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제' 등 획일적인 근로 환경 규제 개선 목소리
美日, 근로 유연성 제도적 뒷받침…직무·성과 중심 체계
[서울=뉴스핌] 김정인 기자 = 인공지능(AI) 반도체 전쟁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 기업들이 '주 52시간 근로제' 등 획일적인 근로 환경 규제에 발목을 잡히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반도체 업계 위기와 함께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근로 유연화가 시급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주 52시간 등 일률적인 근로시간 제도가 R&D 생산성과 의욕을 저하한다는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다.
앞서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는 지난 8월 '수출기업의 노동생산성 둔화 원인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서 신속하게 대응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유연한 인력 운용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노동법제의 고용친화적 정비 ▲근로시간 획일적인 규제 개선 ▲직무·성과 중심으로 임금체계 개편 등을 제언했다.
MS코파일럿이 그려낸 반도체 공장이 24시간 돌아가고 있는 모습. [사진=MS코파일럿] |
◆ 미국·일본 등 주요국, 노동시장 유연화 제도적 뒷밤침
주요국들은 이미 근로 유연성을 강화하는 제도를 실행하고 있다.
미국의 '화이트 칼라 이그젬션(White Collar Exemption)'이 대표적이다. 이는 86년 전인 1938년 처음 도입돼 ▲고위관리직, 전문직 등에 종사하는 근로자가 주 684달러 이상을 벌거나 ▲연소득이 10만7432달러를 넘을 경우 근로시간 규제에서 제외하는 제도다. 엔비디아의 경우 높은 근무 강도로 악명이 높지만 정작 이직률은 지난해 기준 5.3%로 미국 전체 반도체 산업 이직률(17.7%) 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를 2018년부터 시행 중이다. 금융상품 개발, 경영 컨설턴트 등 생산직이 아닌 근로자 가운데 연 1075만엔 이상 고소득자는 근로시간 규제에서 예외를 적용한다. 영국은 서면 동의 이후 근로시간을 한도 초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힘 실리는 '한국형 화이트 칼라 이그젬션' 도입 주장
반면 한국은 고소득 개발·연구직이 집중된 반도체 분야를 포함해 모든 업종, 모든 소득의 근로자에 대해 주 52시간 근로제를 일괄 적용하고 있다.
이에 따른 기술력 저하 우려도 나오고 있다. 실제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의 조사에 따르면 차세대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의 기술 수준은 최고 기술국인 미국(100) 대비 2019년 92.9에서 지난해 86.0으로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상황이 이렇자 업계에서는 '한국형 화이트 칼라 이그젬션'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정부와 국회가 협의 중인 반도체 특별법안에 반도체 R&D 인력 등을 근로시간 규제에서 제외하는 조항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9년 김병관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근로소득 상위 3% 근로자에 대해 근로 시간 기준 적용을 제외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기술로 국가 패권이 갈리는 시장 환경 가운데 초격차 기술력 확보와 생산력 증대를 위해선 유연한 인력 운영이 필요하다"며 "R&D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고 그에 맞는 충분한 보상을 해주는 근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kji0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