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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혁 교수의 스웨덴 패러독스] ⑧좌우파의 국가우선주의, 설득을 통한 상생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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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창간 20주년 특별기고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교수

스웨덴 좌우파의 국가우선주의, 설득을 통한 상생의 정치

종종 회기 중 스웨덴 의회를 방문하곤 한다. 방청석에서 내려다본 의회 본회장 풍경은 우리와 사뭇 다르다. 당대표가 연설하거나 대정부 질문을 던지는 단상은 의장석과 바닥 수준이 같아, 단상에 서서 당대표가 연설 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의장은 고개를 들어 시선을 위로 향해 보아야 한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의장도 국민이 뽑은 의원 중 한 사람일 뿐 높은 자리에 앉아 군림하지 못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국민을 대표해서 연설하는 당대표, 의원들의 연설을 앉아서 경청하는 의장의 눈높이를 낮춘 것이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민주주의 원칙을 실천하는 숨겨진 그림이다.

떠나는 지도자를 위한 정적의 고별사

치열한 경쟁자도 떠날 때는 격려와 박수를 보내 주는 것이 모든 승부의 세계다. 정치적 맞수도 떠나는 당대표에게는 경의를 표하는 것이 정치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11년 동안 당대표직을 마치고 정계를 떠나는 중앙당 안이 뢰프(Annie Lööf)와의 마지막 의회토론은 국민들에게 잔잔한 감동과 웃음을 안겨 주었다. 국영TV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된 토론은 뢰프가 의회 내 당대표 7명을 상대로 번갈아가며 주고받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평상시 같으면 신랄한 질문과 답변으로 불꽃 튀는 정책 논쟁이 오갔겠지만, 이 날 만큼은 그동안 함께 했던 정치적 경쟁자에게 덕담을 건네며 화기애애한 모습을 연출했다. 함께 끈끈한 정책 공조를 이어 왔던 사민당 전 총리를 시작으로 한 명씩 나와 그동안 당대표로서 경쟁하며 정책논쟁을 이끌어 왔던 파트너를 떠나보내는 진한 아쉬움을 전하는 순간이었다. 포옹과 함께 각자 준비한 선물을 전하는 모습이 정겹다. 이날의 클라이맥스는 그동안 앙숙 관계를 유지해 왔던 지미 오케손(Jimmi Åkesson) 스웨덴 민주당 대표의 고별사 때였다. 평상시 두 사람은 현란한 레토릭으로 창과 방패의 싸움을 불사했으나 이날만큼은 달랐다. 오케손의 고별사다.

[최연혁 교수의 스웨덴 패러독스] 글싣는 순서

1. 글을 시작하며
2. 영국, 미국 그리고 스웨덴 3국의 숨겨진 비밀
3. 노조가 존중받는 사회, 스웨덴 노조의 대변신
4. 기업하기 좋은 나라, 사민당의 대변신
5. 만연했던 부패 어떻게 청산했나, 스웨덴 해법의 블랙박스
6. 특권을 걷어낸 정치, 국가경쟁력
7. 민주주의 건강상태는 누가 챙겨야 할까
8. 좌우파의 국가우선주의, 설득을 통한 상생의 정치
9. 정당 내 계파가 없는 이유
10. 성차별이 없는 사회
11. 장애인이 살기 좋은 나라
12. 국민 여러분의 마음을 열어주세요
13. 지방경쟁력은 곧 국가경쟁력
14. 서로의 선을 지키는 사람들
15. 화를 내지 않는 사람들
16. 4차산업시대 노사관계의 대전환
17. 새로운 정치패러다임, K-Politics 전제조건
18. 우리 사회의 대전환, 두 개의 관문
19. 국민 의식의 대전환, 긍정 인자를 깨우자
20.글을 맺으며, 대한민국 패러다임 전환 (끝)

"안이 뢰프는 토론장에서는 저의 정적이었습니다. 때로는 얼굴이 붉힐 정도로 강한 논조로 서로에 대해 날 선 비판을 주고받았지요. 사상적 차이와 가치의 차이로 정치적으로는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였지만, 우리나라의 정치를 역동적이고 살아 숨 쉬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각자가 국가를 위해 각 당이 추구하는 가치를 국민에게 알리고 심판을 받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우리의 논점은 극과 극의 위치에 있지만 국민들을 투표소로 향하게 하는 데 큰 기여를 하지 않았을까 자평 합니다. 그동안 나눈 멋진 토론들, 저의 마음을 찌르는 아픈 표현들까지도 감사를 드립니다. 한 명의 훌륭한 토론 파트너를 떠나보내는 것이 참 아쉽습니다. 당분간 쉬면서 독서의 시간이 많을 것 같아 "자유주의적 민족주의"라는 신간을 선물로 드립니다. (오케손의 스웨덴 민주당은 극우정당으로 스웨덴 민족주의의 신봉자다. 뢰프는 자유주의 신봉자다.) 나중에 이 책을 주제로 꼭 토론을 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2023. 1. 26 의회 고별사)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책을 건넨다. 이 고별사를 받아 뢰프는 이렇게 답한다.

