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서 고대 장송의례 소개
OLED 쇼케이스…애니메이션으로 관람객에 쉽게 설명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처럼 쇼케이스 속 유물이 살아 움직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하다. 다만, 아이디어가 있다면 기술의 도움을 받아 과거의 시간을 재현해보는 '살아있는 박물관'의 모습은 기대해 볼만 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600년 전 신라와 가야의 장례문화를 소개하는 전시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에서 유물 쇼케이스에 투명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를 설치해 고대의 장송의례를 유물과 애니메이션으로 동시에 설명할 수 있는 전시 형태를 구현했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유물과 함께 애니메이션이 상영되는 투명 OLED 쇼케이스 2023.07.03 89hklee@newspim.com |
지난 5월26일 개막한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은 국보와 보물 15점을 포함해 인물, 동물, 사물을 본떠 만든 332점의 대규모 유물을 소개하는 전시다. 이 중 97점은 일제강점기 경주 황남동에서 수습된 것으로 토기 뚜껑 위에 하나의 장면으로 복원해 최초 공개한다. 앞선 박물관이 기획한 토우 전시가 토기와 토우를 통해 신라 사람들의 얼굴와 모습을 조명했다면, 이번에는 다량의 토기 유물에서 유추할 수 있는 신라 5세기경과 그 무렵 가야가 펼쳐낸 장송 문화에 집중했다.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라와 가야시대 무덤에서 출토된 상형토기와 토우장식 토기들은 제사에 사용하는 그릇이다. 현대 제기와는 확연히 다른 형태다. 토기에는 계세사상과 연결돼 있으며 죽은 이의 영혼을 하늘로 안내하고 망자가 먼 길을 떠나 다음 세상으로 가는 길이 외롭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신발과 배, 집과 등잔 등을 본따 만든 토기들이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토기 뚜껑 위에 장식된 토기다. 이를 통해 고대 사람들의 송장 풍습을 유추할 수 있다.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추는 사람의 장식으로 장례를 축제 형식으로 치렀을 것으로 상상할 수 있다. 사냥하는 사람, 말 타는 사람, 노동을 하는 사람의 모습이 흙으로 빚어져 있다. 마지막으로 개구리와 뱀이 일정한 각격으로 반복된 토기 장식이 나오는데, 당시의 장례 문화와 동물이 어떤 관계가 있을지 연구가 필요한 대목임을 암시한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유물과 함께 애니메이션이 상영되는 투명 OLED 쇼케이스 2023.07.03 89hklee@newspim.com |
이와 같은 설명은 쇼케이스 위에 애니메이션으로 생생하게 펼쳐진다. '맵핑 영상'과도 같은 이 영상은 관람객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볼거리이자 유물에 눈을 뗄 수 없는 이유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상미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 학예연구사는 고대 기록에 남아있지 않은 장송 문화를 유물을 통해 확인하게 됐고, 이를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영상으로 선보이게 됐다고 밝혔다.
이상미 학예연구사는 "토기 장식에 여러 인물, 형태를 접합해보니 하나의 장면을 이루고 있었고, 이것이 '의례' 장면, 장례에서 행렬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면서 "고대의 장례 문화는 기록, 그림으로도 남아있지 않아 글로만 설명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이에 유물과 영상을 결합하면 관람객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입체적인 유물에 설명을 곁들이기 위해 투명 OLED를 활용했다"면서 "유물 하나만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유물을 통해 장송 문화를 설명하는 방식"이라고 첨언했다.
유물이 전시된 쇼케이스의 모습은 여느 전시와 다르게 '집'처럼 생긴 구조다. 이 쇼케이스의 앞면은 바닥에서 45도 정도 경사져 있다. 경사진 앞면에 투명 OLED를 설치해 유물 위로 애니메이션이 상영된다. 동시에 쇼케이스 바닥에도 유물을 알려주는 프로젝터 영상이 흘러나온다. 이번에 토우 전시를 위해 새롭게 제작된 쇼케이스다. 앞서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박물관에서 전시 기획을 하며 관람객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고민한 학예사의 경험이 녹아든 성과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투명 OLED가 적용된 전시장 전경 2023.07.03 89hklee@newspim.com |
이상미 학예사는 "유리가 수직으로 섰을 때 볼 수 있는 면으로 주로 한정되는데, 유물을 잘 볼 수 있는 쇼케이스의 각도가 있다"며 "각도가 기울면 내 몸을 구부리지 않고 유물을 훨씬 가까이서 볼 수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저희가 고민한 부분이 유물의 내용이 관람객에 잘 전달되고, 가까이서 관찰이 가능해야 했기 때문에 쇼케이스의 새로운 형태가 필요했고 고대의 장송 문화를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기술 적용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박물관은 고대의 송장 문화를 관람객에 쉽게 전달하기 위해 '스토리텔링' 수단으로 영상 작업을 기획했다. 그리고 유물에 등장하는 인물과 형태를 바탕으로 영상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캐릭터도 구상했다. 그후 약 3개월의 기술화 작업을 거쳤고 유물까지 다 들여다 볼 수 있는 투명 OLED를 활용해 새로운 형태의 쇼케이스와 전시 형태가 구축됐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투명 OLED가 적용된 전시장 전경 2023.07.03 89hklee@newspim.com |
중앙박물관의 투명 OLED 활용은 이번 전시가 처음이지만, 산업자원부에서 지난 5월 발표한 '디스플레이 산업 혁신 전략' 일환의 사업으로 문화 전시계도 OLED 쓰임이 확장되고 있다. 정부는 2027년까지 OLED 생산라인을 증설하고 차세대 디스플레이 연구개발 등에 65조원 이상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에 지난 4월에는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이 진행하는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의 일환으로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에 총 18대의 투명 OLED에 한국의 민화로 구현된 문화 유산들의 사계절 '사계(四季)'를 선보이는 비디오월이 설치돼 한국을 방문한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89hk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