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로 좌회전 방향지시등. 10대중 6대 미준수, 안켜도 되는 신호로 인식
사전 신호 미이행, 교통사고 위험 높여...'습관이 곧 안전'
[서울=뉴스핌] 정태선 기자 = 도로 위 운전자들 사이에서 방향지시등(깜빡이)이 반드시 준수해야 할 법규가 아닌, 상황에 따라 생략해도 그만인 '선택 사항'으로 전락하고 있다.
특히 교차로 좌회전 시에는 운전자 10명 중 6명이 신호를 아예 켜지 않거나 이미 회전을 시작한 뒤에야 뒤늦게 점멸하는 등 현행법상 엄연히 규정된 '사전 신호' 의무가 현장에서는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강호인 외)과 삼성화재 교통안전문화연구소(소장 정영호)가 17일 발표한 '방향지시등 준수 여부 현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교통법규 준수 의식은 사실상 낙제점 수준이었다.
지난 2월 서울과 경기 지역 10개 지점에서 실시한 조사 결과, 주행 중 차로 변경 시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은 차량은 42.4%(974대 중 413대)에 달했다.
특히 교차로 좌회전 구간은 상황이 더욱 심각해, 조사 대상 1,214대 중 59.2%인 719대가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37.3%는 방향지시등을 아예 켜지 않은 채 교차로를 통과했으며, 좌회전 진입 후 뒤늦게 신호를 켠 차량도 21.9%에 달했다.
주목할 점은 버스·택시 등 사업용 차량의 좌측 방향지시등 위반율이 71%를 기록해 비사업용 차량(30%)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를 보이며 안전불감증의 민낯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확인된 미준수 사례는 매우 구체적이고 위험천만했다. 안실련 이윤호 사무처장은 "차로 변경이나 좌회전은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순간임에도 상당수 운전자가 방향지시등을 미리 켜지 않거나 아예 사용하지 않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 처장은 "교차로 좌회전의 경우 정지선에서 대기할 때는 켜지 않다가 출발과 동시에 점멸하는 사례가 많았는데, 이는 주변 교통 주체들에게 운전자의 의도를 사전에 알리지 못하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차로 변경 상황에서도 이미 차로를 변경한 뒤 형식적으로 점멸하거나 변경 직전에 아주 짧게 켜는 모습이 빈번해, 법에서 요구하는 '사전 신호'의 의미가 현장에서는 전혀 인식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운전자들이 깜빡이를 외면하는 사유는 지극히 자의적이고 안일했다. 한국도로교통공단 설문 결과 '귀찮아서(29.7%)'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주변에 차량이 없어서(27.4%)', '지정차로라 켤 필요가 없어서(13.8%)' 등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치명적인 비극과 막대한 사회적 비용으로 직결된다. 지난 2021년 서울 금천구에서는 방향지시등 없이 1차로로 급하게 끼어든 차량으로 인해 오토바이 운전자가 사망하는 참변이 발생하기도 했다.

법원과 보험업계 역시 이를 중대한 과실로 간주해, 방향지시등 미점등 사고 시 해당 운전자의 과실 책임을 최소 80%에서 최대 100%까지 묻고 있다. 2017년 대표적 판례에서 재판부는 "도로교통법상 의무 위반은 안전운전을 저해하며 사고 예방 가능성을 완전히 박탈한 행위로 90% 이상의 과실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화재 교통안전문화연구소 임채홍 수석연구원은 "방향지시등은 밀폐된 자동차 안에서 다른 차량과 대화하는 중요한 수단이며, 부적절한 점등은 불필요한 사고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임 수석연구원은 이어 "실제 단속이 없더라도 습관적으로 지켜야 할 법적 의무"라며 "개인의 습관 개선과 더불어 관계 기관의 홍보·교육, 시민사회 차원의 감시가 함께 이루어질 때 도로 위 안전 수준이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해외 선진국의 경우 미국은 위반 시 최대 40만 원 상당의 벌금과 보험료 할증을 부과하며, 일본과 호주 역시 차로 변경 수 초 전부터의 점멸을 법으로 엄격히 강제하고 있어 우리와 대조를 이룬다.
windy@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