"저도 분명 오케손과 함께 했던 뜨거운 논쟁이 그리울 겁니다. (모두가 웃음) 우리 둘은 정치적 토론에서는 매서운 경쟁자 관계였습니다. 하지만 정치를 벗어나서는 아이를 키우는 같은 부모로서 육아 정보를 주고받는 사이이기도 했지요. 함께 했던 토론에서는 날카로운 설전으로 서로의 다름을 매번 확인했지만 같은 지역구 출신으로 서로 좋은 정책토론을 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얼굴에는 맑은 웃음과 장난기가 물씬 풍기는 답변으로 동료 의원들에게 무겁기만 하던 정책토론장에 웃음을 선사했다. 이 잔잔한 에피소드는 국영텔레비전 SVT를 통해 전국에 방영되었고 동영상 인터넷 뉴스도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저녁 뉴스에도 이 고별사는 다시 전파를 타고 국민들에게 생생하게 전달되었고, 떠나는 지도자의 연설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아쉬움은 더 큰 여운을 남겼다.

스웨덴 중앙당 당대표 안이 뢰프(Annie Lööf) [사진=Annie Lööf 트위터 캡쳐]

설득의 핵심은 무엇일까?

정치는 정책의 경쟁이자 설득력의 경쟁이다. 조나단 채터리스-블랙(Jonathan Chateris-Black)은 그의 2011년 연구 '정치인과 레토릭'에서 효과적 설득을 위한 4가지의 요소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힘 있는 설득은 좋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자신의 스토리보다는 청중(국민) 일부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전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 스토리는 설득의 기초를 만들고 형식을 구성하는 뼈대의 역할을 한다. 둘째, 공감을 이끌어 내는 힘이다. 청중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나도 당신이 느끼는 것을 함께 공유하고 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와 닿지 않으면 청중은 마음을 열지 않는다. 공감능력은 감성능력과 맞닿아 있다. 셋째, 논리적 설득력이다. 이것은 주장의 논거를 뒤 받쳐 주는 설명자료, 구체적 사례, 일반적 근거(이론이나 규칙성), 확률 및 개연성들로 체계적으로 보여 주어야 힘을 가진다. 넷째, 좋은 의도와 방향성이다. 당신에게 좋은 것, 그리고 당신의 자녀에게 좋은 것 뿐 아니라 윤리적이며 도덕적으로 중요한 것이라는 확신을 보여 주는 것이다. 노예해방은 인간의 자유, 평등, 정의에 부합되는 것이라는 것을 주장해 관철시킨 링컨의 핵심논거다. 이러한 보편적 가치와 더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것임을 보여 주지 못하면 논쟁에서 열세에 몰리기가 쉽다. 이 네 가지를 모두 결합해 "나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곧 설득의 핵심이다.

설득력은 수사학적 표현 혹은 다양한 문학적 표현으로 담아낼 수 있을 때 더 큰 힘을 얻는다. 연설의 대가로 꼽히는 윈스턴 처칠과 넬슨 만델라, 버락 오바마, 존 에프 케네디와 같은 지도자들의 연설을 분석해 보면 핵심질문(question), 유추(analogy), 비유(simile), 은유(metaphor), 평행적 대치(parallel), 반복(repeat), 암시(allusion), 일화(anecdote) 등의 수사학적 기법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잘 짜인 연설과 토론은 듣는 사람에게는 진한 감동을 주고, 고통 받는 국민들에게 힘을 주며, 아픔을 함께 이겨낼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 준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국제적 지도자들은 그 들의 임기 중 이룬 치적 뿐 아니라 연설이 주는 메시지, 감성, 목소리, 제스처 등의 울림이 우리 마음속에 오래 간직된다.

스웨덴 의회에서 진행되는 총리의 시정연설, 당대표 토론, 대정부 질문 등을 설득의 논리와 레토릭으로 분석하다 보면 어느 부분에서 설득력이 강하고 약한지, 누가 더 잘했는지 못했는지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이런 연설과 토론을 자주 접하는 청소년들은 학생회장이나 학급반장 선거 연설들도 더욱 풍성해진다. 사회 전반에도 토론의 문화가 확산되어 사회적 분위기는 경청, 존중, 상대방 인정이라는 고도의 시민정신으로 승화된다. 국회에서 벌어지는 좋은 논쟁과 연설은 국민의 정치적 식견을 더 살찌우고 토론의 문화를 확산시키는데 큰 효과를 발휘한다.

