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공급하는 금융당국에 비해 국토부 단기적 역할 제한적
현재 부동산 PF의 위기에도 '강제성 없는' 중재자 역할에 그쳐
내년 초 건설업구조조정 포함 PF 대책 '옥석 가리기' 외에도 수요 유인할 '악성 미분양' 해소 방안도 제시돼야
[서울=뉴스핌]김정태 건설부동산 전문기자= 세밑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지난 15일 아침부터 부동산커뮤니티에선 난데없는 '지라시성 글'이 반복적으로 올라왔다. 내용인즉슨 한 대형 건설사가 파산선언을 하는데 오후 2시 엠바고가 걸려있다는 것이다.
그 대형 건설사는 시공능력평가 16위의 태영건설이라는 것은 이미 시중에 알려진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태영건설이 고금리 상황 속에서 무리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추진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다는 소문은 여러 언론에서도 여러 차례 보도됐고 공개는 시기의 문제였을 뿐이다.
다만 부동산커뮤니티에 이날 올려 진 대형건설사의 파산이 엠바고에 걸려 있다는 말 자체는 성립되기 어려운 관례이다. 엠바고라는 게 언론사들과 취재원 간의 보도시점을 유예하는 취재 관행을 말하는데, 기업도산과 같은 시급을 다투는 뉴스를 많은 언론사와 엠바고를 설정하는 것 자체가 성립되기 어려운 낭설이다. 물론 이날 엠바고로 정해졌다는 오후 2시에 관련 뉴스가 나온 것은 없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보름이 채 지나지 않은 지난 28일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소식이 정부발로 전해졌고 관련 대응방안도 전격 발표됐다. 결국 시기와 처리의 문제였다. 정부는 타 건설사 및 부동산 PF사업장과 금융시장에 전이되지 않도록 안정화 방안을 발표했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박상우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이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12.29 yooksa@newspim.com |
기시감이 든다. 정부는 이미 지난해 10월 레고랜드발(發) 부동산 PF 위기 당시에도 50조+@의 자금을 쏟아 붓고 있고 있었다. 그런데 또 태영건설발 PF 파장을 막기 위해 수십조 원의 유동성을 더 쏟아 부어야 하는 형국이다. 금융당국은 일단 85조 원까지 확대해 유동성을 공급한다는 방침이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더 늘리겠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금융시장 안정화에 대한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긴 하다. 하지만 태영건설의 익스포저(위험 노출액)가 4조5800억 원이라며 금융 회사들이 안아야 할 리스크가 총 자산의 0.09%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과는 큰 괴리가 느껴진다. 부동산 PF 위기가 진화(鎭火)되지 않고 전이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무게를 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사태는 금융당국이 단기적으로 나서야 할 역할이 많았던 반면, 국토교통부의 역할은 사실 단기적으로는 제한적이었다. 국토부가 내놓은 대책은 산하기관인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통해 분양계약자를 보호하는 일이다. 하지만 태영건설이 진행하는 대부분 사업장에선 분양보증이 진행되고 있고 시공 자체를 수행하는데는 문제가 없기 때문에 분양계약자들이 당장 입을 피해는 없어 보인다.
현재 국토부의 역할은 그나마 지연되고 있는 부동산 PF 사업장에 대해 조정위를 통해 중재자로서 사업 재개를 권고하는 일이다. 법적 강제성은 없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사업 재개가 어려워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
다만 박상우 국토부 장관이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 다음날 열린 첫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PF 사업성에 기반해 '옥석 가리기'에 나서겠다는 입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 장관의 발언은 살릴만한 사업장에는 유동성과 보증강화에 나서되, 악성 사업장은 정리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박 장관은 인사 청문회에서도 이와 관련해 좀 더 구체적 해법을 제시했다. 그는 악성 사업장의 정리하는 방식을 '제 3자 인수'로 사용해야 충격이 덜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국토부가 PF 조정위를 통해서도 사업장들의 재개가 어렵다면 '제 3자 인수' 방식을 통해서라도 적극적인 정리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악성 미분양 문제도 PF를 해결해야 하는 근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전국 미분양 물량은 지난 10월 말 현재 5만8299가구로 지난 2월 정점이었던 7만5438가구이 비해선 줄었다. 문제는 '악성 미분양'이라고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은 오히려 연초보다 늘어났다는 점이다. 본 PF리스크는 미분양보다 준공 후 미분양으로 인해 촉발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국토부는 이 같은 사안의 시급함을 알고 있기에 내년 초 건설업 구조조정방안을 포함한 PF대책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PF 사업장 나아가 건설사의 부실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도 국토부가 잘 알 것이다. 털어 낼 것은 털어 내되, 공급을 정상화시키려면 수요 역시 받쳐줘야 한다. 지금의 PF부실은 무분별한 사업 확대도 있지만 얼어붙은 수요도 한 몫하고 있다. 지난 9월 국토부가 공급활성화 대책 당시 수요 진작 관련 대책을 쏙 빼 놓고 발표한 실책을 되풀이 해선 안된다. 특히 악성 미분양을 해소하기 위해선 특단의 수요 유인책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미분양 매입에 대한 취득세, 양도소득세 등 세제혜택이 한시적이라도 있어야 한다.
박 장관이 지난 26일 취임사에서 "부동산 PF 연착륙 등 주택시장 불안요인을 최소화하는 정책을 펼치겠다"고 밝혔듯이 공급과 수요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시장정책을 펼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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