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당 52mm 폭우에 속절없이 무너내린 영양 대천·금학마을...주민 사흘째 마을회관서 뜬 눈으로 밤새워
지역 사회단체·자원봉사대·공무원 등 400여명 수해현장서 응급복구 '구슬땀'
경북도·영양군, 빠른 응급복구에 '주력'...피해조사 거쳐 항구적 재난복구사업 추진
[영양=뉴스핌] 남효선 기자 = 경북 내륙을 중심으로 나흘간 쏟아진 기록적인 폭우에 직격탄을 맞아 삶의 터전이 무너내린 영양군 입암면 대천리와 금학리 수해현장으로 가는 길에 다시 먹구름이 몰려들며 또 한줄기 소나기성 폭우가 쏟아진다.
낙동강의 상류인 반변천을 끼고 산중에 자리잡은 대천리와 금학리로 들어서는 초입의 도로변에 차량들이 꼬리를 이어 서 있다.
마을 분위기가 소나기를 머금은 하늘처럼 묵직하다.
◇ 주택 마당에는 산처럼 쌓인 토사더미...수확 앞둔 수박·고추밭은 뻘에 묻혀 형체도 없어
대천리 마을 앞 하천을 끼고 있는 들녘이 온통 굵은 돌멩이와 뻘에 묻혀 있다.
조상대대로 이어오며 식구들의 건사하고 자식들을 길러 낸 문전옥답이 범람한 하천의 자갈과 토사와 진흙, 나무등걸에 묻혀 흉물스런 뻘밭으로 변했다.
애지중지 길러 온 인삼밭은 형체도 없이 토사에 묻히고 주렁주렁 매달린 고추밭은 범람한 하천 급류에 휩쓸렸다.
뻘밭으로 초토화된 마을 앞 수박밭에는 갓 수확을 앞둔 크고 잘 여문 수박덩이 수 백개가 뻘에 잠겨있다.
마을로 들어서는 초입에 조성돼 마을주민들의 더위를 식혀주고 농사일로 고단한 몸을 다독거려주던 마을쉼터는 지붕만 남긴 채 토사에 묻혀 있다.
굴착기 한 대가 마을 초입에 산더미처럼 쌓인 토사와 진흙더미와 나무등걸을 걷어내느라 분주하다.
주택 지붕까지 들이닥친 토사더미를 조심스레 건져 올리는 굴착기 너머로 팔십을 훌쩍 넘긴 어르신 한 분이 그나마 한 뼘 정도 남은 언덕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흙더미에 묻힌 집안을 응시하고 있다.
어르신의 눈길에 막막함이 서려있다.
굴착기 수 십대가 투입됐으나 마을 안길이 좁은데다가 집과 집 사이의 공간이 좁아 대형 굴착기 대신 소형 굴착기로만 응급복구가 가능해 복구 또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주택과 주택 사이의 고샅길 등 굴착기 진입이 불가능한 곳은 영양지역 사회단체와 자원봉사단체, 공무원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토사더미를 일일이 삽으로 퍼내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폭우가 쏟아진 8일 새벽부터 영양군청 공무원, 사회단체, 재향군인회, 자원봉사단체 등 400여명이 사흘째 수해현장에서 응급복구에 총력을 쏟고 있다.
또 대한적십자와 LG전자, 영양농협 직원들이 수해현장으로 달려와 피해주민들의 건강과 빠른 응급복구 지원에 힘을 보탰다.
◇ 8일 새벽 2~4시 사이 시간당 52mm 폭우 쏟아져...이장.순찰대원, 폭우뚫고 마을 어르신들 구조
지난 8일 새벽 2~4시무렵, 약 2시간 가량 대천리와 금학리에는 시간당 52mm의 폭우가 쏟아졌다.
평화롭던 산중마을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요란한 폭우 소리에 잠에서 깬 주민들은 망연자실했다.
물과 토사가 범벅이된 뻘물이 마당을 삼키고 창문턱까지 차오르며 마을 전체가 물바다로 변했다.
굵은 장대비는 흡사 하늘이 뚫린 듯 쏟아졌다.
마침 마을의 이장과 마을순찰대원들이 집집마다 돌며 폭우와 토사에 갇혀 발만 동동구르는 어르신들을 일일이 들쳐업고 구조했다.
이들 순찰대원들이 이날 새벽 폭우를 뚫고 구조한 주민들은 13세대 16명이다.
이들의 숨가쁜 구조로 마을 주민들은 소중한 목숨을 건졌다. 구조 과정에서 주민 한 사람이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 "폭우가 쏟아지던날 생각하면 지금도 오금저려...논밭전지 뻘에 묻혀 무얼먹고 살아야할지 깜깜하니더"
"새벽에 창문을 여니 마당에 물이 찰랑거리디더. 그래 앞 문으로 못나가고 뒷 창문으로 겨우 빠져나왔니더. 마을의 이장과 젊은 사람들이 집집마다 댕기며 담을 부수고 사람들을 업고 대피시켰니더"
삽시간에 하늘에 구멍이 난 듯 쏟아진 폭우로 새벽에 마을 사람들의 등에 업혀 마을회관으로 대피했다는 할머니 한 분이 폭우가 쏟아지던 날 새벽을 생각하면 지금도 몸서리가 난다며 울먹인다.
