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화동마을 전호동 이장 "어르신들 소원, 죽기 전에 내 집에서 사는 것"
보금자리 앗긴 118가구 중 17가구 새 집지어 복귀· 나머지 임시주택 기거
[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3월4일. 경북 울진사람들에게 이날은 두번 다시 오지말아야 할 악몽의 시간으로 기억된다.
4일은 기록된 산불 역사 중 '최장시간 연소'와 '최대 규모 피해'를 남긴 '울진산불'이 발화한 지 꼭 1년 째 되는 날이다.
[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1년 전인 지난 해 3월4일 경북 울진군 북면 두천리에서 발화한 '울진산불'로 잿더미로 변한 북면 신화2리 '화동마을'.2023.03.04 nulcheon@newspim.com |
1년 전 이날 오전 11시 17분쯤. 울진군 북면 두천리의 한 야산에서 발화한 산불은 방향을 종잡을 수 없는 강풍을 타고 삽시간에 울진 북부권을 화염으로 뒤덮었다.
화마는 9박10일간 울진의 북서권역인 북면과 죽변면, 울진읍, 금강송면 등 4개 읍면의 삶의 보금자리와 자연자원을 초토화시켰다.
산불은 원자력발전소 안으로까지 확산돼 진화당국과 주민들을 바짝 긴장시켰다.
331세대 468명이 삶의 보금자리를 앗긴 채 '산불 이재민'이라는 낯 선 이름으로 거리로 내 앉고 축구장 2만개 크기규모인 1만4140ha의 산림이 한 줌 잿더미로 변했다.
울진사람들을 먹여살리던 소중한 자원인 송이산 1500여ha가 초토화되고 농·축·수산업 시설 1900여건이 소실됐다.
'울진산불' 1년이 지난 4일 현재, 보금자리를 앗기고 조립식 임시주택으로 거처를 옮긴 이재민 181가구 중 17가구 만 새로 집을 지어 복귀했다.
나머지 164가구는 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울진군이 마련해 중 8평 규모의 조립식 임시주택에서 힘겹고 불편한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울진산불' 발화 첫날인 1년전 3월 4일 낮 12시쯤 막 점심준비를 하던 중 들이닥친 화마에 쫒겨 허둥지둥 피신하면서 마을 전체가 잿더미로 변한 북면 신화2리 '화동(花洞)'마을로 오르는 길에 아름드리 솔숲은 간데 없고 초고압 송전탑만 하늘을 찌르듯 서 있다.
마을로 오르는 입구 산 아래에서 포크레인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산불피해지역 복구위한 긴급 벌채작업을 위해서다. 화마에 반쯤 그을은 아름드리 소나무가 산처럼 쌓여있다.
화동마을을 지켜 온 마을신인 성황당이 위치한 산에는 흡사 타다 만 숯덩이처럼 뭉턱뭉턱 잘려나간 소나무 밑둥만 흉물스런 모습으로 남아 있다.
화동마을 초입에 서 있는 성황목(城隍木)이 검은 숯덩이처럼 반 쯤 탄 채 용케도 푸른 잎사귀를 달고 서 있다.
신체(神體)에 금줄을 달고 있는 것으로 보아 보금자리를 앗기고 임시주택으로 내몰린 화동마을 주민들이 경황없는 생활 속에서도 지난 정월대보름을 기해 마을제사(동제)를 지낸 것으로 짐작된다.
성황당을 지나자 1년 전 '울진산불'의 처참했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화동마을을 둘러싼 송림은 검게 그을린 밑둥치만 드러낸 채 시커먼 탄화재가 그대로 남아 있는 민둥산으로 변했다.
잿더미로 변한 주택들의 처참한 잔해들은 모두 말끔하게 치워진 상태이나 여전히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던 야산들은 검은 토양으로 변한 채 1년 전 그날의 참담을 보여주듯 황량하다.
마을 주변 언덕 밭에 퇴비들이 드문드문 놓여있다. 보금자리는 앗겼지만 생업인 농사는 지어야할 터이다.
마을회관 앞으로 이재민들의 조립식 임시주택이 1년 전 모습 그대로 서 있다.
임시주택 앞에 마을 주민 서 넛이 앉아 있다. 탁자 앞에는 술잔이 놓여있다.
