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 전 계열사 기획감독에도 또 다시 끼임사
사법조치 결과 늦어지며 지진한 수사만 반복
중대재해법 검찰 기소 손에 꼽아…대기업 전무
검경 공조 없이는 중대재해 반복…피해자만 양산
[세종=뉴스핌] 정성훈 기자 = 지난해 10월 SPC그룹 계열사 SPL의 평택 제빵공장에서 근무하던 직원이 소스 배합 기계에 몸이 끼여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수사를 맡은 고용노동부는 반복되는 끼임사고에 SPC 전 계열사 58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약 한 달 반동안 기획감독을 벌였다. 면밀한 수사를 위해 각 지방노동청 근로감독관 수백명이 투입됐다. 그룹 자체를 탈탈 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성훈 경제부 차장 |
당시 고용부는 12개 계열사에서 277건의 법 위반사항을 확인하고 6억원의 과태료 부과, 위험기계 사용중지 등 조치와 함께 26개 계열사 대표들에 대한 사법조치도 진행했다.
하지만 10개월 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어느 하나 결론이 나지 않았다. 특별사법경찰 지위를 가진 고용부가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검찰에 벌금형 기소 의견을 냈지만, 검찰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않고 있어서다.
그러는 동안 불과 보름전 SPC그룹 계열사 샤니 성남 제빵공장에서 50대 근로자 1명이 끼임사로 또 목숨을 잃었다. 그러자 고용부는 또 다시 사고가 난 샤니 성남 공장과 함께 대구 공장에 대한 뒷북 조사에 나섰다. 더구나 이 두 공장은 불과 10개월 전에 고용부가 기획감독을 마친 곳이다. 아직 이전 감독 결과에 대한 법적 처분도 나오지 않았는데, 지진한 수사만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처벌이 무르니 빚어진 결과다.
고용부는 지난해 1월 27일 소위 '중대재해법'으로 불리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야심하게 시행했다. 입법과정만 몇년이 걸렸다. 중대재해법의 요지는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는 등 중대재해가 사업장(상시 근로자가 50명 이상 또는 공사금액 50억원 이상)에서 생길 경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형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사업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할 경우, 기업 오너나 CEO가 당장이라도 처벌받을 수 있을 것처럼 해석돼 기업들의 불만을 샀다.
하지만 현재까지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기업 오너나 CEO가 검찰 기소된 사례는 손에 꼽는다. 올해 7월 말 기준 고용부가 총 11건에 대해 검찰 기소했는데, 1심 판결까지 선고된 사례는 총 3건에 불과하다. 이 마저도 모두 중소·중견사로 대기업 사례는 아직 한 곳도 없다.
더욱이 전체 중대재해의 절반을 차지하는 10대 건설사 중대재해 사건 중 고용부가 검찰에 송치한 사건은 아직 한 건도 없다. 대표적으로 DL이앤씨는 중대재해법 시행 후 최다 산재사고 사망자를 냈음에도 아직 단 한 차례도 기소 당하지 않았다. 마창민 DL이앤씨 대표는 최근 이정식 고용부 장관이 주최한 건설업 안전보건리더회의에서 잇따른 중대재해 사고와 관련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만 짧게 답했다.
'비난의 화살'은 중대재해법 주무부처인 고용부로 향했다. 사람은 죽어나가는데 당국이 손놓고 있는거 아니냐는 국민들의 원성이 자자해지고 있는 것. 중대재해 피해 당사자와 가족들도 고용부를 향해 비난의 화살을 쏟아냈다.
이에 고용부는 억울함을 토로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고용부가 열심히 수사해 검찰에 관련 자료를 넘겨도 아직 사건을 송치할 만큼 범죄가 소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검찰이 수차례 보강 수사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고용부 고위관계자는 "사건을 기소하는데 한 1년씩 걸리고 하면 고용노동부는 뭐하냐. 수사할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 적극적으로 수사를 안 하니까 진도가 안 나가는 거 아니냐고 언론이나 외부에서 질타를 받는다"면서 "그러면 우리도 현재 검찰의 지휘를 받고 있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물론 검찰도 해명의 여지는 있다. 중대재해법 시행이 얼마 되지 않은데다 기존 판례도 거의 없어 기소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자칫 기업의 경영활동에 제동을 걸어 국익을 침해할 소지도 있다. 다만 수사가 길어지다보면 당연히 결론은 늦어질 수밖에 없고, 수사 동력도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은 자명한 사실이다.
검경이 불편한 동거를 해결할 수 있는 의외의 방법은 공조수사를 더욱 강화하는 일이 될 수 있다. 경찰은 검찰이 필요로 하는 충분한 자료를 제공하고, 검찰은 이 자료들을 바탕으로 빠르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검경이 지휘와 감독의 수직적 관계를 벗어나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협력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결과적으로 검경이 공조를 강화해 기업 오너나 CEO의 처벌 사례가 늘어나면, 중대재해 발생 가능성도 자연스레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기업 오너나 CEO의 부재는 기업경영에 치명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js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