법정에서 직접 설명하고 방어해야 하는 당사자다.

여기서 미국 형사사법 체계의 중요한 특징이 드러난다. 미국은 원칙적으로 '수사는 경찰, 기소는 검사'라는 분업 구조를 취한다. 그러나 그 분리는 단순한 권한 분산이 아니라 긴밀한 협력 위에서 작동한다.
검사는 수사 초기부터 사건에 관여해 법정 증거능력을 염두에 둔 조언을 제공한다. "이 압수수색 방식은 법정에서 증거로 인정받기 어렵다", "이 진술은 위법 수집 증거 배제 위험이 있다"는 식이다. 경찰 역시 처음부터 재판을 고려하며 수사를 진행한다. 영장 청구, 피의자 조사, 증거 확보 과정은 결국 법정에서 스스로 설명하고 방어해야 할 절차이기 때문이다. 권한은 분리돼 있지만, 사건은 애초부터 '공동 프로젝트'로 설계되는 구조라는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 추진되는 검찰개혁 역시 수사와 기소의 완전한 분리를 지향한다. 검찰청을 폐지하고 수사는 경찰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이, 기소와 공소 유지는 공소청이 담당하는 구조의 입법 절차도 완료됐다. 검찰이 더는 직접 수사기관이 아니라 공소 유지에 집중하는 기관으로 바뀐다는 점에서 "한국에서도 미국식 '조용한 검사'가 등장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일각에서 나온다.
하지만 제도는 이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현재 논의의 초점은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어디까지 없앨 것인가", "어떤 사건을 중수청으로 이관할 것인가"에 맞춰져 있다. 미국 사례가 던지는 질문은 다르다. 수사와 기소가 분리된 이후, 두 기관이 어떻게 협력하고 책임을 나눌 것인지, 그 관계를 어떤 법적 틀 위에서 설계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현행 형사소송법에는 이 관계를 구체적으로 규율할 설계도가 아직 충분히 제시되지 않았다.
게다가 현재 체계에서도 검찰과 경찰 사이 사건이 오르내리는 '핑퐁 수사'는 반복적으로 지적돼 온 문제다. 보완수사를 둘러싼 갈등, 송치 사건 재수사 요구, 사건 이관을 통한 책임 회피는 수사 지연으로 이어지기 쉽다. 여기에 중수청과 공소청까지 더해진다면, 수사와 기소의 분리가 오히려 사건 책임의 분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커보인다. 각 기관이 서로 "당신들이 더 했어야 했다"고 책임을 미루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검찰개혁은 특정 기관의 힘을 빼는 작업이 아니다. 형사사법 체계 전체의 균형을 다시 설계하는 과제다. 미국 법정에서 경찰이 증인석에 서고 검사가 조용히 공소를 정리하는 장면은 검찰 권한 축소의 결과가 아니라 수사와 기소, 권한과 책임의 균형을 오랜 시간 다듬어 온 결과다.
한국의 검찰개혁이 진정한 의미의 개혁이 되려면 질문의 순서를 바꿔야 한다. 누가 수사를 맡을지를 넘어, 분리된 수사와 공소가 어떻게 하나의 팀으로 작동할 것인지, 확대된 수사 권한을 누가 어떻게 감시하고 통제할 것인지부터 물어야 한다.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권한만 이동한다면, 이번 개혁이 정치적 구조 재편에는 성공하더라도, 법정의 풍경과 국민이 체감하는 형사사법의 질은 여전히 제자리일 것이다.
미국 법정의 '조용한 검사'는 검찰의 힘을 뺀 결과물이 아니다. 수사와 기소, 경찰과 검찰, 권한과 책임의 균형을 정교하게 설계해 온 제도의 성과다. 그 균형을 가능하게 한 형사사법 시스템의 설계도가 우리나라 검찰개혁에 반드시 필요하다.
pmk1459@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