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측이 휴가일 변경 가능…근로자 선택권 제한
취지 좋지만 실효성 확보 안되면 '그림의 떡'
[세종=뉴스핌] 이수영 기자 = 고용노동부가 근로시간 제도 개편을 추진하며 '일할 땐 일하고 쉴 땐 쉬는 문화 조성'에 나서겠다고 했으나, 정작 입법 예고한 개정안에는 근로자가 원할 때 쉴 수 없도록 제한을 둔 조항이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정부부처 등에 따르면, 고용부는 지난 6일 근로시간 제도 개편을 위해 이같은 내용을 포함한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입법 예고했다. 연장근로를 포함해 주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되, 업무가 몰릴 때 바짝 일하고 쉴 땐 길게 쉬자는 취지다.
◆ 쉬는 날도 기업 마음대로…근로자 건강권은?
고용부는 근로자 건강권과 관련해 초과근무 시간을 저축했다가 휴가나 임금으로 받을 수 있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도입을 추진 중이다.
현행 '보상휴가제'를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로 대체·강화하고, 연장·야간·휴일근로의 적립 및 사용 방법 등 법적 기준 마련에 나설 계획이다. 휴가 활성화를 위한 단체 휴가, 시간 단위 연차 사용, 장기 휴가 등도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근로시간 저축계좌제에도 근로자 건강권을 침해할 수 있는 허점이 발견됐다.
고용부가 대외적으로 언급한 것과 달리 개정안에는 초과근무를 한 근로자가 저축 휴가를 원할 때 쓸 수 없도록 조항을 둬 휴식권을 제한하고 있다.
[자료=법제처] 2023.03.17 swimming@newspim.com |
개정안 제57조 3항을 보면, 사용자(기업·사업주)는 저축 휴가를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지급하도록 규정한다. 다만 근로자가 휴가를 청구한 시기가 경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으면 휴가 시기를 변경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근로자가 초과근무 시간을 모아 장기휴가로 사용하겠다 신청하더라도 사업주가 경영을 핑계로 휴가를 연기할 수 있는 것이다.
저축 휴가는 임금 지급보다 1.5배 이상 가산 적용되기 때문에 사업주 입장에선 근로자 공백이 생기는 휴가 대신 임금 지불이 유리할 수 있다.
이러한 악용 사례를 막기 위해 고용부가 제57조 4항에 미사용 저축 휴가는 임금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했지만, 사업주가 계속 휴가신청을 연기·외면한 채 임금 지급으로 대체한다면 근로자의 건강은 나빠질 대로 나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 현 보상휴가제도 5.4%만 도입…'그림의 떡'
당초 고용부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소개하면서 제도를 활용하면 '제주 한 달 살기', '한 달 휴가(안식월)'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행 보상휴가제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마당에 연장근로 시간이 주 69시간까지 늘어나면 일만 하는 환경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보상휴가제 도입률은 지난해 6월 기준 전국 156만3172개 사업장 가운데 5.4%(8만3957개)에 그친다.
[서울=뉴스핌] 김민지 기자 =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일대가 점심시간을 맞은 직장인들로 붐비고 있다. 2022.04.18 kimkim@newspim.com |
특히 MZ세대 사이에선 주52시간제인 지금도 원하는 대로 휴가를 쓰기 쉽지 않은데, 장기 휴가가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냐는 주장도 제기된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 들어온 휴가 관련 제보 229건 중 '연차휴가 제한'이 96건(41.9%)으로 가장 많았다.
고용부 관계자는 "현재 입법예고 기간(3월 6일∼4월 17일)인 만큼 국민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근로시간 상한을 포함해 제도 전반의 보완방안에 대한 MZ세대 근로자, 중소기업 근로자 등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겸허히 듣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장의 의견을 바탕으로 근로자의 선택권과 건강권의 조화라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의 취지가 제대로 구현될 수 있도록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보완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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