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베테랑' '베를린' '모가디슈'의 류승완 감독이 신작 '밀수'로 누구도 하지 않았던 참신하면서도 유쾌한 이야기를 꺼내든다.
류승완 감독은 '밀수' 개봉일인 26일 뉴스핌과 인터뷰에서 영화 촬영 당시 든든했던 김혜수, 염정아의 활약상과 더없이 행복한 현장이었던 이유 등 작품 안팎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1970년대, 해녀, 밀수 세 단어로 시작된 영화는 그간 누구도 손 대지 않았던, 참신하기 그지없는 설정과 이야기로 완성됐다.
"영화사의 한 친구가 군산 지역박물관에서 지역 바다에서 70년대 해녀들이 밀수에 가담했었단 박물관 사료를 발견한 게 시작이었어요. 공교롭게도 미스테리아라는 장르 잡지에서 박재식 작가가 썼던 부산 지역의 70년대 여성 밀수단 얘기가 있어서 흥미로웠던 차였어요. 그 두가지를 섞은 거죠. 작품 개발을 지켜보다가 초기 각본을 보니 이건 없던 거예요. 해녀라는 직업군 자체가 전 세계적으로 몇 군데 없고 유럽에 비슷한 직업을 가진 것도 스페인, 이태리도 남자가 하죠. 여성들이 바다를 배경으로 활극을 펼친다는 게 어디서도 못봤던 거고 되게 새로운 시도일 것 같아 하게 됐어요."
영화 '밀수'의 류승완 감독. [사진=NEW] |
'밀수'를 시작으로 올여름 빅4 배급사 텐트폴 대작들이 줄줄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김혜수, 염정아 두 여배우를 투톱으로 한 영화는 '밀수'가 유일하다. 대규모 제작비를 투입하는 블록버스터 영화가 선 굵은 여성서사를 차용한다는 건 여러 모로 용기가 필요한 일일 수도 있다. 류 감독은 "두 사람이 코어가 될 뿐 다른 인물들의 앙상블이 지탱하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이번 영화를 하면서는 그냥 여배우도 아니고 김혜수 염정아라는 사실에 부담보단 흥분이 더 됐어요. 두 사람의 아우라가 워낙 세기도 하지만 두 봉우리만 있는 영화는 아니에요. 보시면 알겠지만 조인성과 박정민, 고민시, 김종수라는 큰 산맥이 있고 코어를 둘이 지탱하는 구조죠. 여성서사를 한다는 생각도 깊게는 안했어요. 군천이라는 가상의 도시를 설정하면서 '장르의 세계'를 상정하는 거죠. 실제가 아니라 더 익스트림하게 갈 수 있었죠. 어린 시절부터 매혹됐던 영화의 요소들, 그 시절의 대중문화에 대한 기억들을 차용했고요. 무엇을 더 하려고 하기보다 대중영화 속의 현실과 장르의 밸런스를 미묘하게 맞추면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고 마음 편하게, 재밌게 만들었어요."
김혜수, 염정아 투톱의 영화는 아니지만 두 사람의 역할은 충분히 지대했다. 영화를 찍으며 류 감독은 "깜짝 놀랐던 연기는 너무나 많았다"고 배우들의 헌신에 감사했다. 특히 "현장에서 기싸움이 전혀 없었다"면서 다시 생각해도 행복했던 현장을 떠올렸다.
"배우들끼리 경쟁구도가 전혀 없었고 장면을 제대로 찍기 위한 최소한의 긴장만을 가져갔어요. 김혜수, 염정아 두 축이 잘 이끌어주니까 연출하는 감독 입장에선 서로 독려하는 분위기가 정말 편했고요. 배우들은 디렉션을 따랐다고 하지만 겸손한 거죠. 그랬다면 현장에서 놀랄 일이 많이 없어야 할텐데 늘 놀라움의 연속이었어요. 춘자가 맹룡호에서 내려서 다리를 막 휘젓는 장면에선 '어떻게 한 거지?' 했어요. 정아씨 눈물연기도 한 번에 오케이하곤 '이 분은 과연 뭐지' 했었고요. 조인성이 첫 등장할 때 지은 미소, 박정민이 칼 맞고 혀 낼름거리는 것 보면서는 조인성씨가 '이렇게까지 한다고?' 그랬죠. 우리 배우들은 정말 모두 창조적인 예술가들 자체였어요."
영화 '밀수'의 류승완 감독. [사진=NEW] |
항간엔 극중 춘자를 연기한 김혜수의 톤이 조금 오버스럽다는 평도 있었다. 이같은 캐릭터를 감독이 의도했는지를 묻자, 류 감독은 홀로 고군분투하면서 살아온 춘자라는 인물의 사연을 얘기했다.