정치는 사회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

모든 것은 정치로 수렴된다. 그 중에서 국회는 모든 정치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그곳에 해답이 있기 때문이다. 규제를 새로 만드는 것도, 없애는 것도 국회에서 이루어진다. 이익집단 간에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사안을 법을 통해 해결해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방치되어 있어 갈등을 더 증폭시키기도 한다. 국회에서 다뤄지는 정책 내용은 국민생활과 직결되고 이익집단, 지역, 계층별로 손익계산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설득의 기술과 논리, 감성, 가치를 가지고 경쟁할 때 두 진영이 합의를 보지 못하는 중대한 국가적 과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좌파와 우파의 논리가 아니라 국가의 공동이익을 다루는 정책의 차이는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예를 들어 미래세대에 엄청난 영향을 줄 안보, 연금, 기후변화, 환경, 선거제도, 권력구조 개혁 등과 같은 국가 이슈는 국회에서 쉽게 결론을 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어느 한쪽이 국민의 지지를 받아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다음 선거에서 패배해 추진했던 정책이 중단되면 국력의 손실 뿐 아니라 국제적 파장과 국내적 해결 능력의 부재와 갈등으로 국력이 크게 쇠퇴하거나 존립 자체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이런 사안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스웨덴 민주당 당대표 지미 오케손(Jimmi Åkesson) [사진= 유튜브 채널 Skolvarlden 캡쳐]

세 가지 중대한 국가이슈를 여야·좌우 공조로 헤쳐 나간 스웨덴

스웨덴은 1991년 재정위기가 찾아 왔을 때 실업율의 증가에 따른 세금의 급격한 감소와 저출산과 고령화의 문제가 함께 도래하면서 미래 연금고갈 문제에 봉착했다. 1960년 연금개혁 당시 3퍼센트 내외의 실업율, 3퍼센트 내외의 경제성장율, 출산율 2.3~2.4로 미래 노동력을 산출해 연금수급 능력을 예측하고 운영하고 있었지만, 예상보다 빨리 인구 20퍼센트 이상의 고령자 사회로 진입하고 2.0 수준의 출산율로 떨어지면서 30년 전에 계측 했던 것 보다 빠른 연금 고갈이 현실적 문제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연금문제는 현 세대에 그치지 않고 미래세대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세대갈등을 야기 시킬 수 있는 사안이고, 정당들에게는 인기 없는 정책을 밀어 붙이다가 선거패배에 직면할 수 있는 문제였기에 선뜻 나서는 것이 큰 부담인 상황이었다.

1991년 재정위기의 상황은 정당 간 협의의 장을 열어 주었고, 이때부터 미래문제에 대한 여야의 공조체제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1991년 5개 정당 합의로 첫 단추를 꿰고 1994년 사민당과 우파 4개당이 여야협의체(pensionsgruppen)를 구성해 매년 연금개혁을 위한 국가로드맵을 만들기 시작했다. 1997년 기초연금의 수령액 삭감, 이민자의 경우 40년 이상 거주한 경우 100퍼센트 기초연금 수령 자격을 부여하고 거주기간에 따라 비율이 결정되도록 했다. 조기연금수령 연령도 60세에서 62세로 늦추고 65세 자동수령 연령도 67세로 조정하는 등 연금그룹의 활동으로 지속적 연금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합의가 지속적으로 도출되고 있다. 이 연금여야협의체는 여전히 작동되고 있어 30년간 이어지고 있는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두 번째로 국방공조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스웨덴은 중립외교의 한계와 문제점에 봉착했다. 우크라이나에 신속하게 군사지원을 결정하면서 러시아는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 국가를 모두 적으로 간주한다는 발언 때문이었다. 전쟁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중립외교는 더 이상 설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스웨덴의 신속한 무기제공의 천명으로 나토회원국들과 함께 러시아의 공동의 적으로 적시된 것이다. 당시 총리였던 마그다레나 안데손은 전통적으로 서방 군사동맹인 나토에 반대 입장이었던 당 노선을 바꾸기 위해 당전국위와 중앙위에서 추인을 받고 나토가입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 그 다음 순서로 야당대표들을 초치해 스웨덴 나토가입 문제에 대한 입장들을 조율해 공동으로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나토가입에 외교주권의 침해라는 입장을 관철했던 좌파계열 두 정당이 반대했지만, 의회의 결정을 전적으로 수용해 정부에 힘을 실어 주었다. 안데르손 총리는 나토가입 신청서를 낸 후 옵저버 자격으로 나토 겨울 훈련장에 참관할 할 때 야당 대표와 함께 참여할 것을 권유해 관철시켰다. "국방과 안보문제는 여와 야가 따로 없습니다. 야당도 여당이 되면 곧 국가를 이끌어 갈 정당입니다" 안데르손 총리의 야당대표 초청인터뷰 내용이다. 야당 대표인 울프 크리테르손(Ulf Kristersson)은 국가의 생존을 다루는 국가안보와 국방문제에 여야가 없다는 일성으로 함께 나토훈련장에 참가했다. 스톡홀름에서 총리전용기를 함께 타고 동계훈련장인 노르웨이까지 함께 날아갔다. 스웨덴 참가군 앞에서 두 정치인이 연설하는 모습을 TV 앞에서 지켜보는 국민들은 여야의 공조와 상생의 모습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세 번째로 코로나 대응을 위한 공조체제다. 2019년 시작된 코로나가 전국에 급속히 확산되는 상황에서 사민당 정부는 모든 정당 대표와 함께 영업제한과 집회금지 등의 시장 활동 제한과 일시적 인권침해 등에 대해 국가가 한시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코로나법 제정을 위해 그 필요성을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총리실에 속속 모여 드는 야당대표들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그 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코로나와 같은 국가위기에는 여야가 없습니다.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전적으로 믿겠습니다" 코로나법은 모든 정당들의 동의를 얻어 만장일치로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노인시설에서 빠른 전파로 인구수 대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가 속출하는 상황 속에서도 야당은 정부의 조치에 대한 비난보다는 국가의 위기에는 여야가 없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가의 위기에 여야 정치인들, 특히 여당의 노력과 야당대표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특히 정부에 항상 날 선 비판의 날을 세웠던 스웨덴 민주당 지미 오케손 대표조차 정부와 함께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특별담화 형식으로 표명하는 등 국가의 위기를 전 국민이 하나가 되어 극복하는 분위기를 만드는데 동참했다.

