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정인 기자 = 몇 달 새 '삼성 위기론'이 바이러스 퍼지듯 우리 사회에 퍼지고 있다. 글로벌 일류 기업인 삼성전자가 어쩌다 걷잡을 수 없는 위기론에 휩싸이게 된 걸까. 역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들부터 법조인, 경제 전문가 등 삼성의 위기론을 말하지 않는 이들을 찾기가 좀처럼 어려울 정도다.
현재 삼성전자는 어떤 상황일까. 주력 업종인 반도체 산업에서 파운드리와 첨단 반도체 모두 주도권을 상실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고 이는 3분기 시장 기대치를 하회하는 실적으로 이어졌다. 이후 삼성전자 반도체 수장인 전영현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이 투자자와 임직원을 대상으로 사과문을 냈지만, 정작 시대 역행적인 '등산'이라는 방식을 통해 조직 강화에 나서 뭇매를 맞기도 했다.
변화의 시점이 온 것은 자명하다. 그래서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생각법'을 다시 꺼내들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반도체 시장의 변동성과 글로벌 기술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삼성이 단순한 '위기'를 넘어서 혁신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포착해야 하는 시점에 있다는 점은 이 선대회장이 남긴 교훈과 일맥상통한다.
이 선대회장의 경영 철학은 단순한 생존이 아닌, 혁신을 통한 성장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이 선대회장은 1993년 삼성의 실태를 낱낱이 분석한 이른바 '후쿠다 보고서'를 읽은 후 삼성전자 임원 200여 명을 프랑크푸르트로 소집했다. 그리고는 "이제부터 양이 아닌 질 위주로 간다"고 선언했다. 얼마나 의지가 강했는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고도 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세계 시장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던 전자 기업 중 하나에 불과했지만, 이 회장의 리더십 하에 삼성은 첨단 기술, 품질, 디자인 측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애니콜 화형식'은 또 어땠는가. 이 선대회장은 지난 1995년 시중에 판매된 무선전화 15만대를 전량 회수해 삼성전자 구미공장 운동장에 쌓은 뒤 임직원 2000여명이 지켜보는 앞에서 이를 산산조각 내고 화형식을 치렀다. 이 선대회장은 이 충격요법을 통해 갤럭시로 이어지는 삼성전자 휴대전화 신화를 만든 전례가 있다.
이 선대회장이 현재의 상황을 봤다면 어떻게 했을까. 아마 위기라는 단어를 듣고는 곧장 "변화를 시작할 때가 왔군"이라며 새로운 기회를 잡을 준비를 했을 것이다. 이 선대회장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도 경쟁사들이 위축될 때 반대로 과감한 투자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를 확대했다. 이게 바로 삼성 특유의 도전과 혁신 정신이다.
내부혁신이 어렵다고. 이 선대회장은 이미 30년 전에 이를 경험했다. 물론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 반도체 시장 변동성, 지정학적 리스크, 차세대 기술 경쟁 등 도전 과제는 늘었지만, 하소연하고만 있을 순 없다.
이제는 이러한 DNA를 장착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강력한 리더십으로 삼성의 내부 혁신을 이뤄야 할 시점이다. 과감한 기술 투자, 파격적인 인사 단행 및 효율적인 의사결정 체계 구축 등 '이건희식 변화'가 필요할 때다. 나아가 등기임원 복귀를 통해 리더십과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방법도 면밀히 들여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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