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승현 기자 = 윤석열 정부를 출범시킨 지난 대선의 키워드는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었다. "찍을 사람이 없다"는 국민 여론 속에서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최종 득표 격차는 0.73%p에 불과했다.
아무리 정교한 여론조사로도 오차범위 내로 들어갈 수 없는 박빙의 결과였다. 승자는 대한민국 국정 책임자가, 패자는 절대 다수 의석을 가진 제1야당의 당대표가 됐다.
여소야대라는 힘겨운 시간이 시작됐고, 현재까지도 여야는 극한의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내년 4월 10일 치러질 22대 총선을 210일 앞둔 지금 자신에 대한 사법리스크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이 대표는 단식 15일차를 이어가고 있다.
김승현 정치부 차장 |
21대 국회 마지막 정기회를 시작한 국회는 국정감사와 2024년도 예산안 처리를 앞두고 있다. 국정감사는 '야당의 시간'으로 불린다. 야당인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를 향해 파상공세를 펼치고 여당인 국민의힘은 방어에 나선다.
국민은 늘 건설적인 비판과 대안 마련을 바라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벌써 국감장에서 들려올 고성과 파행의 모습이 그려진다. 내년도 예산안도 법정 시한인 오는 12월 2일 내 합의 처리될 것으로 예상하는 정치권 인사는 없다.
여야는 국감과 예산안 처리 이후 본격적인 총선 준비에 들어간다. 사실 이미 총선은 시작됐다. 지역에서는 지역구 사수에 나서는 현역 의원들과 설욕을 노리는 과거 낙선자들, 또 새로운 도전자들이 곳곳에서 얼굴 알리기에 바쁘다.
서울 여의도 곳곳에서 삼삼오오 만나는 인사들은 총선 이야기를 나눈다. 다만 어느 당이 이길 것 같은지, 쪼개지는 당이 있을지 등등, 시대정신과 민생 이야기는 없고 온통 총선 결과와 이합집산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의 주인공이었던 두 지도자가 직위만 바뀐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조금 과장해서 정치 뉴스의 90%는 상대 정당과 지도자에 대한 비판 메시지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 총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치개혁과 제3지대의 기치를 내건 정치세력들도 다시 등장하고 있다.
민주당을 탈당한 양향자 무소속 의원과 금태섭 전 의원은 각각 '한국의희망'과 '새로운선택'을 창당했다. 신당의 이름은 대체로 '희망' '새로운'과 같이 미래지향적이다. 현 국민의힘의 직전 이름도 미래통합당이었다.
기존 양당의 폐해와 과거 적폐를 청산하고 정치개혁의 기치를 내걸었음을 표방하기 때문일 터.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여의도 인사들은 "양향자, 금태섭으로 되겠어? 결국 어디 지분 확보하며 몸값 높이려는 거 아냐?"라는 비아냥에 가까운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정치개혁의 길을 선언한 사람들의 발언을 보면 대체로 '어디서 들었던' 말이다. 이번 칼럼은 제3지대를 표방하는 이들을 비판하려는 글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정치권이 교과서에도 나오는, 어디서 들어 봄직한 상식적인 가치를 왜 지금부터 지키지 않느냐는 데 방점을 찍고자 한다.
우리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대의민주주의 정치는 다수결을 원칙으로 한다. 단 최종 의사 결정을 위한 표결은 그 전까지의 대화와 타협, 조정을 필수적 전제로 한다. 보수와 진보, 성장과 분배 등 가치를 달리하는 정치 세력들이 사회 이슈에 대해 충분한 대화를 통해 접점을 찾고 일정 부분 양보를 하며 합의점을 찾으라는 의미다.
우리 정치의 비극은 누구나 알고 있고 말할 수 있는 이 기본적인 것을 지키지 않는 데서 초래한다. 만나지 않는 여야, 반복되는 절대 다수 정당의 법안 강행 처리와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는 흔한 모습이 됐다.
변화는 강자가 스스로에게 엄격하며 뼈를 깎는 고통을 견딜 때만 가능하다. 그것도 내일부터가 아닌 오늘부터 해야 한다. 견디기 힘든 폭염과 수해와 인재(人災)에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와 안보 상황은 늘 서민들에게 생존의 위협이 된다.
국민이 국회의원을 선출해 권한을 위임하는 것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라는 주권자의 준엄한 명령이다. 정치개혁의 길은 다음 총선에서 나를 믿고 한 표를 달라는 예비 후보자들이 아닌, 지금의 정치인들이 오늘부터 만들어야 한다. 답은 이미 모두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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