[출처=게티이미지]

사회적 갈등의 심화는 결국 정치의 실패

사회적 갈등을 정치에서 해결해 주지 못하면 분열과 폭력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결국 갈등은 정치에서 시작된다. 여야의 협치가 필요한 분야는 여야가 모두 참여하는 공동위원회를 구성해 정권과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이끌어 나가고, 첨예한 정책이슈는 본회의에서 레토릭과 설득의 기술을 이용해 여야의 입장을 명확히 보여주면 정책판단은 국민의 몫이다. 정치에서 갈등의 원인을 미리 제거해 주면 국민은 일상의 삶을 평온하게 살아 갈 수 있지만, 정치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사회에 던져 놓으면 주말거리는 온통 진영 간 대립의 장이 되고 만다.

정치에서 사회갈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능력의 부재도 문제이지만 분열과 갈등을 오히려 조장해 생기는 이익에 편승한 정치는 더욱 위험하다. 지역감정을 이용한 정당의 결속과 선거독식을 위해 선거제도개혁에 소극적으로 임하는 자세는 분열과 갈등해결의 의지가 없는 것을 넘어 기득권을 유지하겠다는 속셈이기 때문이다.

격조 있는 정치는 사회의 격조를 높이기 위한 첫 번째 과정이다. 국회법의 절차에 따른 예산심의, 상임위의 정책토론과 의결절차에 따른 본회의 상정, 여야대표들의 연설과 대정부 질문 등의 과정은 국가의 격조를 결정하는 요소이자 국민의 정서와 문화를 만들어 가는데 중요한 교과서의 역할을 갖는다. 국회에서 피켓이 난무하고, 몸싸움과 상대방 비하의 표현이 TV를 통해 여과 없이 전달되고, 삿대질과 고함, 집단퇴장과 비아냥의 모습은 국민들이 육상릴레이 하듯 바톤을 이어 받아 주말시위정치로 이어진다. 이런 민간행사에 정치인들이 함께 참여해 상대정당을 비난하기도 한다. 절대적으로 잘못된 행위다. 정치인의 일하는 자리는 국회 본회의, 상임위, 그리고 의원세미나실, 국회도서관이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말의 능력으로 설득하고, 설득 당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정치인에게는 좋은 설득기술을 익히기 위해 스스로 연마하는 노력이 필수다. 정책을 공부해야 토론의 근거를 강화할 수 있다. 해외 정책 사례를 알아야 논쟁에서 국민에게 좋은 예를 소개할 수 있다. 정치인의 토론은 국민에게 좋은 공부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만큼 국민의 정치지식을 살찌우고 국민의 토론문화를 뿌리내리게 하는 밑거름이 된다.

국가를 중심에 두어야 여야 간의 간극을 좁힐 수 있다. 여와 야, 좌와 우의 간극은 국가의 이익 앞에서 아무 의기가 없기 때문이다. 두 마차가 전 속력으로 마주보며 달리면 결국 국민만 파탄된다는 것을 스웨덴의 상생의 정치, 여야가 없는 정치, 설득의 정치가 역설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필자 최연혁 교수는=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랄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등이 있다.

