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 R&D 비용 확대…반도체 인력 충원 시급
TSMC, 학력·국적 제한 폐지 등 특단의 조치
비메모리 인력 충원·정부와의 논의 등 힘써야
[서울=뉴스핌] 이지용 기자 = 첨단 반도체 개발을 위해서는 어떠한 자원보다도 '전문 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반도체 분야는 고도의 기술력이 집적화되는 특성상 다른 산업보다도 인력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그 만큼 국내외 반도체 기업들은 반도체 전문 인력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내년에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생산 능력을 올해 대비 2.5배 이상 올릴 예정이며, 최근에는 인공지능(AI) 폰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로 하면서 첨단 반도체 개발을 위한 인력 확보가 시급해졌다. SK하이닉스 또한 최근 증가한 고객사의 수요에 맞춰 HBM 공급 물량을 늘리고 초격차 기술을 위한 연구&개발(R&D)에 나서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올해 R&D 비용으로 20조7997조원, SK하이닉스는 3조1356억원을 쏟아부었다. 삼성전자는 작년 연간 8.2%에서 9월 말 기준 10.9%로, SK하이닉스도 같은 기간 11.0%에서 14.6%로 올랐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첨단 반도체 개발을 위해 R&D에 이례적인 투자 확대를 단행하면서 필요 인력 규모도 더욱 커질 전망이다.
산업부 이지용 기자 |
반도체 산업 자체의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는 반면, 이를 감당할 수 있는 반도체 인력은 턱 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오는 2031년 국내 반도체 인력 규모가 30만4000명으로 증가하지만, 2021년 기준 반도체 인력 규모는 17만7000명 수준에 불과하다는 분석을 내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고급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해 대학들에 설치한 계약학과도 좀처럼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SK하이닉스에서 신설한 한양대 반도체공학과의 등록 포기율은 275%에 달한다. 삼성전자의 계약학과인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도 등록 포기율이 130%를 기록했다. 1차 합격자 전원이 모두 등록을 포기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관련 학과에 지원한 우수 학생들이 대부분 의대로 빠져나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에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과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 등 경영진이 각 대학을 돌며 반도체 인력 확보에 힘을 쓰고 계약학과에 대한 혜택도 강화하고 있지만 이공계 기피 현상을 뒤집을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반도체 관련 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교수진의 인력 풀도 부실한 것은 마찬가지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과 SK 등이 수백조원을 들여 공장을 짓는 등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절대적 인력 풀이 너무 작다"며 "계약학과가 생겨도 교수 수가 부족해 인력 양성에 악순환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도 국내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인력난을 겪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보다 더 공격적인 방법으로 인력 확보에 나서고 있는 모양새다.
파운드리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경쟁을 벌이고 있는 대만의 TSMC는 올해 기존의 2년제 전문대 졸업 이상의 학력자를 채용했지만 학력 제한 조건을 아예 폐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력이 있다면 고등학교 졸업생과 비전공자 등에게까지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다. 국적 조건도 없앴으며 미국, 대만, 일본, 한국 등 7개 나라에서 390개 분야의 상시 채용을 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대규모 투자로 무섭게 국내 기업을 추격해오고 있는 일본의 라피더스도 자국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미국에서 인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미국의 제재에도 막대한 자금을 들여 첨단 반도체 생태계 구축에 나서고 있는 중국 기업들 또한 국내외 인력들을 흡수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앞으로 시장 규모가 커질 '시스템반도체(비메모리)'를 중심으로 집중적인 투자에 나서야 할 것이다.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비메모리는 70%, 메모리는 30%를 차지한다. 국내 기업들이 전통적인 강자로 있던 메모리에서 이제는 비메모리의 인력 충원 등 투자에 힘써야 할 수 밖에 없다.
또 기술 개발과 설비 등에 집중된 투자를 전문 인력 확보로 일부 전환하는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반도체 인력에 대한 처우가 개선되지 않으면 의대 쏠림 현상이 심화될 뿐만 아니라, 재직 중인 인력들의 해외 유출로 되레 기업 내 인력 규모가 감소할 우려가 크다.
기업들의 힘 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 부처와의 논의를 통해 실효성 있는 반도체 인력 확보 지원책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반도체 분야에서 인력을 확보하지 못한 기업은 도태될 수 밖에 없는 시대가 됐다. 최대한 많은 고급 인력을 확보하는 기업이 향후 첨단 반도체 시장을 이끌게 된다. 인력이 곧 기술로 이어지고 기업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들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인력' 중심 성장을 이뤄간다면 어떠한 글로벌 기업들보다도 강력한 반도체 생태계 구축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leeiy52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