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기정의워킹그룹, 조사결과 보고서 발표
7차 북핵 실험 관측 제기된 상황에서 주목
"칠보산송이 등 지역 농수산물 검사 강화해야"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북한이 2006년 10월 이후 6차례 핵실험을 진행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일대의 주민 54만명이 직간접적인 방사능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해당 지역 농산물도 오염 우려가 크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대북 인권 조사·기록 단체인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은 21일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보고서를 발표하고 "풍계리와 인근 8개 시군 지역에 거주하다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881명에 대해 피폭검사를 실시해 공개할 것"을 정부 당국에 촉구했다.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함북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반경 40km 이내 지역과 장흥천~남대천의 지하수 오염 위험 지역. [사진=TJWG] 2023.02.21 yjlee@newspim.com |
이 단체는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방사성 물질의 지하수 오염 위험과 영향 매핑(mapping)' 보고서에서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으로부터의 방사성 물질 유출과 물을 통한 확산의 위험에 관해 처음으로 종합적 개요를 제시한다"고 밝혔다.
이번 발표는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한국과 미국의 정보 당국에 의해 잇달아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나와 주목된다.
보고서는 풍계리 부근에 거주하는 북한 주민 수십 만명에 대한 방사성 물질 전파 가능성을 지도에서 특정하는 '매핑' 작업을 진행해 농수산물과 송이버섯 등 지역 특산물의 밀수와 유통으로 북한 주민뿐 아니라 인접한 중국과 한국·일본의 국민들도 위험에 처할 수 있는 경로를 조사해 제시하고 있다.
전환기정의워킹그룹 측은 "풍계리 인근 8개 시군(길주군·화대군·김책시·명간군·명천군·어랑군·단천시·백암군) 주민 약 108만 명 중 핵 실험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주민을 50%로 가정하면 약 54만 명에 이른다"면서 "25%로 추산할 경우 약 27만 명이 피해군에 속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수치는 2만8700명으로 추정되는 핵실험장 인접 16호 관리소(정치범 수용소) 수감자는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체는 밝혔다.
[서율=뉴스핌] 사진공동취재단=북한 풍계리 핵 실험장의 2번 갱도 입구 모습.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핵 실험장 공개 폐쇄 입장에 따라 2018년 5월 25일 현장을 방문했던 취재진에 의해 촬영됐다. |
또 "중국 정부는 북한 방사성 물질 유출과 확산을 경계해왔지만 북한 농수산물의 밀수·유통을 근절하지 못하고 있으며, 한국 정부는 2015년 중국산으로 둔갑해 북한으로부터 수입된 능이버섯에서 기준치 9 배 이상의 방사성 세슘 동위원소를 검출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친북 성향의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와 북한 노동당 39호실의 송이버섯 밀수 관여를 보여주는 문서를 확보한 사실이 있다"고 전했다.
이 단체는 특히 "2017~2018년 통일부의 피폭 검사를 받은 탈북민 40명 중 9명(22.5%)의 검사 결과에서 이상 수치가 나왔지만 피폭 검사는 2019년 이후 중단됐다"면서 문재인 정부 당시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해 이런 결정을 한 것이란 의혹을 제기했다.
또 "당시 2억5376만원(미화 약 21만1천달러)이면 2006년 이후 길주군에 거주한 탈북민 160명 모두를, 13억9726만원(미화 약 116만4천달러)이면 2006년 이후 8개 시군에 거주한 탈북민 881명 모두가 검사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2017~2018년 통일부가 실시한 방사능 검사에서 이상이 확인된 탈북민 9명의 피폭 위험도 비교. [사진=TJWG] 2023.02.21 yjlee@newspim.com |
보고서는 특히 한국 정부를 비롯한 주요 이해 당사자들이 이런 위험에 적절히 대처해오지 않았던 점을 지적하면서 ▲피폭 검사를 희망하는 풍계리 인근 지역 출신 한국 정착 탈북민 전원에 대한 검사 재개 및 조사결과 공개 ▲북한산 농수산물에 대한 검역 강화와 국제공조 ▲방사성 물질의 지하수 오염 위험에 관한 즉각적이고 효과적이며 철저한 검사를 독립적이고 공정한 방법으로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
또 피해 방지와 구제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도 촉구했다.
이영환 TJWG 대표는 뉴스핌과의 통화에서 "그동안 북한의 핵 프로그램은 안보 문제로만 논의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번 보고서는 북한의 핵실험이 북한 주민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 사람들의 생명권과 건강권까지 위협하는 인권 문제라는 것을 확인해주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또 "지난해 12월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결의 77/226호에서 북한이 재원을 북한 주민의 복지 대신에 핵무기 및 탄도 미사일 개발에 전용하는 것을 규탄한 것처럼 북한 안보 문제와 북한 인권 문제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례"라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지하수 오염실태 보고서를 만들어 21일 발표한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의 활동가와 연구자들. 왼쪽부터 이영환 대표, 신희석 법률분석관, 박송아 연구원, 수헤나 메흐라(Suhena Mehra) 연구원. [사진=TJWG] 2023.02.21 yjlee@newspim.com |
이 단체의 신희석 법률분석관은 "2006년 첫 핵 실험 풍계리 인근에 거주했던 탈북민에 대한 피폭 검사와 함께 이상 증세를 보이는 탈북민에게는 정확한 정보 제공과 함께 적절한 치료가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TJWG는 남북한과 미국·영국·캐나다 5개국 출신 인권운동가와 연구자들이 2014년 서울에 설립한 인권 조사 및기록 단체다.
무력분쟁이나 독재 체제로부터 전환 중이거나 아직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회에서 대규모 인권침해를 조사해 드러내고, 피해자 중심 접근과 정의를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yj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