kimsh@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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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레임덕' 오나…민주당 상·하원 '싹쓸이' [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2026년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연방 상·하원 주도권을 모두 휩쓰는 '블루 웨이브(Blue Wave·민주당 대승의 파도)'를 일으켰다. 3일(현지시간) 밤, 아직 개표가 한창인 가운데 미국 주요 방송사들은 민주당의 상·하원 다수당 석권을 일제히 예측 보도했다. 민주당은 상원에서 이미 과반인 51석 이상을 확보한 데 이어, 하원에서도 과반(218석)을 무난히 넘기는 대승을 거둘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전반기의 성적표 격인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대승을 거둔 것은 그야말로 '트럼프 심판론'의 압도적 승리였다. 관세 정책과 이란 전쟁 장기화에 따른 고유가·고물가가 미국인들의 표심을 결정적으로 돌려놓았다. 지난 10월 26일(현지시간) 미국 미시시피주 코린스에서 공화당 상원의원 신디 하이드스미스를 위해 지원유세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무대에서 내려오는 모습. [사진=로이터 뉴스핌] NBC, CNN, CBS 등 미 주요 방송사의 의뢰로 여론조사기관 SSRS가 실시해 이날 발표한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75%가 "현재 미국 경제 상황이 악화됐다"고 답했다. 특히 유권자의 65%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경제를 더 악화시켰다"고 응답했으며, 62%는 고물가의 책임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다고 지목했다. 유권자 10명 중 4명 이상인 43%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심판표를 던지기 위해 투표소에 나왔다"고 밝혔다. 이는 상원 승패를 결정지을 핵심 경합주인 조지아, 오하이오, 미시간, 텍사스 4곳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가 과반을 넘어서며 공화당 후보들에게 뼈아픈 악재로 작용했다. 지난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핵심 유권자층의 이탈 징후도 포착됐다. 히스패닉(라틴계) 유권자 중 민주당 지지율은 2024년 39%에서 올해 43%로 반등했다. 이는 불법 이민자 단속 등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반이민 정책이 라틴계 표심의 반감을 사면서 나타난 결과로 풀이된다. 이날 밤 개표 상황을 지켜본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타임스(NYT)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중간선거 결과를 수용할 의향이 분명히 있다(absolutely willing)"며 민주당과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혀 일단 패배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이란과의 전쟁이 공화당 선거 패배에 일조했다"고 입장을 밝히는 한편, 민주당이 "터무니없는(insane)" 법안을 내놓을 경우 대통령 거부권(Veto·비토)을 족족 행사하겠다고 강조하며 날을 세웠다. ◆ 입법 주도권 상실… 트럼프 '미스터 비토' 전략과 행정명령 우회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이 형성됨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의 남은 임기 2년 국정 운영 방식은 대대적인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민주당이 상당한 의석 차로 의회 주도권을 쥠에 따라 주요 국정 과제 관련 입법과 예산안 심의, 인사 청문회 등에서 민주당의 협조 없이는 단 하나의 법안도 통과시키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찌감치 스스로 '미스터 비토(Mr. Veto)'가 될 것임을 경고해 왔다. 그는 지난 1일 폭스뉴스를 통해 선공개된 뉴욕포스트 팟캐스트 인터뷰 예고편에서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면 아마 내가 '미스터 비토'가 되어야 할 것"이라며 "민주당이 올린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다 보면 그들도 시간 낭비라는 것을 깨닫고 협상 테이블로 나올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는 선거 전부터 이미 패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배수진을 쳤음을 보여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6년 8월 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출생시민권 및 폴리실리콘 산업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행사에 참석한 모습이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그러나 거부권 행사만으로는 국가 예산안 타결이나 행정부 국정 운영을 지속할 수 없는 한계가 명확하다. 이에 따라 입법권이 막힌 트럼프 대통령이 고유 권한인 행정명령(Executive Order)에 집착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쏠린다. 