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의 무한 자가증식..그 후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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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오상용 글로벌경제 전문기자 = *①편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3. 역대급 이자비용과 부채의 자가증식
기축 통화국인 미국도 방만한 재정운용을 계속하다가는 2022년 가을의 영국 꼴을 면할 수 없다는 의회예산국(CBO) 필립 스와겔 국장의 경고는 미국 재정의 한층 암울한 미래를 담은 CBO의 `장기(2024~2054) 재정전망 보고서`가 발표되고 엿새 만에 나온 것이다.
지난 3월20일 CBO의 장기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지난해 6.2%에서 오는 2054년 8.5%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CBO는 "30년 후 예상되는 재정적자비율(8.5%)은 대공황 이후로 ▲2차 세계대전 및 그 직후 ▲2007~2009년 금융위기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 기간 등 세 차례를 제외하고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했다. 기초재정수지 적자가 지속적으로 큰 규모를 유지하는 가운데 불어나는 이자비용이 재정적자 비율을 밀어올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GDP 대비 재정적자(기초재정적자+순이자지출) 비율 추이 [사진=미 의회예산국] |
CBO는 "기초재정수지 적자의 경우 추정 기간의 실업률을 비교적 낮게 상정했음을 감안하면 상당한 수준"이라며 "향후 30년간 기초재정수지의 적자율은 평균 2.2%에 달해 과거 50년 평균치(1.6%)를 0.6%포인트 웃돌 것"이라고 했다.
재정수지 적자는 기초재정수지 적자와 순이자 비용 지출로 구성된다. CBO 추정에 따르면 오는 2054년까지 순이자 지출 증가세는 한층 가속도를 낸다.
순이자 지출은 지난해 GDP의 2.4%에서 올해 3.1%로 확대되고, 2034년과 2054년에는 각각 GDP의 3.9%와 6.3%에 이르게 된다. 즉 2054년 순이자지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6.3%)은 기초재정수지 적자비율(2.2%)의 3배에 달한다. 당장 2년 뒤(2026년) 이자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집행되는 예산지출만 1조달러에 이른다.
4. 민간 구축효과
지난해 GDP의 97%였던 국가부채 규모는 2029년 GDP의 107%에 도달해 2차 세계대전 직후의 사상 최고치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됐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나라 빚은 계속 증식해 오는 2034년에는 GDP의 116%, 2044년과 2054년에는 각각 139% 및 166%로 불어날 것으로 추정됐다
CBO는 "이러한 부채 증가는 경제 성장을 둔화시키고 미국 부채를 보유한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이자 지급을 늘려 재정 및 경제 전망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며 "의회의 정책 선택에도 더 많은 제약을 가할 수 있다"고 했다. 급증한 정부 부채가 경제성장을 압박하는 대표적인 경로는 민간 자금조달에 대한 구축이다.
급증하는 국채 발행이 저축을 빨아들이면서 민간 기업은 이전보다 더 많은 비용을 치러고 자금을 조달하거나 조달 길이 막힐 수 있다. 재정정책의 승수효과보다 민간의 창의적 활동이 경제성장에 더 크게 이바지해 왔다는 경험에 비춰볼 때 이는 장기적으로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게 된다.
물론 시장내에서는 AI 혁신이 이런 부정적 요소를 상쇄하고도 남을 생산성 증가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기대도 형성돼 있다.
이번 장기 재정 추계에서 CBO는 10년물 국채수익률이 올해 연평균 4.6%를 나타낸 뒤 2034년 4.1%로 주춤했다가 2054년에는 다시 4.4%로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CBO는 오는 2054년까지 10년물 국채 수익률의 평균치를 4.2%로 추정했다. 작년 추계 때의 (향후 30년간) 4.0%에서 0.2%포인트 높여졌다. 향후 30년에 걸쳐 10년물 금리가 평균적으로 4%를 계속 웃돌 것이라는 의미다. 같은 기간(향후 30년) 10년물 실질 금리는 평균 1.9%를 나타낼 것으로 추정했다. 역시 작년 추계 때의 1.7%에서 0.2%포인트 높여잡았다.
미국 10년물 국채 수익률의 예상 경로 [사진=미국 의회예산국] |
필립 스와겔 CBO 국장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오는 2029년이면 미국의 GDP 대비 부채비율은 2차 세계대전 직후 기록한 사상 최고치를 넘어서게 된다"며 "이는 전례없는 궤적"이라고 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중 불어났던 부채는 전쟁에 참전했던 세대 내에서 대부분 갚았다"며 "그러나 오늘날 생겨나는 재정부담은 현 세대가 아닌 다음 세대의 부담으로 미뤄진다"고 했다.
정치가 길을 찾아야 하지만 현재 정치권은 이 문제를 진지하게 들여다 볼 의지가 없다. 악사 투자운용의 매크로 리서치 헤드인 데이비드 페이지는 "대선 후보 둘 다 재정 건전성에 대해선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며 그 중 한명(트럼프)은 오히려 일몰이 도래하는 감세안을 내년 연장할 것이라 다짐하고 있다"고 했다.
참고로 전술한 CBO의 장기 재정추계는 트럼프 시절의 감세안이 내년 일몰을 맞는 것을 전제로 짜여졌다. CBO는 해당 감세안이 이런 전제와 달리 연장될 경우 2026년부터 2035년까지 연방 정부 부채는 5조달러 더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5. 중앙은행의 느슨한 인플레이션 관리
두자릿수를 향해 불어나는 재정적자 비율, 즉 정부의 분에 넘치는 재정정책은 그 자체로 인플레이션적이며 채권시장내 수급불안을 야기해 시장금리에 상방 압력을 가하기 쉽다. 이런 가운데 연방준비제도를 비롯한 중앙은행들의 인플레이션 관리 역시 느슨해지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알리안츠 자문역을 맡고 있는 모하메드 엘-에리언은 FT에 기고한 글에서 "훗날 경제 교과서가 지난주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중앙은행들이 엄격한 인플레이션 타게팅에서 멀어지기 시작한 시점으로 규정해도 놀랍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중앙은행들이 물가목표제를 변경하려 한다는, 골대를 옮기려 한다는 이야기다.
지난주 연준이 성장률과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높이면서도 연내 3차례 금리인하 경로를 유지하는 한편 스위스 중앙은행이 깜짝 금리인하를 연출하고 일본은행이 비둘기적 통화정책 정상화에 나선 것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엘-에리언은 연준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처음에는 2% 목표 달성에 걸리는 기간을 연장할 테고 한참 뒤에는 2~3%와 같은 밴드형 목표제로 전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러한 골대 옮기기는 통화정책의 신뢰를 훼손하고 기대 인플레이션을 흔들어 놓아 - 가뜩이나 암울한 재정전망으로 걱정하는 - 채권시장의 불안을 키울 수 있다.
다만 엘-에리언은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일부는 1970년대의 끔찍했던 경험을 가리키며 다시 치솟는 물가를 진압하기 위해 큼지막한 리세션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할 것이다. 다만 이 가능성은 작은 리스크에 해당하며 전체 경제의 후생을 끌어올릴 잠재력에 의해 감수할 만한 것(리스크)으로 정당화될 것이다. 나아가 더 유연한 공급을 촉진하기 위한 정부 정책이 더해지고 생성형 인공지능(AI)과 생명공학, 녹색 에너지 등 미래 성장 엔진을 진전시키기 위한 민관의 노력이 결합할 경우에는 특히 인상적일 것이다."(엘-에리언)
osy75@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