"모든 영화에 배우의 연기 호불호는 있을 수 있죠. 후반에 춘자의 진심을 보이는 두 개의 장면이 있었기 때문에 괜찮았어요. 그게 없었다면 명백한 오버액션일 수도 있었죠. 춘자의 사정을 알고 보면 앞 부분의 톤은 모두 춘자가 살아남기 위한 연기라는 걸 알 수 있잖아요. 그런 걸 보면 짠해요. 앞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 상대할 때 모습과 실제 내가 너무 달라지는 순간이 있어요. 무대 위에서 막 재밌게 하는 코미디언이 무대 뒤로 가서 탈진해버리는 것처럼요. 취향은 탈 수도 있지만 영화 전체에서 춘자는 그렇게 사람들을 상대하며 살아야만 했기 때문에 김혜수 선배가 그 지점에서 최선을 다해주셨다고 생각해요."
영화 후반에 시원하게 터지는 수중 액션은 '밀수'의 백미다. 촬영 당시 어려움이 컸지만 아름다운 장면들이 나온 것은 다 배우들의 공이었다. 그는 "나중에 알고 보니 배우들의 반 이상이 수영을 못했다더라"면서 감격스러울 정도로 열심히 해줬던 배우들에게 감사했다.
"처음에 테스트를 하는데 배우들이 물 속에서 정말 아름답게 움직이더라고요. 완전히 깜짝 놀란 게 배우들이 정말 물개처럼 안에서 움직였는데 촬영을 하는 내내 수영을 못했대요. 촬영 막바지 되니까 '제가 떠있어요' 하는 거예요. 나중에 알고는 감격스러울 정도였어요. 수영을 편하게 하는 배우는 김재화씨 뿐이었어요. 수영을 안해본 정아씨가 물 속에서 액션을 하고 김혜수 선배 공황을 이겨내고 물 속에서 말을 하고 미래소년 코난같은 표정을 지어줬어요. 수중 촬영이 또 우역곡절이 많았고 '이걸 왜 한다고 했을까' 하면서도 오케이가 났을 때 그렇게 행복했죠."
영화 '밀수'의 류승완 감독. [사진=NEW] |
특히나 류 감독은 김혜수와 염정아, 두 배우가 함께 하는 작품을 만든 것에 대단한 뿌듯함을 느끼는 듯했다. 그는 "의외로 두 배우가 동시에 나오는 작품이 없다"면서 두 사람의 상반된 매력을 직접 얘기했다. 단단히 팀웍을 잡아준 염정아와 한없이 따뜻함을 가진 김혜수 덕에 잊을 수 없는 촬영장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영화 '히트'에서 로버트 드니로와 알 파치노가 등장할 때 이 만남이 처음이라고? 하는 것처럼요. 둘이 한번도 같이 안했다고? 그럼 내가 해야지 했어요. 김혜수 선배가 불이면 정아씨는 물 같았죠. 펄펄 끓는 용광로같은 춘자가 가능했던 건 진숙이 쿨한 톤을 유지해줬기 때문이에요. 장도리도 그렇게 막 갈 수 있었던 이유가 진숙 덕이고요. 두 분의 조화가 대단했어요. 이래서 김혜수 하는구나, 염정아 하는구나 싶었죠. 김혜수 선배는 본인 거 찍고 안가고 현장에서 스태프 뒷정리하는 거 보면서 울어요. 염정아씨는 해녀들 데리고 다니면서 영화관도 다니고, 완전 대장이 돼서 이끌어줬어요. 김혜수, 염정아의 주부가요교실처럼 막 박수치고 현장에서 그렇게 지냈죠."
류승완 감독의 복귀와 함께, 동생인 배우 류승범의 신작 '무빙'도 공개를 앞두고 있다. 해당 작품엔 '밀수'에서 호흡한 조인성도 출연한다. 코로나 이후 첫 신작을 선보이며 여러 모로 긴장되는 와중에도 그는 동생의 근황과 감상을 전하며 웃었다. 차기작인 '베테랑2' 이전에 올여름에도 흥행 감독의 능력을 입증해낼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무빙' 공개일 8월 9일이 류승범 생일이에요. 대본 보고 '이걸 한다고?' 했었고 예고 보니까 '이걸 했다고?' 싶었어요. 감탄의 연속이었죠. 조인성씨 예고편 보면 '이런 스파이, 프락치야' 하고 장난도 치고요. 류승범 오랜만에 복귀작이고 조인성 출연작이고 친한 강풀 작가 드라마 대본 데뷔작이라 응원하고 있죠. 저도 오랜만에 류승범의 연기가 궁금해요. 현장에서 한번 봤는데 멋있더라고요. '밀수' 보고선 '재밌게 만들었는데 뭘 긴장하냐. 기다려봐' 하더라고요. 그리곤 '박정민 헤어스타일 너무 탐난다'고.(웃음) 다른 사람 연기나 캐릭터에 질투심이 별로 없는 앤데 그렇게 말해서 웃겼죠. 2년 전 '모가디슈' 때는 7시 이후 티켓을 안팔았어요. 좌석간 띄어앉기 해서 극장에서 웃음이 나올 수가 없는 분위기였고 극장을 간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죠. '설마 그때보다 나쁘겠어' 했어요. 그땐 그때의 긴장이 있고 지금은 또 다른 긴장감이죠. 매번 새 영화를 공개할 땐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jyy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