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정치 국회·정당

속보

더보기

[최연혁 교수의 정치분석] (하) 베니스의 법정에 선 대한민국

기사입력 : 2025년05월18일 08:00

최종수정 : 2025년05월18일 11:03

<상편>에 이어

자비와 법 사이에서

『베니스의 상인』에서 정의를 되살린 것은 '자비(mercy)'였다. 포샤는 말했다. "자비는 강요되지 않는다. 그것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가장 위에 있는 자와 가장 아래에 있는 자 모두를 적신다." 자비는 법의 외피가 아니라, 공동체를 지탱하는 숨겨진 기초다. 한국 정치가 잃은 것은 바로 그 자비의 정치다. 다수결에도 여백이 필요하고, 정당한 절차에는 절제가 필요하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는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도 등장한다. 장 발장은 굶주린 조카를 위해 빵 하나를 훔친 죄로 19년을 감옥에서 보낸다. 그는 법의 심판을 받았지만, 사회의 자비는 없었다. 출소 후에도 사람들은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리엘 주교가 건넨 한 마디 말과 두 개의 은촛대는 장 발장을 바꾸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 미리엘 주교(본명: 샤를 프랑수아 뱅상 미리엘)는 장 발장의 인생을 바꾸는 결정적인 장면의 중심에 있다. 장 발장은 사회로부터 배척당하며 절망 속에 떠돌다가 주교의 집에 하룻밤 묵게 된다.

그러나 그는 그 은혜를 저버리고 은그릇을 훔쳐 달아나다 체포되어 다시 주교 앞에 끌려오게 된다. 그때 미리엘 주교는 장 발장을 꾸짖는 대신, 오히려 경찰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니, 내가 은식기를 줄 때 은촛대도 함께 준 것이었는데 왜 가져가지 않았소? 그것도 함께 드려야 했는데."

그리고 장 발장에게 다가가 조용히 이렇게 속삭였다.

"장 발장, 나는 당신을 악에서 구했습니다. 당신은 이제 선을 위해 이 은을 써야 합니다. 나는 당신의 영혼을 사탄에게서 구해 하나님께 돌려주었소."

정의가 그를 감옥에 가두었지만, 자비가 그를 다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 것이다. 한국 정치가 되새겨야 할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법과 절차는 사회를 유지하지만, 자비와 용서는 그 사회를 사람답게 만든다.

또한 성서에 나오는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도 떠오른다. 율법에 따라 돌로 쳐 죽이라는 무리 앞에서 예수는 말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져라." 그 말 한마디에 돌은 땅에 떨어졌고, 사람들은 하나둘씩 사라졌다. 이는 단지 종교적 교훈이 아니라, 법과 정의를 앞세우는 모든 이에게 필요한 윤리적 상상력이다. 정의는 기준이지만, 자비는 공동체를 지키는 힘이다.

진짜 법은 누군가의 살을 도려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조건을 만드는 일이다. 정치가 사람을 위한 것이고, 공동체가 지속 가능해야 한다면, 필요한 것은 차가운 정의만이 아니다.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자비의 현대적 언어인 포용과 용서다. 포용은 다름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되고, 용서는 과거의 잘못을 넘어설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이 두 가지가 정치 안에서 작동할 때, 법은 사람을 위한 틀이 되고, 정치는 미래를 위한 길이 될 수 있다.

베니스의 법정 앞에 선 대한민국

지금 이 나라는 베니스의 법정에 서 있다. 이 법정이 샤일록의 정의를 따를 것인가, 포샤의 포용을 따를 것인가는, 우리 모두의 선택에 달려 있다. 하지만 현재의 형국은 결국 살을 도려내려는 다수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하고 있다.

정치가 권력 탈환이라는 단기적 목표에 사로잡히면, 공동체 전체의 고통과 불안, 대립과 반목의 아픔을 껴안을 수 없다. 정치가 더 깊은 곳을 보지 못하면, 국민은 정치를 외면하거나 정치에 맞서 분열하고 나라는 갈라진다.

이제 정치에는 '이기는 것'보다 '함께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깨달음이 필요하다. 정치인들은 진정으로 이 점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분열된 현실 속에서도 대립을 줄이고, 반목을 끌어안으며, 치유를 향한 정치를 고민해야 한다. 권력을 쥐는 것보다 마음을 얻는 정치, 절차를 장악하는 것보다 국민의 상처를 치유하는 정치가 절실하다.

세계가 지금 이 나라를 지켜보고 있다. 수많은 외신과 세계시민이 목도하고 있는 이 현실 속에서, 훗날 역사가 묻고 후손이 평가할 때 부끄럽지 않을 정치인이 과연 누구일지를 우리는 스스로 물어야 한다.

"정치가 단지 이념과 권력의 싸움이 아니라, 공동체의 회복과 품격의 경쟁이 되어야 한다"는 이 외침은 한 정치학자의 절절한 바람이자, 민주주의를 믿고 지켜온 시민들의 애타는 목소리이기도 하다.

