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해 뜰 날'의 히트로 방송3사 가수왕 휩쓸어
아내의 부동산 투자 실패로 개인적인 어려움 겪기도
'차표 한장','네 박자',' 고향이 남쪽이랬지'등 히트곡 다수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트로트계의 4대 천왕'으로 불린 송대관(78)은 서민들의 친구 같은 가수였다. 1946년 6월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송대관은 1967년 곡 '인정 많은 아저씨'로 데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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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고 송대관 빈소. [사진= 오광수 전문기자] 2025.02.07 oks34@newspim.com |
오랜 시간 무명의 세월을 보냈던 송대관은 1975년 발표한 '해 뜰 날'의 노랫말처럼 '쨍하고 해 뜰 날'을 맞았다. 이 노래로 1976년 연말 방송 3사의 가수왕을 휩쓸었다. 당시 미국의 그룹 제이 가일스 밴드의 노래 '센터폴드(Centerfold)'가 송 씨의 노래를 표절했다는 논란이 생길 정도로 전 국민이 즐겨 부르던 히트곡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돌연 미국으로 이민을 가며 가수 활동을 중단했다. 1988년 다시 귀국한 송대관은 '정 때문에', '차표 한 장', '큰소리 뻥뻥', '고향이 남쪽이랬지', '네 박자', '유행가', '딱 좋아'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기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특히 송대관은 현철, 태진아, 설운도 등과 함께 트로트 4대 천왕으로 활약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지난해 7월 현철이 별세하여 4대 천왕 중에서 태진아와 설운도만 남았다. 송대관은 특히 태진아와 트로트 콤비를 이루어 듀오 콘서트를 갖는 등 오랜 친분을 이어왔다.
유명세를 떨친 가수였지만 송대관은 개인적인 어려움도 있었다. 10여 년 전 아내의 부동산 투자 실패로 생긴 수백억 원의 빚 때문에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가는 등 고초를 겪기도 했다. 송대관의 전 매니저였던 ㄱ씨는 "5년여 전에 암 수술을 받는 등 건강에 문제가 있었다"면서 "이후로도 수차례 수술을 받는 등 크고 작은 병치레로 힘들어했다"고 밝혔다.
대중음악 평론가이자 영화감독인 이무영 동서대 교수는 "고인은 70년대 대마초 파동으로 무주공산이 된 가요계에서 확고한 개성으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했던 가수"였다면서 "이후 '4대 천왕'의 한 사람으로 묶이면서 송대관만의 음악 색깔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고인의 유족 등에 따르면 송대관은 컨디션 난조를 호소해 서울대병원 응급실을 찾았고, 치료 도중 7일 오전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
oks3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