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北 국가성 인정해야" 발언 쏟아내
위성락 안보실장은 "정부는 지지·인정 않아"
"김정은 대남선동에 동조 모양새" 지적도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북한 김정은이 한국을 '제1의 주적'으로 비난하며 남북관계를 '국가 대 국가'로 운운하고 있는 가운데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연일 "남북은 두 국가"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헌법상 책무인 남북통일 문제와 관련한 주무 장관의 이런 태도를 두고 일각에서는 남북 대화와 교류에 집착해 김정은의 대남 적대와 차단벽 치기 주장에 동조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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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열린 긴급 현안질의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2025.09.08 pangbin@newspim.com |
정 장관은 지난 25일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남북은 사실상의 두 개 국가이며 이미 두 국가, 국제법적 두 국가"라고 주장했다.
또 한 여론조사를 인용해 "50∼60% 국민이 북한을 국가라고 답하고 있다"면서 "국민 다수가 (북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정 장관은 이어 "두 국가라는 것과 북의 국가성을 인정하는 게 영구분단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며 "현실적이고 실용적 관점이며 유연하게 남북관계를 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잠정적으로 통일을 향해가는 과정에서 생긴 특수관계 속에 국가성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펼쳤다.
북한 김정은이 '통일'과 '민족'을 지우겠다면서 들고 나온 두 국가론에 사실상 찬동하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통일을 포기하는 건 아니라는 식의 논리를 편 것이다.
정 장관이 최근 축사와 연설, 언론 발언 등을 통해 잇달아 이 같은 발언을 쏟아내면서 대통령실과 정부 안팎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북‧대외 발언 기조와도 맞지 않은데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북접근이나 이를 위한 국민여론 통합과 수렴에도 부담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23일(현지시간) 뉴욕에서 개최한 간담회에서 "정부는 두 국가론을 지지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며 두 국가론에 선을 그었다.
정 장관이 거듭 주장하고 있는 '두 국가론'이 이재명 정부의 입장과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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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북한 국무위원장 겸 노동당 총비서인 김정은이 지난 11~12일 국방과학원 장갑방어무기연구소와 전자무기연구소를 둘러봤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3일 전했다. 사진은 전자무기 시범을 살펴보는 모습. 뒤쪽으로 군복 차림의 김정식 노동당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이 보인다. [사진=조선중앙통신] [2025.09.13 yjlee@newspim.com |
하지만 정 장관은 이런 대통령실의 입장에 아랑곳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는 정부 내에서도 '두 국가론'이 엇박자를 내고 국민 비판이 제기되는데 대해 "소모적 논쟁"이라고 주장하면서 "이 대통령이 밝힌 대로 대화‧교류를 어떻게 복원할지와 오랜 꿈인 4강의 교차 승인을 완성해 북미수교, 북일수교를 만들어 낼 것인가 하는데 우리 앞의 실천적 과제"라고 말했다.
장 장관은 기자들에게 "오늘 이 시간에도 북한 우라늄 원심분리기가 4곳에서 돌아가고 있으며 정보기관 추정으로는 고농축우라늄(HEU) 보유량은 2000㎏"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제재를 통해 북한이 핵을 포기하게 하는 건 가능성이 없다"며 "돌파구는 북미 정상회담"이라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 연구기관의 박사는 "북핵과 미사일 도발은 물론 북한에 의해 우리 군 장병이 사망한 천안함 폭침 도발과 연평도 포격 만행 등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내놓은 대북제재를 통일장관 스스로 무용론을 제기하는 건 북한과 국제사회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고 비판했다.
정 장관의 잇단 주장에 지난 19일에는 김천식 통일연구원장이 "북한이 남북 간 특수관계를 부정하고 '적대적 두 국가론'으로 변경했다고 해서 우리까지 '두 국가론'으로 변경하는 건 매우 잘못됐다"고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통일장관의 발언에 유관 국책 연구기관장이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서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진 것이다.
이처럼 정부 내부에서조차 조율되지 않은 주장을 쏟아내는 정 장관의 행보를 두고 부임 초기부터 '탈북민' 용어를 폐기하고 다른 용어를 쓰겠다고 밝혔다가 강한 여론 반발에 직면한 상황에서 조급함을 드러낸 것이란 진단이 나온다.
통일부 내부에서는 20년 만에 통일 장관으로 다시 부임한 정 장관이 그동안의 남북관계 지형변화 등을 읽지 못하고 2005년 재임 당시 문을 연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낡은 틀에 집착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무엇보다 장관의 이런 주장이 이재명 정부와 통일부 정책추진에 대한 신뢰를 갉아먹는 결과를 초래해 부담을 떠안게 되는 것 아니냐는 측면에서다.
yj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