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가안보와 마약 유입 차단을 명분으로 전 세계에 일괄 부과한 관세 조치가 연방대법원 심리로 올라갈 전망이다. 행정부의 광범위한 관세 권한 행사에 하급심이 잇따라 제동을 걸면서, 대통령 권한을 어디까지 행사할 수 있는지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미국의 무역적자 상황이 국가 비상사태 수준이라고 선포하며 행정 절차를 우회, 모든 국가에 10%의 기본 관세를 부과하고 일부 국가에는 더 높은 상호관세를 매겼다. 펜타닐 등 마약 유입을 이유로 캐나다와 멕시코에도 추가 관세를 부과했다.
이 같은 조치에 대해 세 개의 법원에서 총 15명의 판사가 심리한 가운데, 11명이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지난 8월 29일(현지시간) 연방순회항소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를 위법이라 판시하며 오는 10월 중순까지 대법원에 상고하라고 시한을 제시했다. 다만 판결 효력은 유예돼 있어 행정부는 당분간 관세를 계속 징수할 수 있으며, 서두를 필요는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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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 관세 발표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블룸버그] |
백악관은 애초부터 사안이 대법원까지 갈 것으로 예상했다. 보수 우위의 현 대법원이 하급심과 달리 행정부 손을 들어줄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 실제로 대법원은 불법이민자 추방, 성소수자 군복무 금지, 예산 집행 제한 완화 등 트럼프 행정부가 요청한 긴급 구제를 여러 차례 수용해왔다.
그러나 이번 관세 사건은 예측이 쉽지 않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8월 31일 내다봤다. 자유무역을 중시해온 공화당 전통과 달리 대통령이 의회 입법 없이 일방적으로 관세를 부과한 점이 법적 취약점으로 지적된다. 이번 소송에는 진보 단체뿐 아니라 중소기업, 무역협회, 보수 성향 단체까지 폭넓게 참여하고 있다.
대법원의 판단 핵심은 '중대 질문 원칙(major questions doctrine)'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광범위한 경제·정치적 파급력을 지닌 정책은 의회가 명확히 위임하지 않는 한 대통령이 일방 추진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대법원은 이 원칙을 적용해 조 바이든 전임 행정부의 기후 정책, 코로나19 대응 조치, 학자금 대출 탕감 등을 무효화한 바 있다.
법학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근거로 든 1977년 제정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이 관세를 명시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 법은 역대 어느 대통령도 수입세 부과 근거로 사용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관세 부과 권한은 미국 헌법상 원칙적으로 미 의회(입법부)에 있다.
다만 지난 항소심에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임명한 리처드 타란토 판사는 소수의견에서 "IEEPA는 대통령에게 비상 위협에 대응할 폭넓은 재량을 부여하며, 관세 역시 그 도구에 포함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에 백악관 무역·제조업 담당 수석보좌관 피터 나바로는 "이 소수의견이 대법원이 트럼프 행정부 손을 들어줄 수 있는 명확한 로드맵을 제시했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에서도 이 같은 논리가 과반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만약 상호관세가 연방대법원에서 최종 무효 판결이 난다면, 이미 미국 정부에 낸 관세를 환급해 달라는 각국의 요구가 빗발칠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하급심 판결이 뒤집히면 트럼프 대통령이 향후 이 비상 권한을 더 공격적으로 활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종 판결까지는 수개월이 더 걸릴 전망이다. 대법원이 사건을 정식 접수하는 시점은 12월이나 내년 1월이 될 수 있으며, 구두 변론은 올 겨울이나 내년 이른 봄에 열릴 가능성이 크다. 최종 판결은 그로부터 수주, 혹은 수개월 뒤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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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연방 대법원. [사진=로이터 뉴스핌] |
wonjc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