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심 "민사적 분쟁해결절차 통해 이해관계 조정해야"
대법 "형사책임 배제하는 취지로 볼 수 없어"
[서울=뉴스핌] 김현구 기자 = 사용자와 근로자가 퇴직금 지급기일을 연장하는 데 합의했더라도, 사용자가 연장한 지급기일까지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면 형사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퇴직급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정모(60) 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동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3일 밝혔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세탁소를 운영하는 정씨는 퇴직한 근로자들에게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정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미지급 퇴직금의 액수가 많고 이로 인해 피해 근로자들이 경제적으로 상당한 고통을 겪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정씨가 범행을 인정하고 퇴직금 변제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며 "또 그가 지급 능력이 있음에도 악의적으로 퇴직금을 체불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단 재판부는 정씨가 2015년 10월~2021년 5월 그의 사업장에서 일한 김모 씨에게 퇴직금 2971만원을 지급하지 않은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정씨가 김씨와 지급기일 연장에 대한 합의 없이 그에게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으나, 재판부는 두 사람 사이에 퇴직금 지급기일 연장에 대한 합의가 있었다고 봤다.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제9조 제1항은 '사용자는 근로자가 퇴직한 경우 지급 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14일 이내에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 다만,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당사자 간의 합의에 따라 지급기일을 연장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14일의 기간 안에 '퇴직금의 지급' 또는 '지급기일 연장의 합의' 중 적어도 하나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 사용자를 형사 처벌하되, 지급기일 연장의 합의라도 하는 경우 사후에 그 지급기일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한 책임은 민사적 분쟁해결절차를 통해 묻도록 하는 것이 이해관계를 적정하게 조정하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2심은 1심 판단을 유지했으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퇴직급여법 제9조는 당사자 간의 합의에 따라 지급기일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에 불과하며, 연장한 지급기일까지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은 사용자의 형사책임까지 배제하는 취지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퇴직금 지급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14일 이내에 근로자와 지급기일을 연장하는 합의를 했더라도, 연장한 지급기일까지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면 해당 조항에 대한 위반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정씨는 김씨의 퇴직일인 2021년 5월 28일 퇴직금 중 일부는 다음 달 16일까지 지급하고 나머지는 그 이후 지급하기로 했다"며 "하지만 정씨는 당일까지 김씨에게 퇴직금을 전혀 지급하지 않아, 합의에 따라 연장된 지급기일까지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았으므로 위반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그런데도 원심은 사용자가 근로자와 퇴직금의 지급기일을 연장하는 합의를 했다면, 그 후 사용자가 연장된 지급기일까지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았더라도 위반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해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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