로이터 통신은 백악관 소식통을 인용해 백악관이 이미 몇 달 전부터 '여소야대' 정국에 대비해 비밀 대책 수립을 마쳤다고 보도했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과 러셀 보트 예산관리국장(OMB) 등 핵심 참모진은 지난 4월부터 법률고문실과 협력해 이민 정책, 관세, 주택 비용 감축 등 의회 승인 없이 행정권한만으로 강행할 수 있는 조치들을 정밀 검토해 왔다. 하지만 행정명령 역시 예산 뒷받침이 없으면 효력이 제한적인 데다, 사법부의 가처분 신청 등에 가로막힐 위험이 크다는 단점이 있다. ◆ 레임덕 회기 속 공화당의 '속전속결' 입법전  민주당이 새 의회의 의사봉을 쥐는 내년 1월 3일 전까지, 공화당이 상·하원 다수당 지위를 유지하는 남아있는 '레임덕 회기' 동안 양당 간의 치열한 입법 전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선거 패배를 직감한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 지도부는 레임덕 기간을 활용해 시급한 국정과제와 법안, 공직 인준안을 전격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우선 과제는 당장 내달 11일 만료되는 연방정부 임시 예산안(CR)의 연장 및 2027 회계연도 정식 예산안 타결이다. 다만 상원 내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무력화하려면 60표가 필요해, 민주당과의 타협이 필수적이다. 여의치 않을 경우 국방 예산 등 핵심 부처 안을 먼저 통과시킨 뒤 나머지 항목을 협상 테이블에 올리는 차선책도 거론된다. 2027 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 처리도 시급한 과제다. 현재 하원 안만 통과하고 상원 군사위원회 안은 계류 중이다. 이 역시 민주당의 필리버스터를 고려하면 협상이 필수적이다. NDAA에는 주한미군 규모 유지, 미 해군 함정 정비·건조 관련 한미 조선 협력 등 한국의 안보 및 통상 이해관계와 직접 결부된 사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국내 산업계와 정부도 초유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 가장 시급한 불은 연방정부 부채한도(현 41조 1,000억 달러) 상향이다. 한도 도달이 임박한 상황에서 이를 늘리지 못할 경우 향후 2년 간 국정 수행 자체가 마비될 수 있다. 민주당은 이를 지렛대 삼아 복지 정책 확대를 요구할 태세다. ◆ 민주당의 대대적 청문회와 '트럼프 가족 비즈니스' 조준… 탄핵 국면 재현되나 상·하원 상임위원장 자리를 독식하게 된 민주당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실패와 각종 사법 리스크를 향해 대대적인 청문회 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이번 의회 조사의 핵심 타깃은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가족 비즈니스다. 출구조사에서도 고물가에 이어 '부패와 사적 이익 추구'가 주요 불만 이슈로 지목된 만큼 민주당의 고강도 조사는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지난 10월 26일(현지시간) 저속 셔터로 촬영한 미국 워싱턴DC의 연방 의회의사당. [사진=로이터 뉴스핌] 로이터의 지난 9월 말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자산은 집권 2기 들어 가상자산, 드론, 인공지능(AI), 예측시장 등으로 영역을 넓히며 약 22억 달러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민주당은 민간 기업의 경우 대통령 행정권 특권을 이유로 의회의 자료 제출 요구나 소환장 발급을 거부할 법적 명분이 없다는 점을 집중 공략할 방침이다. 하킴 제프리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 역시 "개원 첫날부터 철저히 책임을 묻겠다"고 공언했다. 주요 조사 대상으로는 트럼프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파트너로 있는 '1789캐피털'이 투자한 희토류 스타트업 '벌칸 엘리먼츠'가 거론된다. 이 회사는 투자 불과 3개월 만에 국방부로부터 6억 2,000만 달러 규모의 대출을 승인받아 특혜 의혹을 받고 있다. 또한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중동 국유펀드와 사모펀드 거래를 이어간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의 이해충돌 의혹, 대선 기부의 대가로 세금 감면 혜택을 받은 석유 기업들, 카리브해 바하마 결혼식 비용의 러시아 올리가르히 대납 의혹 등도 파상공세 대상이다.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을 차지함에 따라 과거 1기 임기 당시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1·6 의사당 난입 사태' 때처럼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하원 탄핵소추안을 다시 추진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실제 대통령 파면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 하원에서는 과반(218석 이상) 찬성으로 탄핵안을 통과시킬 수 있지만, 상원 탄핵 재판에서 최종 유죄를 확정하려면 출석 의원의 3분의 2인 67석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을 탈환하더라도 의석은 51석을 조금 넘는 수준에 그쳐, 상당한 공화당 상원의원 이탈표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한 상원 문턱을 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트럼프 2기 정부는 남은 임기 동안 민주당의 파상적인 청문회 공격과 하원의 탄핵 시도, 이에 맞선 트럼프 대통령의 연쇄 거부권 행사와 행정명령 강행이 맞물리며 미국 국정이 극심한 대치와 경색 국면에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wonjc6@newspim.com   2026-11-04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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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제2금융·증권사 등 보안 모두 뚫렸다 은행을 시작으로 증권사와 카드사 뿐 아니라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까지 해킹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금융사 보안 체계는 외부 공격과 내부 관리 부실 앞에서 허점을 드러냈고 사고를 사전에 탐지하거나 피해를 신속히 차단하는 대응 역량도 도마 위에 올랐다. 