"오늘 산불이 난지 꼭 1년째 되는 날이니더. 1년 전 오늘을 다시는 생각조차 싫지만 연로한 주민들 모시고 점심식사를 함께 나누고 울적하고 심란한 마음에 몇몇 모여 술 한잔 하고 있니더."
마을 이장 전호동(53)씨가 붉어진 눈시울로 "술 한잔 하시라"며 권한다.
"오늘이 꼭 산불이 난지 1년째 되는 날이시더. 다시는 생각하기 싫은 날이지만 그래도 마을 어르신들 모시고 한자리에 모여 점심식사를 함께 했니더."
전 이장은 산불 1년 째 되는 날, 어르신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기 위해 주민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점심식사를 나눴다며 소주를 한 잔 털어 넣는다.
"산불이 들이닥친지 1년이 지나도록 새 집을 언제 지을지 기약도 없니더. 산불이 나고 행정에서 '산불 피해 공동체마을'을 조성한다 해서 개별적으로 집을 새로 짓지도 못하고...환경영향평가인가 뭔가를 받아야 한다며 올해 7월 쯤 기반조성공사를 한다하는데...우리 주민들은 이제나 저제나 행정만 쳐다보고만 있니더."
"우리마을 어르신들 모두가 팔순과 구순을 넘은 분들이시더. 이 분들 소원이 '죽기 전에 내집에서 하루라도 살다가 세상을 마감하는게 꿈'이시더. 여기 임시주택에 기거하다가 세상을 버리면 이게 객사아입니까."
전 이장이 화마에 앗긴 집터 쪽을 보며 눈가를 훔친다.
마을회관 안에 '안노인(여성노인)'들이 윷판을 사이에 두고 둘러앉아 윷놀이를 하고 있다.
안부를 묻자 "하루라도 빨리 내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입을 모은다.
"이제 우리가 살몬 얼매나 더 살겠니껴? 내 집터에 새 집짓고 하루라도 내 집에서 살다가 죽는데 소원이시더."
[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울진산불' 발생 1년째인 4일, 당시 산불로 삶의 보금자리를 잃고 낯 선 조립식 임시주택에서 1년째 기거하고 있는 주미자 신화2리 화동마을 노인회장이 "하루라도 빨리 내집터에 새집짓고 살고 싶니더"라며 화마에 앗긴 집터를 바라보고 있다. 2023.03.04 nulcheon@newspim.com |
화동마을 주미자(여, 80) 노인회장이 화마에 앗긴 집터를 가리킨다.
"산불 나기 전에는 옛날 집이지만 그래도 마당에 '된(뒤란)'에 장독대며 세간살이 놓고 너르게(넓게) 살다가 임시주택서 1년 살아보니 갑갑해 못살겠니더. 그릇이고 뭐고 놔둘데가 없니더. 우리 동네 사람들은 잠만 임시주택에서 자고 하루종일 마을회관서 함께 밥해묵고 지내니더. 하루라도 빨리 내 터에 집짓고 살고싶니더."
윷놀이를 하던 할머니 한 분이 "밭 설거지를 하러간다"며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지난 가을에 거둔 들깻대를 치워야 감자씨도 묻고 고추모종도 심고, 마늘밭에 웃거름도 줘야할 터이다.
1년 전 이날 화동마을 23가구는 삽시간에 들이닥친 화마에 3가구만 남은 채 마을 전체가 잿더미로 변했다.
당시 행정당국은 산불 복구를 통해 신화2리 화동마을을 '산불재난을 극복한 희망공동체' 마을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화마에 쑥대밭으로 변한 마을을 번듯한 마을 기반조성을 통해 '울진산불' 복원의 상징적 마을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의미가 담겼다.
이후 경북도와 울진군은 신화2리 마을 기반조성 사업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도로 등 공공시설 조성 부지 확보에 따른 주민 협의 등이 난항을 보이면서 당초 일정보다 지연됐다.
울진군에 따르면 지난 해 12월 말쯤 기반조성위한 기본설계를 마치고 현재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밟고 있다.
이어 본 설계 용역을 거쳐 이르면 오는 7월 쯤 기반조성사업에 착수할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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