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레이블끼리 K팝 시장서 경쟁, 중복투자 불가피
삼성그룹이 계열사마다 핸드폰 만들어 경쟁하는 격
중소기업에게도 악영향, 음악적 다양성 가로 막아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1990년대 지금의 엔터테인먼트 산업 규모와는 사뭇 달랐던 시절에 대기업인 삼성이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진출했다. 삼성영상사업단을 설립하고 영화와 비디오, 음반 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 동시다발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이어 지금은 사라진 대우그룹도 영상 및 음반사업에 손을 댔다.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 기자회견에 많은 언론사 취재진들이 모여들어 열띤 취재경쟁을 펼쳤다. [사진 = 정일구 기자] 2024.05.02 oks34@newspim.com |
당시 막강한 자금력과 우수한 인력들을 포진시킨 대기업의 진출을 보는 중소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대자본의 유입으로 시장이 커지고 발전하기 보다는 시장을 교란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더 컸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삼성과 대우의 엔터테인먼트 사업 진출은 씁쓸한 뒷맛만 남기고 철수했다. 다만 당시 각 사업단에서 잔뼈가 굵었던 이들이 CJ로 건너가서 그때의 실패를 거울삼아 선별적인 엔터사업을 운영하면서 시장에 안착했다.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면서 세상이 달라졌다. K팝의 눈부신 성장으로 글로벌 시장에서도 주목받는 하이브를 비롯하여 JYP나 YG 그리고 SM을 품에 안은 카카오 엔터테인먼트 등은 각자의 방식으로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 그 결과 하이브는 이번에 물의를 빚은 민희진 대표의 어도어를 비롯하여 11개 레이블을 자회사로 뒀다. BTS가 소속된 빅히트뮤직을 비롯하여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쏘스뮤직, 빌리프랩, KOZ엔터테인먼트 등 굵직한 K팝 스타를 보유한 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하이브 못지 않게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다양한 레이블을 보유하고 있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사진 = 카카오엔터테인먼트] 2024.05.02 oks34@newspim.com |
여러 자회사를 거느린 SM을 인수한 카카오 엔터테인먼트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이담 엔터테인먼트, 스타쉽 엔터테인먼트 등 K팝 기획사를 비롯하여 엔터테인먼트 전 분야를 아우르는 수십 개의 회사를 갖고 있다. 박진영(JYP)과 양현석(YG)도 두 사람이 소속 아티스트 총괄하는 싱글레이블 시스템을 고수해 왔지만 최근들어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계열사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하이브는 레이블을 이끄는 대표들에게 독창적인 음악 활동을 하도록 전권을 줬다. 이는 다른 회사들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우선 대기업 군에 근접한 하이브가 사 모은 산하 레이블만 살펴보자. 다양한 음악적 장르를 독자적으로 기획하고 운영하는 시스템이 아니고, 거의 전부가 K팝의 상징과도 같은 아이돌 음악에 집중하고 있다. 비유하자면 삼성그룹 산하 수많은 계열사들이 휴대폰 생산에 매진하면서 경쟁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같은 제품으로 경쟁을 하다 보니 한 이블 덮고 있는 가족들끼리 분쟁이 생겨난 셈이다.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하이브 산하 레이블인 빌리프랩이 만든 걸그룹 아일릿. [사진 = 빌리프랩] 2024.05.02 oks34@newspim.com |
올해만 해도 투어스(플레디스), 르세라핌(쏘스뮤직), 투모로우바이투게더(빅히트뮤직), 아일릿(빌리프랩), 보이넥스트도어(KOZ엔터테인먼트) 등 하이브 소속 아이돌 그룹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여기에 어도어의 뉴진스가 가세한 것이다. 몸집은 거대해 졌지만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 보니 이번 사태와 같은 갈등이 불거졌다. 지난해 K팝 산업의 대부 격인 이수만 SM 총괄 프로듀서가 다소 이른 나이에 회사를 정리하고 업계를 떠났을 때 스스로 K팝 산업의 한계를 절감한 결과라는 분석도 있었다. 물론 그런 우려와 달리 K팝의 성장은 현재 진행형이고, 좀더 성장할 수 있는 여력도 충분한 것도 사실이다. 다만 지금과 같은 문어발식 확장은 성장의 발목을 잡을 확률이 높다.
특히 음악 산업은 다른 장르의 엔터테인먼트 산업과는 달리 '감성산업'에 가깝다. 집단의 협업보다는 개인의 창의성에 따라서 결과물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몇몇 대형기업들이 시장을 점유한 채 중소기업의 시장 진출을 막고 있는 것은 문화적 다양성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는 개성 있는 아티스트의 성장을 방해하여 K팝의 확장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oks3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