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소감과 함께 집필하며 느꼈던 순간에 대해 전했다.
한강 작가는 14일 서울 양천구 목동에 위치한 한국방송회관에서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로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 수상 후 귀국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한강 작가는"시상식 자체가 워낙에 격식이 있다기보다 캐주얼한 분위기라서 특별히 상패를 주는 것도 없었다. 수상 소감도 따로 없었는데 그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면 좋을 것 같아서 당시 썼던 소감을 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메디치상은 공쿠르상, 페미나상, 르노도상과 함께 프랑스의 4개 문학상으로 꼽히는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 한강 작가는 2017년 '희랍어 시간'으로 같은 상 최종후보에 오른데 이어 올해 '작별하지 않는다'로 포르투갈 작가 리디아 호르헤와 함께 만장일치로 공동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메디치 외국문학상 수상은 한국 작가로서는 처음이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로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14일 오후 서울 양천구 한국방송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2023.11.14 pangbin@newspim.com |
'작별하지 않는다'는 지난 8월 해외에서는 처음으로 프랑스 대표 출판사 중 한곳인 그라세에서 최경란·피에르 비지우 번역으로 출간됐다. 이번 수상은 2016년 '채식주의자'로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한강 작가의 가장 최근 작품에 주어진 문학적 찬사라 더욱 의미가 깊다.
이날 한 작가는 먼저 책을 쓰며 도움을 받았던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는 "번역을 맡아주신 최경란 선생님, 피에르 비지우 선생님 두 분께 감사드리고 싶다. 그라세 출판사 역시 한 마음으로 이 책을 위해 많은 일을 해주셨다. 편집자를 비롯해 많은 분들께 감사를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이 상을 받을 거라고 예측을 못했다. 작가가 글을 쓰는 것은 그렇게 결과하고 상관없는 일인 것 같다. 저는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게, 글을 쓸 때 독자를 생각하지 않는다. 저를 위해 쓴다는 것 또한 아닌데 독자는 생각하지 않고 소설을 어떻게 완성시킬까에 대한 생각만 한다"며 "이 작품도 2021년 4월 말에 완성을 했는데 중간에 완성을 못할 것 같은 고비도 많았다. 소설을 쓰면서 가장 기뻤을 때가 이 작품을 완성했을 때였다. 워낙 힘들게 썼다. 상을 받는 순간이 기쁜 것이 아니라, 완성한 순간이 제일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로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14일 오후 서울 양천구 한국방송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2023.11.14 pangbin@newspim.com |
수상 소식이 알려진 9일 저녁부터는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다. 이에 예스24와 교보문고 온라인 일간 베스트 셀러 1위를 기록했으며, 이날 기준으로 교보문고 종합 6위(온라인 주간 베스트), 예스24 종합 7위, 알라딘 종합 10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 작가는 "이 책은 2021년 9월에 출간이 됐는데 시작점은 2014년 여름이다. 이 책은 첫 두 페이지에 실린 내용인 꿈을 실제로 2014년 여름에 꾸었고, 그걸 기록을 했다. 이 꿈이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그 다음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 고민하면서 몇 년을 보냈다. 여러 버전으로 소설을 써봤는데 마침내 지금 경하와 인선, 정심 세 여성이 이어 달리기 하는 것과 같은 구조를 찾아내 쓰게 됐다. 완성하기까지 7년이 걸린 셈"이라며 "저에게는 최근 작품이고 지금까지 저에게 가깝게 느껴지는 소설이기 때문에 수상 소식을 알게 됐을 때 더욱 기뻤다"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로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14일 오후 서울 양천구 한국방송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3.11.14 pangbin@newspim.com |
작품은 총 3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 '새'로 시작돼 2부 '밤', 그리고 3부 '불꽃'으로 끝맺음 된다.
한강 작가는 "이 책은 인간성이 밤 아래로 계속 내려가서 그 아래서 촛불을 밝히는 이야기라고 생각을 했다.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1부는 서울에서 눈보라를 뚫고 제주까지 날아가서 폭설을 헤치고 인선의 외딴 집까지 가는 과정이고, 2부는 인선의 집에서 과거로 갔다가 3부에서는 인간성 아래로 끝까지 내려가 촛불을 밝히는 구조로 되어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끝까지 작별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작별은 부정문인데 작별한다는 것은 정말 헤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있지만 이별을 고하지 않고 이별을 행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 두 가지가 중첩되어 있는 것이다. 이별을 고하지도 않고, 행하지도 않아서 정말 작별하지 않은 상태가 이 제목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소설의 제목을 어떻게 번역을 할지 궁금했는데 일단은 한국어에서는 주어를 생략할 수 있다. 작별하지 않는 행위에 주체가 나일 수도 있고, 너일 수도 있고, 그나 그녀일 수도, 우리일 수도 있다. 이 문장은 그렇게 열려 있는데 유럽에서는 주어를 정해야 한다. 그래서 주체를 어떻게 정할지 궁금했는데 '불가능한 작별'이라고 붙여서 절묘하게 주어를 특정하지 않고 의미를 살렸던 것 같아서 좋았다. 불가능한 작별을 하는 대신에 끝끝내 작별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결의 속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읽어주시면 감사할 것 같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로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14일 오후 서울 양천구 한국방송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23.11.14 pangbin@newspim.com |
한강 작가는 역사에 대한 내용을 주로 다룬다. 이전 '소년이 온다'는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 다뤘다면, 이번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그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그 여정을 함께 하면서 점차 가까이 눈을 뚫고 가는 과정이다. 거기에 다다랐을 때 사건의 깊은 어둠 속으로 내려가게 된다. 그런 과정이기 때문에 그 사건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주인공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감각적으로 연결된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답했다.
또 "'희랍어 시간' 이후 밝은 내용을 쓰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됐다. 그 이유를 찾으며 제 안으로 파고들어 가다가 제가 만 9살에 간접 경험했던 광주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내면을 알아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이 들어서 '소년이 온다'를 쓰게 됐다. 쓰면서도 경험한 내면의 순간이 있었고, 출발한 다음에 꾸었던 꿈이 있었고 그게 이번과 연결됐다는 걸 느꼈다. 처음부터 4.3에 대해 쓰려고 하진 않았다. 제주에 조금한 방을 얻어서 서울과 오가며 지냈다. 그때 제주의 날씨를 느끼며 걸었는데 그 꿈이 이렇게 연결됐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쓰게 된 작품들"이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한강 작가는 "앞으로는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고 싶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면서 너무나 추웠기 때문에 저는 봄으로 들어가고 싶다"며 웃어보였다.
한강 작가가 한국 작가로 처음 수상한 메디치상은 1958년 문학 애호가이자, 후원자인 갈라 바르비장과 소설가이자 건축가인 장피에르 지로두가 제정한 상이다. 1970년 메디치 외국문학상, 1985년 메디치 에세이상이 제정됐으며 상금은 각각 1000유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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