"평생 이런 물난리는 처음이시더. 아니 스무살적인가 '사라호 태풍' 때 물난리 겪은 후로 이번이 처음이시더. 우리 금학리는 사람살기 좋은 곳이라고 이름났는데. 우리 동네는 수박과 고추농사가 유명하니더. 땡볕에 밭 지심(잡초)매며 애지중지 키워 이제 곧 수확철인데 동네 수박밭이며 고추밭이 모두 뻘밭으로 변했니더"
그 날 이후로 잠 한숨 제대로 못잔다는 할머니 한 분이 손사래를 친다.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시소. 농토도 빨리 복구해야 김장배추라도 심어야 한 해 먹고 살낀데...논밭전지가 모두 뻘에 묻혔는데 무얼 먹고 살아야 할지 깜깜하니더 "
이들 대천리와 금학리 마을 대피 주민들은 주간에는 마을회관에 머물다가 저녁이면 입암면 소재지로 이동해 영양군이 마련한 펜션의 숙소에서 숙박하고 있다.
이와관련 영양군 관계자는 "폭우 피해 어르신들과 주민들에게 잠자리만이라도 편하게 제공하기 위해 입암면 소재지에 위치한 펜션을 숙소로 마련했다"고 말했다.
금학리와 대천리 마을은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면서 주택 5가구가 토사에 매몰되고 16가구가 침수됐다.
또 고추밭, 수박밭, 인삼밭과 사과.복숭아 과수밭 등 문전옥답 189.2ha(잠정)가 토사에 묻히거나 범람한 하천물에 휩쓸렸다.
이번 폭우로 영양지역에서는 도로 2.5km 규모가 유실되고 하천 0.3km가 유실됐다.
이들 공공시설과 사유재산은 정확한 피해조사를 통해 그 규모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 마을 내 '도랑'복개천 밀려온 토사·나뭇잎 등에 막혀 물길흐름 막아...항구적 개선책 절실
이번 이들 산중마을의 폭우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마을 내 수로 역할을 하는 '도랑 복개천'이 지목된다.
수해 현장에서 응급복구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한 공무원은 "짧은 시간에 기록적인 많은 양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밀려온 토사와 나뭇잎 등이 복개천에 쌓여 물길의 흐름을 막아 주택과 농경지로 역류한 것으로 파악된다"며 "마을 내 소규모 복개천의 규모를 늘리거나, 마을을 우회하는 새로운 물길을 조성하는 등 근본적인 수해대책이 절실하다"고 진단했다.
실제 농산촌의 대부분이 마을 내 '도랑'등을 경계로 가옥이 들어선데다가, 수레나 차량 등의 출입을 위해 자연 도랑(구거) 등이 모두 구조물로 복개됐다. 특히 이들 복개천의 규모는 수레나 경운기 한 대 정도가 다닐 수 있는 규모가 대부분이어서 기후변화에 따른 국지성 폭우 등에 대비한 정비와 개선이 뒤따라야한다는 지적이다.
◇ 경북도.영양군, 빠른 응급복구.일상복귀 주력...대피 주민 건강 관리 지원
경북도와 영양군은 이번 폭우 피해 관련 우선 응급 복구에 총력을 쏟아 주민들의 빠른 일상복귀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이어 빠른 시일 내 피해 조사를 마친 후 재난복구계획을 수립해 항구적 재해복구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날 피해현장으로 달려 온 이철우 경북지사는 피해 상황을 점검하고 "즉각적인 주민 안전 조치와 신속한 복구지원"을 지시했다.
이 지사는 또 "응급 복구를 최대한 빨리 조치해 2차 피해를 막고, 토사 유출 및 하천 제방이 유실된 곳에 안전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즉각적인 대응과 안전조치를 다하라"고 주문했다.
이 지사는 전날부터 응급복구지원을 위해 수해현장에 머물고 있는 오도창 영양군수와 함께 사흘째 귀가하지 못한 채 마을회관 등지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며 가슴을 조이고 있는 주민들을 찾아 위로했다.
또 폭우가 쏟아지던 8일 새벽 3시, 폭우를 뚫고 금학리 마을에 고립된 13세대 16명의 주민을 일일이 업어서 대피시킨 마을이장과 마을순찰대원들의 노고를 격려하고 9일부터 응급복구 지원을 위해 달려 온 영양군의 사회단체와 자원봉사자들의 노고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 지사는 "폭우 피해 이재민들이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지원하고, 주민들이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필요한 부분을 세심히 살필 것"을 주문하고 "주민들의 사전 대피 시간이 길어지는 것에 대비해 보건지소를 통한 건강 관리 지원과 경로당 행복선생님을 통한 프로그램 운영 등 관련 대책을 마련할 것"도 지시했다.
nulcheo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