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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마약 대책, '장님 코끼리 만지기' 되지 않으려면

기사입력 : 2023년12월08일 14:50

최종수정 : 2023년12월08일 15:07

[서울=뉴스핌] 송현도 기자 = "기자님, 놀라운 이야기인가요?"

최근 인터뷰 중 마약 전문 법조계 관계자가 기자에게 반문한 내용이다. 관계자는 기자가 순간 말이 없자 살포시 웃으며 기색을 살폈다.

송현도 사회부 기자

대한민국에서 마약 사건은 이제 놀랍지 않다. 유명 배우가 관련 재판을 받는 등 잇따른 연예인 마약 투약 의혹 기사가 쏟아지고, 롤스로이스남 사건처럼 마약 관련 범죄 사건이 연이어 빗발친다. 마약류에 관한 국민인식도도 지난해 81점으로 높은 편이다.

그럼에도 새삼스레 법조계 관계자와의 대화 중 놀랐던 것은 사건을 편린적으로 접했을 때보다 강남 라인 사회부 기자가 된 뒤 마약이 우리 생활에 더 밀접하게 접근했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취재 중 마약 사범의 던지기 장소로 사용된 곳이 퇴근하면서 자주 지나치던 건물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각종 데이팅 앱과 텔레그램, SNS에서 검색 한 번이면 마약을 거래 루트를 접할 수 있다는 점을 목격했을 때의 기억들이 관계자와의 대화에서 불현듯 떠올랐다.

마약 범죄 각종 통계는 이런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018년 6513건에 불과했던 마약 범죄는 지난해 1만331건으로 5년 만에 2배로 불어났다. 마약사범은 지난해 1만8395명으로 5년 만에 45.8% 증가했다. 과거 마약 청정국이라고 불리던 대한민국에서 이렇듯 도처에 마약이 스며든 이유는 마약 단속 정책을 마련해야 할 관련 기관의 방조가 크다.

정책 당국은 이제야 마약 확산을 뿌리뽑기 위해 각종 정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미 만연한 마약 확산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복지부는 내년 상반기 중 마약 중독자 치료에도 건강보험을 적용한다는 안건을 상정하며 지원 대책을 발표했지만 정작 중독 치료를 전담해야 할 정부 지정 재활의료기관은 중독자 치료 전문의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는 상황이다.

당국이 늑장 정책을 내놓는 사이 마약 범죄는 이미 지역사회까지 스며들었다. 그간 마약 사범이 적은 지역으로 알려졌던 제주지역은 10만명당 마약류 사범 수가 지난해 16.66명으로 범죄 증가율이 전국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책당국도 억울하기는 매한가지다. 한 복지부 관계자는 치료 전문의 수급에 대해 "정신건강 전문의 중에서 수련 과정을 거치면 되는데 그 인력이 없다. 치료보호 사업 운영 기관에 원래 지원되는 예산이 없었다"며 이제야 지원 방안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입법부가 정부를 도와 관련 법령을 손질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모 국회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마약류 밀수 적발 금액을 두고 "5년 사이에 불과 5배 늘어난 수준"이라고 발언하여 빈축을 사기도 했다. 정치권력이 마약 범죄와 치안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간과해 위험에 온전히 대응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가리켜 회색 코뿔소라고 부른다. 대한민국의 마약 사건은 코뿔소를 넘어 코끼리에 필적하는 몸피를 키우고 있다. 올해 초부터 10월까지 경찰에 적발된 마약사범만 이미 2만2393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한 상황이다.

그 사이에 범죄자들은 더 교묘한 수법으로 판치고 있다. 불법 마약 투약 적발을 피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일부러 병원에서 시술받는 일은 이미 비일비재하다. 또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검사에서 검출되지 않는다는 소문을 듣고 일부러 기존 마약보다 중독성과 환각이 심한 신종 합성 마약을 투약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더 이상의 코끼리 더듬기는 그만하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더 이상의 늑장 대응은 대한민국을 마약 청정국이 아닌 마약 주요 수입국으로 만드는 데 일조할 뿐이다. 정치계와 정책 당국이 국민의 건강 증진과 범죄 예방 정책을 위해 이제는 공조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dosong@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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