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내식은 날카로운 식기 필요 없는 '샌드위치'
[인천=뉴스핌] 박성준 기자 = 23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른 한국 국적 피의자 73명이 천으로 가려진 수갑을 찬 채 고개를 숙이고 한 줄로 모습을 드러냈다. 경찰관들은 송환자 1명당 2명씩 배치돼 양팔을 붙잡고 이들을 호송차량이 대기 중인 주차장 방향으로 연행했다. 범죄 피의자 국내 송환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다.
이들을 태운 대한항공 KE9690편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출발해 오전 9시45분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10시55분쯤이 되자 공항 입국장에는 송환자들이 줄지어 모습을 드러냈다.

송환자들에 대한 체포영장은 전세기 탑승 직후 집행됐다. 이들은 '미란다 원칙'을 듣고 곧바로 기내에서 체포됐다. 국적법상 국적기 내부도 대한민국 영토이기 때문이다.
전세기 기내식으로는 샌드위치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포크나 나이프 등 날카로운 식기가 필요 없는 간단한 음식을 제공한 것이다.
인천국제공항에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삼엄한 경비가 펼쳐졌다. 입국장에서 호송버스가 대기 중인 주차장으로 가는 통로까지 통제선이 설치됐다.
이날 동원된 경찰 인력은 181명. 형광색 경찰복을 착용한 경찰들은 짝을 이뤄 이동 동선 곳곳에 대기하고 있었고, 이들이 입국장 게이트를 빠져나와 승합차에 탈 때까지 동선에 맞춰 경찰 기동대원들도 배치돼 있었다.
붉은색 베레모와 검은색 복장을 한 경찰특공대 역시 소총을 무장한 채 입국장 인근에 대기하고 있었다.
송환자들은 공항 출구 앞에 대기하던 버스 10대와 승합차 7대 총17대에 나눠 탑승했다. 경찰은 이들을 부산경찰청(49명), 충남경찰청(17명) 서울경찰청(3명), 울산경찰청(2명), 인천경찰청(1명), 경남경찰청(1명) 등으로 분산해 수사할 예정이다.
정부는 앞서 지난해 10월에도 대한항공 전세기를 투입해 캄보디아에 구금돼 있던 한국인 범죄자 64명을 한꺼번에 국내로 송환한 바 있다. 이번 조치는 이를 웃도는 규모로, 단일 국가에서 이뤄진 범죄인 동시 송환으로는 최대 사례다. 송환된 피의자의 성별은 남성 65명, 여성 8명이다.
이번 송환 명단에는 캄보디아 범죄단지에서 120억원대 로맨스스캠 범행을 주도한 한국인 부부 강모씨(32)와 안모씨(29)도 포함됐다. 이들은 데이팅앱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접근한 뒤 "함께 투자 공부를 하자"고 유도하는 방식으로 104명에게서 총 120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 부부는 지난해 2월 3일 캄보디아의 한 범죄단지에서 현지 경찰에 체포됐지만, 넉 달 뒤인 6월 다른 범죄조직이 현지 경찰에 금품을 건네며 이들을 빼돌린 것으로 전해졌다.
석방 이후에는 눈과 코 성형수술을 통해 외모를 바꾸며 신분 세탁을 시도한 것으로 파악됐다.
부부가 풀려났다는 정보를 입수한 법무부는 지난해 7월 캄보디아에 인력을 급파해 현지 경찰과 공조, 이들을 재체포했다.
그러나 재체포 이후에도 캄보디아 당국은 한국에 체류 중인 반정부 인사 부트 비차이(37)를 송환하라고 요구하며 이들 부부의 인도를 거부했다. 이로 인해 송환 절차가 장기간 지연됐지만, 최근 캄보디아 측이 인도 방침을 밝히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이번 송환은 범죄인 인도 공조 중앙기관인 법무부를 중심으로 한 정부의 집요한 사법 공조의 성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법무부 국제형사과 소속 담당 검사는 지난해에만 두 차례 캄보디아를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검사는 캄보디아 법무부 장관을 직접 만나 부부에 대한 신속한 송환을 요청했고, 이후에도 캄보디아 법무부 관계자들과 수시로 소통하며 송환 필요성을 설득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송환 대상자에는 ▲미성년자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뒤 캄보디아로 도주해 스캠 범죄에 가담한 도피사범 ▲투자 전문가를 사칭해 사회 초년생과 은퇴자를 상대로 약 194억원을 편취한 사기 조직의 총책 ▲스캠 단지에 감금된 피해자를 인질로 삼아 국내 가족을 협박하고 금품을 갈취한 반인륜적 범죄 조직원 등도 포함됐다.

유승렬 경찰청 수사기획조정관은 이날 입국장 인근에서 브리핑을 통해 "로맨스스캠 범죄자 15명은 대한민국 경찰이 주도하는 국제공조 협의체의 합동 작전으로 체포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까지 파악된 범죄 피해 규모는 피해자 86명, 피해 금액은 무려 486억원에 달한다"며 "이들은 부산경찰청 49명, 충남경찰청 17명 등 관련 경찰관서로 호송돼 구체적인 범죄 혐의와 여죄를 수사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엄정 수사는 물론 범죄 수익 환수 등 피해 회복을 위한 후속 조치를 신속히 진행하겠다"고 강조했다.
법무부는 이번 송환 인원 중 성형수술로 신분을 세탁한 이른바 '120억 부부 사기단' 2명에 대해 범죄인 인도 절차를 통해 별도로 송환했다고 밝혔다. 전성환 법무부 국제형사과 검사는 "오늘 송환 인원 중 안모 씨와 강모 씨 등 2명은 범죄인 인도 절차를 통해 송환됐다"며 "이들은 딥페이크를 활용한 로맨스스캠 수법으로 104명에게서 120억 원을 편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법무부는 조약 및 국내법상 대한민국 국제공조 중앙기관으로서 지난해 5월 캄보디아에 범죄인 인도를 청구했고, 이들이 지난해 여름 교도소에서 석방됐다는 첩보를 입수한 뒤 장관 지시로 담당 검사를 급파해 현지 장관과 면담하며 설득에 나섰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동남아 공조 네트워크를 통한 10차례 이상의 화상회의와 지난해 12월 유엔마약범죄사무소 워크숍 개최 등 다양한 외교적 노력을 통해 조건 없는 송환을 이끌어냈다"고 설명했다.

parksj@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