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조수민 기자 = 돈이 있으면 살 수 있다. 시장주의는 자본만 있으면 누구나 재화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은 조금 다르다. 이 영역은 단순 상품 거래를 넘어 국민의 주거, 삶, 생존과 직결된다. 그만큼 공정한 출발선의 보장이 중요하다. 역대 정부가 주택 이상거래를 막기 위한 대책을 고민해 온 이유다.
지난달 27일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정책도 이런 고민에서 비롯된다. 해당 정책은 수도권과 규제지역의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6억원으로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주택 공급이 축소되며 올해 상반기 강남권을 중심으로 아파트 신고가 갱신이 속출했다. 집값이 추가로 상승하기 전에 빠르게 매수해야 한다는 불안 심리가 자극되며 매매가 상승세는 서울 전역으로 번졌다. 이에 정부는 부동산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주범으로 '영끌족(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투자한 사람)'을 지목하고 대출규제에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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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중기부 조수민 기자 |
문제는 규제 대상에서 외국인이 제외됐다는 데 있다. 외국인은 내국인과 달리 양도세·보유세 등 중과가 적용되지 않는다. 명확한 세대원을 파악하기 어려워 정부가 다주택 여부를 가리는데 한계가 있다. 또 '부동산거래신고법'에 따라 허가 없이 관청에 부동산 취득을 신고하는 것만으로도 거래가 허용된다. 이 때문에 기존에도 부동산 규제가 내국인을 역차별하는 구조라는 지적이 있었다.
규제 공백이 발생하는 사이 외국인의 주택 매입은 가파르게 증가했다.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6월 전국 외국인 소유지수(부동산 소유자 중 외국인 비중을 나타낸 것)는 0.75다. 아직 내국인(97.94)에 비해 비중이 미미하지만 1년 전인 지난해 6월(0.71)과 비교하면 눈에 띄게 늘었다.
특히 외국인 소유주는 수도권에 쏠려 있다. 올해 5월 기준 지역별 외국인 소유지수는 서울(0.89), 인천(1.39), 경기도(1.06) 등이 부산(0.28), 대구(0.19), 광주(0.15) 등보다 높았다. 소유 주택을 전·월세로 활용하는 외국인도 증가했다. 올해 1월~6월 전국 임대차 계약 중 외국인이 임대인인 사례는 1만355건이다. 전년 동기(8660건) 대비 19.3% 확대됐다.
물론 투자와 투기는 다르다. 국내 부동산에 대한 외국인의 투자를 모두 투기로 치부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 내국인의 주거 불안정이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서울 민간 아파트 평균 분양가는 3.3㎡당 4568만원에 달했다. 지난 4월(4549만원)보다 0.4%, 지난해 5월(3869만원)보다 18% 올랐다. 높은 분양가로 실수요자가 주택을 구매하기조차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당초 내국인에게 불리한 부동산 정책 하에 이번 대출 규제로 내국인의 주택 구매 여력은 한층 위축됐다. 반면 규제의 영향을 받지 않는 외국인에게는 상대적으로 유리한 매수 환경이 조성됐다. 결과적으로 내국인에게는 진입 장벽이 높아진 반면, 외국인에게는 문턱이 낮아진 셈이다. 이미 단기 시세차익을 창출하기 유리한 수도권 부동산에 외국 자본이 집중되고 있다. 외국인에 대한 규제 공백이 장기화된다면 시장에 외국인 투기 수요가 증폭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3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이번 대출 규제는 맛보기 정도에 불과하다"고 밝히는 등 강한 규제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내국인에 대한 압박이 강해질수록 외국인에 대한 규제도 현실화하며 균형을 맞춰야 한다. 최근 국회에서 '부동산 거래 신고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김은혜의원 대표발의)가 발의되는 등 정치권이 이 문제에 주목하는 것은 긍정적 신호다. 단순 발의 수준에 그치지 않고 실제 집행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내국인과 외국인 간 공정한 출발선이 그어질 수 있기를 바라본다.
blue9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