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와 저출산이 인플레이션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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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오상용 글로벌경제 전문기자 = 늙어가는 세상은 투자세계의 지형을 어떻게 바꿔 놓을까.
자산운용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빌리면 인플레이션 동학과 재정 전망이 고령화에 의해 한층 뒤틀리기 쉬워진 조건 하에서 안전자산에 대한 통념은 바뀌어야 할지 모른다.
포트폴리오 내 위험자산 비중을 높여야할 필요성은 커진다. 더 오래 살 위험이 커진 만큼 저위험 저수익 자산으로는 버티기 어려워서다.
지역별 자산배분 전략은 장기적으로 인구동태에 더 종속될 수 있다. 성장과 수익률의 인구 결정론은 단견에 불과할지 모르나, 인구동태는 여전히 인간 세상의 많은 것을 지배하는 토대다.
1. 너무나 친숙한 위험
고령화는 등속 운동이 아니라 가속 운동중이다. 유엔(UN) 세계 인구 전망에 따르면 오는 2050년 전세계 인구의 6명중 1명은 65세 이상 고령자로 구성된다. 유럽과 북미에서 그 비중은 27%에 달할 전망이고 아시아에서도 25%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됐다.
MFS 투자운용의 포트폴리오 매니저인 에릭 와이즈먼은 "우리는 인구동학을 느리게 움직이는 기차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며 "질주하는 기차"라고 말했다. 탈선시키지 않으면 우리를 덮칠 것이라고 했다.
고령화 속도는 전 세계적으로 빨라지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UN] |
사회를 지탱할 새로운 구성원(신생아)의 증가 속도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출산율 저하는 주요국에서 현저해지고 있으며 중국을 비롯한 이머징 국가도 예외가 아니다.
노동의 가치가 자산 가치의 증식 속도를 이기지 못하는 세상에서 자식을 낳아 가난을 되물림하기 싫다는 푸념 혹은 자애(慈愛)는 팬데믹 이후 주요국 젊은층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높아진 육아 비용과 달라진 가치관 등 여러 원인 진단과 다양한 해결책이 제시됐지만 약발은 미미했고 오래가지도 못했다.
유엔(UN)은 세계 인구가 2080년 104억명에 도달하고, 2100년 무렵에는 120억명을 돌파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최근 유럽연합 집행위의 인구센터는 세계 인구가 2070년 98억명으로 정점을 찍고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주요국 중에는 인구가 이미 정점을 찍었거나 그 예상 시점이 당겨지는 나라가 적지 않다.
주요국의 출산율 추이 [사진=블룸버그, 월드뱅크] |
2. 고령화와 인플레이션 논쟁
팬데믹 이전까지 고령화는 낮은 물가상승률로 귀결된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사람들이 노후의 삶을 위해 지출을 줄이고 저축을 늘리면서 물가상승률과 시장 금리는 기조적으로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은 팬데믹 이전 20여년간 자산시장을 지배했고 실제 잘 작동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팬데믹 이후 도전에 직면했다. 최근의 현실이 과거의 통념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 탓이다.
이 주제(고령화와 인플레이션)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팬데믹 이후 나타난 높은 인플레이션은 일회적 현상에 불과하며 결국 과거 추세로 회귀할 것"이라는 주장과 "팬데믹 이전 20여년이 정상을 이탈했던 아주 특이한 구간으로 세상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중"이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후자를 걱정하는 이들이 보기에 은퇴자들의 씀슴이는 기대 이상으로 커지고 있는 반면 생산을 담당할 인구는 제한적이며 점점 줄어들 예정이다. 총수요와 생산의 이러한 불일치는 인플레이션적 미래에 해당한다. 일시적 현상으로 치부하기에는 수면 아래의 조류(고령화와 저출산)가 도도하다.
재정은, 그 방만함에 대한 시장의 경고와 별개로, 점점 많은 문제에 개입하라는 압박에 놓여 있다. 재정지출이 계속 확대될 수 있는 선까지 이는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한다. 미국의 경우 3년 가까이 물가상승률이 연방준비제도의 목표치(2%)를 웃돌면서 기대 인플레이션이 높은 수준에서 고착화할 위험에 놓였다.
인공지능(AI)이 부족한 노동을 메울 것이라는 기대가 높지만 아직 가보지 않은 세계다. 적어도 신기술이 보편화 단계로 넘어서기까지 AI와 자동화(로봇) 관련 투자 붐은 오히려 끈적한 인플레이션에 힘을 보태기 쉽다.
세계 주요 7개국(G7)의 인플레이션 추이 [사진=블룸버그, OECD] |
3. 일본의 경험과 탈구
고령화는 디스인플레이션(물가상승률의 둔화) 혹은 디플레이션적(물가의 하락)이라는 인식은 일본의 경험에 기인한 바 크다.
마노즈 프라드한과 찰스 굿하트가 지난 2020년 출간한 저서 `인구학적 대역전(The Great Demographic Reversal)에 따르면 일본의 경험이 특이했을 수 있다. 당대의 양상은 중국발 디스인플레이션(중국산 저가제품 유입에 따른 물가둔화) 흐름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대차대조표 불황론의 관점에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장기간의 디플레이션은 자산버블 붕괴의 산물이다. 창조적 파괴가 당국의 완화적 통화정책에 의해 차단됐다고 보는 쪽에서는 일본내 좀비 기업들이 장기 존속하면서 기업 전반의 가격 결정력을 크게 떨어뜨렸다고 설명한다.
중국의 글로벌 디스인플레이션 기능은 지정학적 충돌과 무역갈등에 의해 점점 약해지는 경로에 있다. 중국 바깥의 여타 이머징 생산국에서 빨라지는 임금상승 속도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모건스탠리에서 전략가로 일한 뒤 토킹헤즈 매크로 이코노믹스를 창립한 프라드한은 "인구동태 관점에서 중국을 본다면 미래 세계는 인플레이션이 더 심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거의 모든 경제권에서 녹색정책이 가동중이며 탈세계화는 더 많은 군비지출을 의미한다"며 "수요를 자극하려는 의지가 있지만 중국은 예전처럼 그 수요를 적절히 상쇄할 수 없다"고 말했다.
osy75@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