뉴스핌은 총 4편의 기획을 통해 업권별 사고 원인과 보안 실태를 규명하고 인공지능(AI) 기반 보안체계 구축과 망분리 규제 개선 및 실질적인 제도 개선 방안 등을 모색한다. [서울=뉴스핌] 김양섭·김가희 기자 = 국내 금융권이 한 달 넘게 이어진 연쇄 해킹에 업권을 가리지 않고 뚫렸다. 지난달 1일 신한은행의 고객정보 유출 공개 이후 시중은행과 저축은행, 캐피탈사, 새마을금고중앙회로 번진 침해사고는 지난달 말 대신증권과 미래에셋자산운용, 미래에셋생명, 빗썸으로 이어졌고 한양증권에서도 유출이 확인됐다. 금융당국이 지난달 14일 집계한 침해 금융사만 16곳, 유출 정보는 약 10만건이었다. 뚫린 곳은 대부분 핵심 뱅킹망이 아닌 외곽 시스템이었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4일 사고를 세 유형으로 나눴다. 본인확인 없이 대출신청 내역 등을 조회할 수 있던 정보조회 서비스, 기기 접근통제가 빠졌거나 웹 취약점이 있던 프라이빗뱅커(PB)·기업금융 담당자(RM) 등 직원 업무지원 서비스, 이미 알려진 취약점으로 악성코드가 심어져 고객정보가 담긴 로그파일이 빠져나간 홈페이지다. 금융당국이 금융회사 555곳의 자체 보안점검 결과를 공개한 지 2주 만에 증권·보험업권에서 추가 사고가 나오면서 체크리스트 방식 점검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AI 일러스트= 김가희 기자] ◆ 모집인 조회서비스 뚫리자 고객 정보까지…신한 2만5729명·국민 2210명 유출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번 연쇄 해킹에서 가장 먼저 드러난 신한은행 사고는 모바일 홈페이지 'M신한'의 대출모집인용 조회 서비스에서 시작됐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만 있으면 들어갈 수 있는 서비스였다. 신한은행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공격자는 9월 28일 저녁부터 고객번호 등 입력값을 무작위로 바꿔 넣으며 조회를 반복했고 휴대전화 인증 우회도 시도했다. 8개국 인터넷 프로토콜(IP) 주소를 바꿔가며 들어왔고, 은행은 15시간26분 뒤에야 이상을 알아챘다. 유출 고객은 2만5729명이다. 이름·전화번호와 연소득, 산출 대출한도 등이 빠져나갔고 주민등록번호 66건과 연계정보(CI) 97건도 포함됐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4일 은행 4곳과 예가람·웰컴저축은행, 현대캐피탈 등 7개사 사고 가운데 여러 곳에서 동일 공격자로 추정되는 IP가 발견됐고 인공지능(AI) 도구를 활용한 정황이 있다고 밝혔다. 비슷한 접근 시도를 받은 우리은행과 NH농협은행에서는 유출이 확인되지 않았다. 우리은행은 대출모집인이 지정 태블릿에서 별도 인증서와 생체인증을 거쳐야 업무시스템에 들어갈 수 있고, 농협은행은 모집인에게 내부망 접속 권한이나 별도 업무시스템을 주지 않는다. KB국민은행은 직원용 모바일 업무지원 시스템 'RM 에이전트'와 'PB 에이전트'가 뚫렸다. 지난달 2일 고객 119명 유출을 밝혔다가 26일 재조사에서 고객 1631명과 임직원 460명을 추가로 확인해 피해가 2210명으로 늘었다. 하나은행은 영업지원시스템(ODS)에서 고객 89명의 주민등록번호·주소·직장명 등이 유출됐다. 최병호 고려대 휴먼인스파이어드AI연구원 교수는 이번 사고를 개별 회사가 아닌 금융권 전반의 구조적 취약점 문제로 봤다. 그는 "이번 사고는 본사가 아닌 외곽 조직이 털린 것이어서 망분리와는 관계가 없다"며 "외곽 조직은 업무 편리성이나 직원 복지, 매출 때문에 보안 등급을 의도적으로 낮춰온 곳"이라고 말했다. 이어 "과거 인간 해커는 목표를 정해 오래 준비했지만 AI 에이전트는 수천 개가 금융권 전체를 실시간으로 훑다가 취약점을 찾으면 바로 공격한다"며 "관행처럼 해오던 부분을 AI 에이전트가 간파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AI 일러스트= 김가희 기자] ◆ 자체점검 '적정' 대신증권도 뚫려…협력사 연계서버서 3만8490명 유출 대신증권은 지난달 17일 투자일임 비대면 계좌개설 연계서버에서 비정상 접근을 포착했다. 고객 3만8490명의 이름·이메일·주소와 암호화된 계좌번호 등 8개 항목이 유출됐다고 지난달 28일 밝혔다. 대신증권은 당국의 12개 항목 자체점검에서 미흡사항이 없다고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뚫린 연계서버는 당시 점검 대상에 들어 있지 않았다고 밝혔다. 같은 날 미래에셋자산운용도 업무용 웹 시스템에 외부 IP가 비정상 접근해 일부 업무 정보가 유출됐다고 밝혔다. 고객정보 유출은 없었다고 했다. 한양증권도 지난달 29일 외부 그룹웨어에 대한 비정상 접근으로 고객정보 15건을 포함한 개인정보 31건이 유출된 사실을 확인했다. 주민등록번호가 포함된 건은 3건이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운용업계는 개인 고객 정보를 직접 다루는 일이 적어 그동안 보안 투자 우선순위가 은행·증권·카드보다 낮았던 게 사실"이라며 "중소형사는 자체 보안 인력을 꾸리기 어려워 전산을 외주에 의존하는 곳이 많은데, 외주업체가 뚫리면 같이 피해를 입는 구조적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신증권과 미래에셋자산운용 사고가 알려진 뒤 점검 수위가 한 단계 더 올라갔다"며 "외부에 노출된 시스템을 전수 파악해 접근통제를 다시 확인하고 점검 범위를 외주·연계 구간까지 넓히고 있다"고 전했다. 