[서울=뉴스핌] 최지환 기자 =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교 교수

*필자 최연혁 교수는 =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랄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무너진 '의원 불패'에 정치권 동요 [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자진 사퇴로 현역 국회의원은 낙마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의원 불패 신화'가 무너지면서 정치권이 동요하고 있다. 인사청문회에 대한 부담이 커지면서 고위공직자 인선에도 난항이 예상된다.  24일 정치권에 따르면 강 후보자는 전날 "많이 부족하지만, 모든 것을 쏟아부어 잘해 보고 싶었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던 것 같다"며 자진 사퇴했다. 이로써 강 후보자는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후 현역 의원 신분으로 낙마한 첫 번째 사례가 됐다. 인사청문 과정에서 현역 의원이 낙마했다는 것은 고위공직자 후보로서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는 의미로 정치적 생명에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으로서 정치적 입지가 크게 흔들릴 뿐 아니라 다음 선거에서 공천을 받는 것도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은 "줄곧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거짓 해명에 급급하다가 끝내 피해자에게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없이 도망치듯 사퇴했다"며 강 후보자가 의원직도 사퇴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를 경청하고 있다. 2025.07.14 mironj19@newspim.com 현역 의원도 낙마할 수 있다는 선례가 만들어지면서 정치권에서는 인사청문회에 대한 부담감이 고조되고 있다. 여기에 대통령실 인사검증 시스템에 대한 지적도 제기되면서 향후 고위공직자 인선이 더 어려워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 초선 의원은 "청문회를 하면 하루종일 모욕당하고 가정사도 전부 밝혀지고 너무 탈탈 털리니까 우리는 만약에 장관직이 들어와도 하지 말자는 얘기를 했었다"며 "청문회 때문에 자리를 고사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한 재선 의원은 "정치적 대립이 아무리 심해도 '현역 의원은 지켜준다'는 암묵적 룰이 있었는데 그게 깨진 것"이라며 "국민 눈높이에 맞추는 것이 중요해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당초 강 후보자는 현역 의원인 점, 이재명 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운 점 등으로 인해 낙마 가능성이 낮게 점쳐졌다. 그러나 보좌진에 자택 변기 수리, 쓰레기 분리배출 등을 시켰다는 갑질 의혹과 거짓 해명 논란이 잇따라 불거지며 여론은 급속히 악화됐다. 청문회 이후에도 예산 갑질, 교수 시절 무단결근 등 추가 의혹이 제기되면서 파문이 확산됐다. 야당뿐만 아니라 시민단체와 범여권의 지명철회 촉구가 이어졌고,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도 하락하면서 결국 강 후보자는 자진 사퇴를 결정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강 후보자의 결단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jeongwon1026@newspim.com 2025-07-24 15:09
사진
블랙핑크, 美 빌보드글로벌200 1위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블랙핑크가 글로벌 톱 클래스임을 증명하면서 미국 빌보드 메인 차트 정상을 꿰찼다고 YG엔터테인먼트가 22일 밝혔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블랙핑크. [사진 = YG엔터테인먼트]  2025.07.22 oks34@newspim.com 미국 빌보드가 SNS를 통해 먼저 공개한 최신 차트에 따르면 블랙핑크의 '뛰어(JUMP)'는 빌보드 글로벌 200과 빌보드 글로벌(Billboard Global Excl. U.S.) 차트에서 나란히 1위에 올랐다. 이로써 블랙핑크는 빌보드 글로벌 200에서 세 번째, 빌보드 글로벌에서 네 번째 1위를 차지하며 두 개 차트에서 동시에 K팝 걸그룹 최초·최다 기록을 쓰게 됐다. 또한 빌보드 글로벌 200에서는 스트리밍 1억 2300만 회로 올해 전 세계 여성 아티스트 발매곡 중 최고 수치를 달성했다. 특히 빌보드 핫 100에서는 28위에 안착해 주목된다. 앞서 'Ice Cream', 'Pink Venom', 'Shut Down', 'How You Like That', 'Kill This Love', 'DDU-DU DDU-DU', 'Lovesick Girls', 'Sour Candy', 'Kiss and Make Up'이 차트인에 성공했던 바. 이는 팀 발매곡만으로 세운 K팝 여성 아티스트 최다(10곡) 진입 신기록이다. 빌보드뿐 아니라 각종 글로벌 차트에서도 반향이 크다. 블랙핑크는 '뛰어(JUMP)'로 스포티파이 위클리 톱 송 글로벌 차트에서 K팝 그룹 최다 1위 곡 보유라는 신기록을 썼으며, 영국 오피셜 차트에는 자체 최고 순위인 18위로 첫 진입하는 등 주류 팝 시장에서 막강한 존재감을 과시 중이다. 유튜브에서도 독보적인 영향력을 떨치고 있다. '뛰어(JUMP)' 뮤직비디오는 지난 11일 공개 이후 8일 연속 글로벌 유튜브 일간 인기 뮤직비디오 최정상을 지킨 데 이어 주간 차트에서도 1위로 직행했으며, 조회수는 8800만 회를 훌쩍 넘어 1억 뷰 돌파를 눈앞에 뒀다. <빌보드 핫 100, 빌보드 글로벌 200 어떻게 다른가?> '빌보드 핫 100'은 미국 내 종합 싱글 차트로 가장 권위 있는 차트다. 글로벌 차트보다 권위 있는 이유는 미국 내 '라디오 방송 집계'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글로벌 차트는 성격상 라디오 집계는 불가능해서 스트리밍과 판매가 핵심이지만 '빌보드 핫 100'은 인기도를 가늠하는 라디오 집계가 핵심이다. 빌보드가 집계하는 라디오 방송국의 수만 1,200여 개가 넘는다. 이에 비해 '빌보드 글로벌 200'은 스트리밍이 포함된 차트여서 팬덤의 움직임에 의해 순위가 요동치는 경우가 많다.  oks34@newspim.com 2025-07-22 12:26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