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달의 몰락'과 '춘천가는 기차'로 우리 가요계에 파란을 일으키면 등장했던 청년 김현철은 어느새 쉰다섯 살의 중년이 됐다, 머리에 희끗희끗 서리가 내렸고, 미소년 같던 얼굴에도 중후함이 자리잡았다. 그가 새 앨범 '겨울아 내려라'를 내고 콘서트를 가졌다. 막 콘서트를 마친 김현철을 만났다.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새앨범 낸 가수 김현철. [ 사진 = 에프이앤미 제공] 2024.01.25 oks34@newspim.com |
- 콘서트장의 풍경이 젊었을 때와 많이 다르죠?
▲ 반백의 머리를 한 중년 신사들과 딸과 함께 온 여성 팬들이 많았어요. 딸과 함께 온 팬이 저에게 사인을 요청하면서 제 노래가 자신의 10대 시절을 지켜줬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그런데 그 분과 같이 온 딸이 10대더군요. 한 세대가 흘러간 거죠.
- 본인도 나이가 들었다는 걸 느끼나요?
▲ 평소에 노래를 만들고 부를 때는 언제나 청년의 마음인데 무대에 서서 팬들과 만나면 저도 팬들과 함께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걸 실감해요. 그런데 가수가 나이를 의식하면 그때부터 음악하기 힘들어져요. 의식적으로 나이를 잊으려고 노력하죠.
이번에 낸 앨범은 12-2집 앨범이다, 작년 여름에 냈던 12-1집 '투둑투둑'에 이어서 낸 것이다.
- 하나의 앨범을 두 차례에 결쳐서 나눠 낸 이유가 있나요?
▲ 작년 여름 콘서트에 앞서서 비에 관한 노래를 준비했어요. 새로 만들어 놓은 곡도 있고, 이미 만들어놨던 곡도 있었죠. 준비하다 보니까 눈에 관한 노래도 많은 거예요. 그래서 이왕이면 소재별로 나눠서 여름과 겨울 시즌에 맞춰 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죠.
10대 시절부터 계절에 관한 노래를 많이 만들어온 그가 이번에 발표한 곡들은 '회색빛 도시에 내리는 눈'을 노래한다, 청춘의 한 때는 "고운 목소리로 사랑하는 님을 부르듯" 눈을 노래했다면 "내 부끄러움을 덮어줬으면 하는" 눈으로 변했다, 표제곡 '겨울아 내려라'에서 내리는 겨울이 자신의 부끄러웠던 과거를 덮어주길 바란다는 이야기가 담겼다. 내리는 눈을 보며 그저 설레고 감상에 빠지던 소년은 회고할 줄 아는 어른이 된 것이다.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김현철 앨범 재킷. [사진 = 에프이앤미 제공] 2024.01.25 oks34@newspim.com |
- 노래를 쓰면서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나요?
▲ 저는 멋 부리고 현학적인 얘기를 못해요. 그냥 솔직하게 마음속에 담아놨던 얘기를 풀어내는 거죠. 오랜 세월동안 만들어놓은 음악을 듣다보면 제 일기장 같아요. 그 노래 속에서 달라진 점을 느끼신다면 그건 팬들의 몫이겠죠. 저는 늘 같은 자리, 같은 표정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노래하니까요.
김현철은 늘 여름과 겨울, 비와 눈, 새벽과 아침을 소재로 곡을 쓰고 노래해 왔다. 계절과 기상과 시간의 변화를 깊게 들여다보는 타고난 감수성 덕분이었다. 이 소재들은 일상의 다른 말이기도 했다. 김현철은 범사(凡事)로 노래를 만드는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그저 머릿결을 스쳐 가는 바람을 맞는 그 기분을 노래로 묘사할 줄 알았고, 늘 걷던 동네를 특별하게 표현할 줄 알았다.
그래서인가. 이른바 '시티팝 리바이벌' 시대에 그의 음악이 다시 젊은 세대에게 소환되고 있다. 덕분에 지금 그 어떤 음악인보다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규 앨범만 두 장을 발표했고, '포크송 대백과' 프로젝트, 또 'Brush'와 '투둑투둑'. '겨울아 내려라' 등 일련의 음악을 작업했다. 스튜디오 작업뿐만이 아니다. 팬들과 계속해서 호흡하며 꾸준하게 무대에 서 왔다. 또 MBC 표준FM '김현철의 디스크쇼'(오후 10시5분)의 방송진행자로도 활돌 중이다.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새앨범 낸 가수 김현철은 이제 사랑 대신 인생을 노래하는 가수가 됐다. [사진 = 에프이앤미 제공] 2024.01.25 oks34@newspim.com |
- 3월 10일에 대학로 학전소극장 무대에 서는 걸로 아는데?
▲ 그곳은 제가 노래를 시작하던 무렵부터 이미 대중음악인들의 성지와 같은 장소였잖아요. 그런 상징적인 장소가 사라지는 걸 뒷짐 지고 볼 수 없었어요. 더군다나 제가 가장 존경하는 싱어송라이터 김민기 선배의 숨결이 어려 있는 장소이기도 하구요.
김현철은 이번 무대에서 김민기의 '봉우리'만큼은 자신이 꼭 부를 수 있게 해달라고 선후배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김현철은 '봉우리'를 들으면서 어디 가서 "나도 작사 좀 한다"고 얘기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봉우리를 얘기하면서 무심결에 바다를 얘기하고, 가장 높은 곳에게 가장 낮은 걸 말하는 김민기의 공력은 절대 따라갈 수 없었다.
이제는 사랑 얘기 대신 인생 얘기를 하는 가수 김현철.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늦은 저녁 빌딩 사이로 내리는 겨울비가 떠올랐다. 때로는 경쾌하면서도 때로는 무겁게 대지를 적시는 비처럼 김현철도 무르익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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