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사실심 기능 약화 우려...공론화 필요"
1심 민사합의 재판 기간 10년 만에 두 배 늘어
"법원, 사실심 강화에 적극적이었나 돌아봐야"
대법 "법원은 일관되게 법관·예산 증원 요청해왔다"
[서울=뉴스핌] 홍석희 기자 = 여당이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대법관 증원'을 추진하자, 전국 법원장들이 "사실심(1·2심) 강화가 우선 과제"라며 반발했다.
법조계에선 신속히 재판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하급심인 사실심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다만 사법부가 이 시점에 사실심 강화를 강조하는 것을 두고 "대법관 증원을 회피하기 위한 반대 논리로 활용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현행 사법 체계는 법원이 사실관계와 법률문제를 함께 심리하는 사실심과 법원이 사실 판단을 하지 않고 이미 인정된 사실에 대한 법률 적용이 올바른지 여부만 판단하는 법률심(3심·대법원)으로 나뉜다. 법원장이 강조하는 것은 하급심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 12일 약 7시간 30분 동안 전국 법원장회의 임시회의를 열고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사법개혁에 대해 논의했다. 대법원은 회의 이후 "사법 독립은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하며 사법부가 배제된 제도 개편에 우려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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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이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대법관 증원'을 추진하자 전국 법원장들이 "사실심 강화가 우선 과제"라며 반발했다. 사진은 전국법원장회의 임시회의가 지난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회의실 401호에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는 모습. [사진=뉴스핌 DB] |
'대법관 증원'은 여러 사법개혁 방안 중에서도 핵심 의제다. 민주당은 현재 14명인 대법관 수를 26명으로 증원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장들은 대법관 증원보다 사실심 강화가 우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법관을 늘린다고 해서 사실심에서 대법원으로 상고가 줄어들지 미지수다. 법원장들은 대법원의 업무 과중 해소를 위해 대법관 증원 필요성에 대해 대체적으로 공감하는 기류다. 다만 4명 정도의 소규모 증원이 적정하다는 의견이 법원장 회의에서 나오기도 했다. 또 대법관 증원에 예산이 소요될 경우 사실심 강화를 위한 법관 충원이 더욱 지연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법조계에서는 그동안 사실심 재판이 지연되는 추이가 뚜렷해진 만큼, 사실심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사법연감에 따르면 1심 민사합의 사건의 평균 처리 기간은 2014년 252.3일에서 2023년 473.3일로 221일 늘었다. 두 배 가까이 재판 기간이 길어졌고, 소를 제기한 뒤 판결을 받기까지 1년 3개월 이상이 걸렸다.
2심도 1심과 같이 10년 전보다 사건 처리 기간이 대폭 늘었다. 고등법원 민사합의 사건은 286.1일에서 323.8일로 13%가량 지연됐다. 지방법원 항소심 민사 합의 사건 처리도 215.8일에서 329.4일로 52% 이상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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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사진=뉴스핌 DB] |
이 같은 재판 지연에도 불구하고 법조계 일각에선 '사법부가 사실심 강화에 적극적이지 않다가 대법관 증원이 추진되자 회피성으로 내세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2014~2015년, 대법원은 상고법원 반대 여론 등을 의식해 사실심도 강화하겠다며 관련 공청회를 개최하고 제도개선위원회를 발족시켰다. 그러나 사법농단 사태 등으로 상고법원 설치가 무산되면서 사실심 강화 논의도 잦아들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사법센터 간사인 장범식 변호사는 "사실심 강화도 당연히 고려돼야 하지만 대법관 증원 등을 회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런 주장이 나오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장 변호사는 "법원이 사실심 강화 필요성을 느꼈으면 좀 더 판사 증원이나 예산 확보를 위한 노력을 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적극적으로 행동했는지 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다만 대법원 측은 사실심 강화를 위한 노력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꾸준히 해왔다는 입장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법원은 일관되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법관 증원과 예산 증원을 행정부와 국회에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hong9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