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마켓 형식 사업 모델 유사
파페치 뒤엔 쿠팡 물류망도
적자인 국내 플랫폼 타격입나
"명품은 빠른 배송 중요치 않아"
[서울=뉴스핌] 노연경 기자 = 스타트업끼리 경쟁하던 온라인 명품 시장에 쿠팡이 뛰어들었다. 쿠팡이 촘촘한 물류망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대하면 국내 온라인 명품 플랫폼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을 것이란 전망이다.
2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쿠팡의 모회사인 쿠팡Inc는 지난 18일 세계 1위 온라인 명품 플랫폼 파페치를 인수했다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공시했다.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사진=뉴스핌 DB] |
2007년 영국에서 출범한 파페치는 샤넬·에르메스 등 1400개 명품 브랜드 상품을 190여 개국에서 판매하는 세계 최대 명품 이커머스다.
쿠팡은 국내 온라인쇼핑 시장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지만, 유독 패션이나 뷰티와 같은 고부가 가치 산업에서는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감성 장사'가 필요한 명품은 생필품 구매 채널로 인식된 쿠팡의 가장 큰 약점이다.
이에 쿠팡Inc는 무리한 사업 확장과 중국 소비 감소 등으로 파산 위기까지 간 파페치에 5억 달러(약 65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하며 경영권과 소유권을 모두 가져오기로 했다.
정확히는 쿠팡Inc와 투자사 그린옥스 캐피탈이 파페치 인수를 목적으로 세운 합작회사 '아테나'가 파페치와 대출 계약(브릿지론)을 체결하고 5억 달러를 지급하는 형태다. 아테나의 지분은 쿠팡Inc가 80.1%, 그린옥스 펀드가 19.9%를 소유한다.
쿠팡의 깜짝 인수 소식에 유통업계와 패션업계 모두 적잖이 놀라는 눈치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파산 위기인 파페치 인수 후보로 여러 곳이 거론됐지만, 쿠팡의 얘기는 들려온 게 없었다"며 "이번 인수 소식을 듣고 매우 놀랐다"고 말했다.
다만 이들은 쿠팡을 당장 명품 수요를 빼앗아 갈 경쟁자로 보진 않았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백화점 명품 소비자와 온라인 명품 플랫폼 소비자가 겹치지 않는다는 건 이미 국내 온라인 명품 플랫폼이 생길 때 확인된 사실"이라며 "백화점은 오프라인에서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가 있기 때문에 온라인 플랫폼과는 차별화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업계 관계자들은 쿠팡의 파페치 인수로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을 곳으로 비슷한 사업 구조를 가지고 있는 국내 온라인 명품 플랫폼을 꼽았다.
국내 온라인 명품 플랫폼으로 대표되는 곳은 머스트잇, 트렌비, 발란 3사로 일명 '머트발'로 불린다.
파페치는 명품 도매상인 유럽 부티크를 입점시켜 판매수수료를 받는 형식으로 명품을 판매하는데, 이들 3사도 병행수입 업체를 입점시켜 판매수수료를 받는 '오픈마켓' 형식으로 사업을 운영한다.
게다가 엔데믹(전염병의 풍토병화) 이후 온라인 명품 소비 바람이 꺾이며 '머트발' 3사 모두 영업적자를 기록 중이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심을 받으며 한때 머스트잇과 트렌비의 합병 논의까지 오갔다.
이에 세계 최대 플랫폼인 파페치가 국내에서 쿠팡의 물류망까지 이용하기 시작하면 가장 유사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국내 온라인 명품 플랫폼이 제일 먼저 타격을 입게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것이다.
쿠팡은 직거래 상품뿐 아니라 판매자 상품까지 익일배송하는 '로켓그로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최장 5일까지 걸리는 해외 명품 배송 기간을 익일로 앞당길 수 있다.
다만 이와 관련해 온라인 명품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쿠팡이 두려운 존재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쿠팡이 명품 판매까지 잘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상황"이라며 "생필품과 달리 명품은 배송이 빠르다는 게 큰 강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또 파페치가 파산 위기까지 갔을 정도로 재무구조가 불안정한 상황이기 때문에 쿠팡이 계속해서 자금을 쏟아부어야 할 텐데 이 부분도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ykno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