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김일성(金日成)은 이날(6월 4일) 밤 9시경 보천보 뒷산에서 박금철·박문상이 동원한 인원 67명을 16개 반으로 편성하여 약탈한 물자를 지게 등으로 운반하는 임무를 부여하였다.
습격 준비를 모두 마친 김일성(金日成) 부대는 밤 10시 일제히 공격을 개시하였다. 제4대장 오중흡이 통신선 차단에 성공했다는 신호를 시작으로 제2대가 경기관총을 주재소 정문에서 안으로 난사했다. 주재소에는 경찰 6명이 보직돼 있었으나, 이날 밤은 2명만이 근무하고 있었다. 1명은 총상을 입었고, 1명은 도주하여 이웃 주재소로 달려가 혜산 본서로 상황을 보고했다. 밤 11시 25분경이었다.

이러는 동안 나머지 6개의 대는 각각의 임무를 방해받지 않고 수행했다. 경찰 주재소 무기고에서 경기관총 1정, 장총 6정, 대형 모젤 권총 1정, 소형 모젤 권총 1정, 탄약 1170발 등을 탈취했다.
농사시험장, 영림서(營林署) 삼림보호구(森林保護區), 소방서를 파괴하였다. 면사무소, 보통학교, 우체국에 불을 질렀다. 약탈대는 주택, 상점, 병원 등에서 현금, 의료기기, 약품, 곡물, 천, 잡화 등 당시 현금으로 환산 시 15,562원(圓) 상당의 물품을 닥치는 대로 강탈하였다.
주민들은 사방에서 솟아오르는 불길 속에서 떨고만 있었다. 김일성(金日成)은 약 1시간이 지난 밤 11시경 나팔을 불어 철수를 명령하였다.
제6대장 권영벽은 대원들과 습격 및 약탈을 독려하며 다니다가 철수 나팔 소리가 들리자, '일제를 몰아내고 대중 정부를 세우자! 동북항일연군 제6사 북조선원정대(北朝鮮遠征隊) 사령(司令) 김일성(金日成)'이라는 내용의 '포고문' 6매와 '재만한인조국광복회 10대 강령' 약 50매, '일본군에 복무하는 조선인 병사에 고함' 수십 매, '재만한인반일대중(在滿韓人反日大衆)에 격함' 수십 매 등의 전단을 살포하였다.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은 대원들이 철수를 완료하자, 박금철·박문상이 데리고 온 국내 공산주의자들이 가지고 온 약탈품을 점검한 다음, 먼 곳에 사는 사람은 돌려보내고, 나머지 인원은 장백현 23도구까지 약탈 물품을 운반하도록 하였다.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의 보천보 습격은 장백현 일대와 장백현과 인접한 국내에서 벌인 보급 투쟁 사건 중 가장 규모가 컸다. 또한 이 사건은 중국 공산당 동북항일연군 속 한인(韓人)에 의한 보급 투쟁 중, 1935년 2월 13일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제1사장 이홍광(李紅光) 부대의 평안북도 동흥보 습격에 이은 두 번째이자, 마지막 큰 사건이었다.
김일성(金日成)의 보천보 습격은 이홍광(李紅光)의 동흥보 습격 방식과 비슷했다. 그러나 2가지 측면에서 달랐다.첫째는 이홍광 부대처럼 사람을 납치하지 않았다. 재만한인조국광복회 지하 조직이 있었으므로, 사람 납치 필요성이 없었다.
둘째는 지하 조직 지원으로 습격이 쉬웠고, 물자 강탈 효과도 컸다. 하지만 재만한인조국광복회의 이 보천보 습격 지원 사업은 처음이자 마지막 역할이 되고 말았다. 1938년 일본 경찰에 의한 혜산 사건이 발생하여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