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와 환율 두 마리 토끼
시장 충격 VS 인플레 리스크
FOMC 이후 셈법 더 복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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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황숙혜 기자 = 달러/엔 환율이 151선까지 뚫리면서 일본은행(BOJ)의 정책 결정을 둘러싼 실망감이 표출된 가운데 시장 전문가들은 여전히 2024년 일드커브통제(YCC)의 전면 폐지와 마이너스 금리 종료를 예상한다.
이른바 미세 조정만으로는 환율 방어와 금리 정상화를 실현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매크로 여건을 보더라도 정책자들이 과감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톨루 캐피탈 매니지먼트의 스펜서 하이미안 최고경영자(CEO)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일본은 석유를 포함한 주요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하는 실정"이라며 "이번 일드커브완화(YCC) 추가 완화 발표에도 엔화가 가파르게 떨어지는 상황을 볼 때 2024년 이를 전면 폐지한다는 발표가 나와도 놀랄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달러/엔 환율이 투자은행(IB)의 전망대로 155엔까지 오르면 원자재 뿐 아니라 각종 수입 물가 상승으로 일본의 인플레이션이 추가로 뛸 수밖에 없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BOJ) 총재 [사진=블룸버그] |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일본 도쿄 지역의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연율 기준 3.3%를 기록해 9월 2.8%에서 상승폭을 확대했다.
헤드라인 소비자물가지수(CPI)에서 음식료를 제외한 인플레이션(core inflation)은 18개월 연속 일본은행(BOJ)의 목표치인 2.0%를 웃돌았고, 음식료와 함께 에너지 가격까지 제외한 인플레이션(core core inflation) 지표는 12개월 연속 목표치를 상회했다.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 일본은행(BOJ)이 사실상 일드커브통제(YCC)를 폐지했다는 의견과 통화정책 정상화를 향한 미세 조정이라는 판단이 엇갈리는 가운데 어느 쪽도 녹록치 않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먼저, 양적완화(QE)와 마이너스 금리 정책(NIRP), 여기에 일드커브통제(YCC)까지 지난 수 십년간 이어진 실험적 통화정책이 영속되기 어렵다는 데 이견의 여지가 없다.
일본은행(BOJ)이 10년물 국채 수익률을 통제하기 위해 사들인 국채 물량은 일드커브통제(YCC)를 처음 도입했던 2016년 119조2000억엔에 달했고, 이후 줄어들었던 매입 규모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과격한 매파 정책이 추진된 2022년 111조1000억엔으로 뛰었다.
미국의 장단기 국채 수익률 상승이 일본 시장 금리 상승을 부추기는 이른바 '스필오버(spillover, 넘침)' 효과가 이어지는 가운데 주요 외신들은 2023년 국채 매입 물량이 2016년 기록한 사상 최고치인 119억2000억엔에 근접하거나 이를 넘어설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연준이 고금리의 장기화(higher for longer)를 예고한 한편 2023 회계연도 1조7000억달러에 이른 미국 재정적자와 국채 발행 물량 증가를 빌미로 한 미국 국채시장의 기간 프리미엄이 상승하는 상황.
미국과 일본의 10년물 국채 수익률 격차가 이미 4%포인트를 넘어선 가운데 스필오버 효과를 막아내려면 일본은행(BOJ)이 매입해야 하는 국채 물량은 2024년 더 늘어날 여지가 높다.
2022년 12월과 2023년 7월, 그리고 3개월만인 10월 일드커브통제(YCC)를 수정해 10년물 국채 수익률의 상단을 높인 것은 통화정책 정상화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단면이다.
문제는 정상화 속도와 폭을 결정하는 일이 간단치 않다는 데 있다. 과격한 행보를 취할 경우 채권을 중심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에 커다란 후폭풍을 일으키는 한편 금리 급등에 따른 일본 정부의 재정 부담과 가계의 타격이 불 보듯 뻔하다.
