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건 중 1건 실형…'솜방망이 처벌' 비판
형벌 법규 명확성 모호하다는 지적도
법조계 "헌법소원 거쳐 법안 개정해야"
[서울=뉴스핌] 김신영 기자 = 중대재해 사건에 대한 법원의 유죄 판결이 잇따르고 있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을 둘러싼 실효성 논란은 여전하다. 노동계는 집행유예에 그치는 처벌 수위를 지적하는 반면 법조계는 애매모호한 법의 적용 범위를 보다 명확히 개정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 건물 신축 현장 추락사고와 관련해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산업재해치사) 혐의로 기소된 건설업체 대표가 지난 21일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민주노총·중대재해없는세상만들기공동행동·생명 안전 후퇴 및 중대재해처벌법 개악 저지 공동행동 관계자들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중대재해 기업 엄정 수사 즉각 처벌 촉구 전국동시다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07.25 mironj19@newspim.com |
해당 업체에서 근무하던 피해자는 현장에서 환기구 페인트칠을 하다가 지하 4층으로 추락해 숨졌다. 수사 결과 업체 대표는 사고 발생 4개월 전 현장 안전관리자가 그만두자 인건비와 구인난을 이유로 후임자를 고용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은 서울에서 벌어진 중대재해 1호 사건으로 법원의 판단에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1심 판결을 두고 노동계를 중심으로 솜방망이 처벌이 반복되면서 중대재해법이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번 판결을 비롯해 작년 1월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1심 선고가 내려진 11건의 사건 중 실형이 선고된 사례는 1건에 불과하다는 이유다. 국내 1호 중대재해 사건인 두성산업 유해물질 중독 피해 사건 또한 1심 선고에서 대표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산업재해 예방을 목적으로 중대재해법이 탄생했지만 정작 산재 사망사고는 늘었다는 통계도 법안의 실효성에 의문을 더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2년 산업재해 유족급여 승인 기준 사고사망 현황'에 따르면 2022년 사망자는 874명으로 법 시행 전인 2021년(828명)보다 46명 늘었다.
법조계는 입법 단계부터 허술했던 중대재해법의 한계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대재해법은 형사처벌 법규에 해당하지만, 정작 처벌받지 않으려면 어떤 부분을 지켜야 하는지 명시해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화우 노동그룹장인 오태환 변호사는 "중대재해법은 형벌 법규로서의 명확성을 갖추지 않았다"며 "개인 과실이 경합된 사건을 안전한 사업장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처벌할 수도 없고 기준이 모호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법원의 1심 선고가 나온 중대재해 사건 판결을 보면 기업의 위반 사항과 중대재해와의 인과관계를 본격적으로 다룬 경우는 없었다"며 "대부분 기업 대표가 혐의를 자백하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무조건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이 능사만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송인택 변호사(중대재해처벌법 실무연구회장)는 "중대재해로 근로자가 숨졌을 때 근로자의 과실이 있을 수도 있고 원인은 복합적"이라며 "근로자를 죽음으로 내몬 사업주는 엄하게 처벌해야 하지만, 고의가 아닌 사고에도 최대 징역 30년까지 선고하도록 규정한 중대재해법의 형량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봤다.
중대재해법 시행 초기부터 위헌 소지 우려가 제기된 만큼, 법원의 위헌법률심판 제청이나 헌법소원을 통해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은 뒤 법안 개정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다만 중대재해 1호 사건으로 기소된 두성산업 측이 1심 재판 과정에서 중대재해법이 명확성의 원칙을 위반하고 있다며 법원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가 기각된 바 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법정형이 센 법안이지만 급하게 제정되는 바람에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며 "위헌 여부를 판단 받고 법안 개정을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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