빗썸은 사내 모바일 그룹웨어가 뚫려 고객 6444명과 임직원·협력사 직원 715명의 정보가 유출됐다고 지난달 29일 밝혔다. 고객 844명분은 암호화되지 않은 채 노출됐고 주민등록번호·신분증 사본 등이 포함됐다. 빗썸은 당국 자체점검 때 최신 보안패치 적용이 미흡하다고 보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보험사 가운데 처음 해킹 유출을 신고한 미래에셋생명은 지난달 25일 이상 징후를 발견했다. 홈페이지와 청약시스템 일부가 침해돼 이름·주민등록번호·계좌번호 등 홈페이지 서비스 관련 정보가 빠져나갔다. 유출 규모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 10년 된 데이터베이스 쓰던 예가람 4만3246명 유출…웰컴·현대캐피탈은 닷새 뒤 인지 예가람저축은행에서는 고객 4만3246명의 정보가 유출됐다. 규모가 공개된 사례 가운데 가장 많고 상반기 말 거래자(16만2731명)의 4분의 1이 넘는다. 이 중 320명은 주민등록번호·계좌번호·거래내역 등 다른 항목까지 빠져나갔다. 해커는 9월 16일 고객정보 서버에 접근했지만 은행은 14일 뒤에야 이를 알아챘다. 국정감사에서는 침해 관련 시스템에 2016년 출시된 구버전 데이터베이스(DB) '레디스(Redis) 3.0.7'이 쓰였고 1년 전 공개된 취약점도 패치되지 않은 상태였다는 지적이 나왔다. 예가람저축은행은 사고 당시 금융보안원 회원사도 아니었다. OK저축은행은 지난달 11일 대출신청 웹페이지, 15일 모바일 수신서비스 홈페이지가 잇따라 뚫려 고객 250명의 연소득·대출금액 등과 268명의 계좌번호·잔액 등이 유출됐다. 웰컴저축은행과 현대캐피탈은 9월 27일 공격을 받고도 닷새 뒤 금융보안원이 공유한 공격 IP로 접속 기록을 살피다 침해를 확인했다. 웰컴저축은행에서는 법인 인터넷뱅킹 아이디·대표자 이름 등 2370건(중복 포함)이 유출됐다. 현대캐피탈은 주택대출 모집인 조회페이지가 공격받아 모집인 146명의 주민등록번호가 노출됐다. 새마을금고중앙회 공제 홈페이지에서도 회원 400여명의 정보가 빠져나갔고, 중앙회는 약 60시간 뒤 금융보안원이 전달한 의심 IP를 분석하고서야 이를 알았다. 김명주 인공지능안전연구소(AISI) 소장은 최 교수와 달리 뚫리지 않은 회사도 있는 만큼 개별 회사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기업마다 부가서비스로 했거나 보안을 등한시했던 부분이 계속 뚫리고 있다"며 "금융권도 보안을 비용으로 보기 때문에 사고가 안 나면 아까운 돈이다 보니 몇 년씩 사고가 없자 늘려야 할 투자를 계속 줄이다가 이번에 터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금융권 정보보호 인력 비중은 수년째 10%를 밑돈다. 금융감독원이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올해 6월 말 7개 업권의 정보기술(IT) 인력 2만7508명 가운데 정보보호 인력은 2654명(9.6%)으로, 은행(8.8%)과 증권(9.5%)은 평균에도 못 미쳤다. ◆ 555곳 중 130곳 '미흡'…패치·인증·관제 기본 항목서 구멍 금융위원회가 지난달 14일 공개한 긴급 자체점검에서 금융회사 555곳 가운데 130곳(23.4%)이 보안패치 미적용, 기술지원이 끝난 노후 시스템 관리 미흡, 24시간 보안관제 미구축, 대외시스템 인증·인가 누락, 다중인증(MFA) 미도입 등 미흡사항을 보고했다. 나머지 425곳은 '적정'으로 보고했다. 신진창 금융위 사무처장은 지난달 14일 "수 차례에 걸쳐 전수점검과 관리 강화를 주문했음에도 금융회사에서 기본적인 부분이 잘 지켜지지 않는 사례가 발견된 것은 매우 뼈아픈 부분"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도 금융권의 이행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사고 전부터 기본 보안 통제 보완과 외부 접점 악용 주의 등을 전파했고, 긴급 체크리스트 점검 때 필수적인 경우를 빼고 외부 접근을 원칙적으로 차단하도록 했지만 가시적인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전날 임원회의에서 "사고 회사가 유의사항과 자체점검을 제대로 이행했는지 살피고, 종합금융투자사업자·보험사 등 대형 금융회사도 은행권과 같이 CEO 등 경영진 책임까지 엄중하게 물으라"고 지시했다. 대부업·가상자산업·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 등 전자금융거래법 미적용사를 포함한 전 금융권의 외부 접점을 전수 점검하고, 형식적 점검에 그친 곳은 엄중 조치하라고도 했다. 오는 5일에는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5대 시중은행장·금융협회장 등과 간담회를 열고 AI 해킹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최 교수는 미국·유럽처럼 외부 공격을 가정해 취약점을 찾는 '레드팀' 점검을 상시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은 체크리스트로 점검하거나 자기 보고에 의존해 보고할 때는 문제가 없다고 했을 것"이라며 "정부가 보안 품질을 평가하거나 보안 성과를 공시해 주가에 반영되도록 하면 기업이 돈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보안을 투자로 보는 인식과 CEO가 책임지는 구조를 개선 과제로 꼽았다. 그는 "지금은 CEO가 아니라 개인정보·정보보호 담당자가 책임을 지고, 사고가 나면 그 사람을 잘라버리면 끝"이라며 "갈수록 AI를 쓴 공격이 늘어날 텐데 이전 보안 시스템으로는 막을 수 없는 만큼 은행도 AI 시스템을 갖춰 미리 방어에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금융위원회] ssup825@newspim.com 2026-11-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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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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