반면 정책 변경의 규모가 시장의 기대치에 못 미칠 경우 이번과 같이 엔화 급락을 초래할 수 있다. 이 역시 물가 안정 측면에서 정책자들을 곤혹스럽게 하는 대목이다.
시장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노무라 리서치의 기우치 다카히데 이코노미스트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우에다 총재가 국내외 금융시장에 충격을 가하지 않으면서 통화정책을 정상화하는 온건한 기조를 취하는 모습"이라며 "바람직한 움직임"이라고 평가했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2016년 일드커브통제(YCC)와 마이너스 금리 정책(NIRP)이 시행된 이후 보험 업계를 중심으로 일본 투자자들이 매입한 해외 채권이 66조엔에 달했다.
미국을 필두로 프랑스와 호주 등 주요국 국채와 회사채, 그 밖에 기관채와 지방정부 채권까지 고수익률에 목 마른 일본 투자자들의 먹잇감이었다.
같은 기간 일본 투자자들이 매입한 해외 주식도 27조2000억엔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7년간 총 93조3000억엔 규모의 해외 채권과 주식이 일본 기관 및 개인의 포트폴리오에 편입된 셈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일본과 미국의 10년물 국채 수익률 스프레드가 3%포인트로 좁혀지면 본격적인 해외 자산 '팔자'와 투자 자금의 국내 '유턴'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한다. 월가가 일본은행(BOJ)의 일거수 일투족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JP모간은 보고서에서 "우에다 총재가 지극히 조심스러운 정책 변경을 추진하고 있고, 이는 일본은행(BOJ)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대응"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마이너스 금리 정책(NIRP)을 폐지할 경우 국채 이자 부담과 모기지 금리를 포함한 각종 이자율 상승으로 일본 정부와 가계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고 월가는 경고한다.
일본은행(BOJ) 연간 국채 매입 물량 및 2023년 전망치 [자료=일본 재무성, 블룸버그] |
정치권과 의견 조율이 우에다 총재의 '약한 고리'로 꼽힌다. 부채 규모가 눈덩이로 불어난 가운데 금리가 오르면 이자 부담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만기 도래하는 국채의 차환 발행에도 차질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
반면 다른 한 편에서는 엔화 폭락과 인플레이션 리스크 역시 방관할 수 없는 문제라고 지적한다. 엔화 약세는 한국 원화를 포함해 아시아 주변국 통화에도 영향을 미치는 변수라는 점에서 일본은행(BOJ)의 미세 조정을 둘러싼 불만 섞인 목소리가 번지는 모습이다.
2016년 YCC 시행 이후 일본 투자자들 해외 채권 및 주식 매입 누적액 [자료=일본 재무성, 블룸버그] |
상당수의 이코노미스트가 2024년 3월 임금 협상(슌토) 결과를 지켜본 뒤 4월 마이너스 금리 정책(NIRP)을 폐지하는 시나리오를 점치는 것은 환율에 무게를 둔 판단이다.
정책자들이 미세 조정을 고집하더라도 엔화 하락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상승이 결국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M&G 인베스트먼트의 에바 순 웨이 펀드 매니저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일본은행(BOJ)이 과격한 긴축을 피하는 동시에 엔화의 과도한 하락을 방지하겠다는 입장"이라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인 표정을 지었다.
금융시장은 11월1일(현지시각) 미국 연준(Fed)의 통화정책 회의 결과가 발표되면 또 한 차례 크게 출렁거릴 전망이다.
이번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관전 포인트는 연율 기준 4.9%에 달한 3분기 성장률과 전월 대비 0.7% 늘어나며 월가의 예상치를 넘어선 9월 소매판매 등 거시경제 지표에 대한 정책자들의 진단이다.
기준금리가 5.25~5.50%에서 동결될 가능성에 힘이 실린 가운데 실물경기 진단이 향후 정책 행보에 대한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일본은행(BOJ)의 속내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뜨거운 가운데 연준의 행보까지 맞물리면서 트레이더들의 고민이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shhw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