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커 감독 눈에 비친 장강 삼협댐
강변 사람들의 사랑과 이별에 관한 소묘
장강 삼협에 비춰진 2000대 중반 중국
번영의 강, 장강에 개발 바람 소용돌이
높아지는 삼협 수위에 상실의 아픔도
중국의 경제 번영은 장강이 만들어낸 기적이다. 장강의 세찬 물결엔 슈퍼국가 를 향한 중국의 야망이 어른거린다. 유유히 흐르는 장강에선 중국공산당 국가 경영의 감춰진 비밀이 드러난다. 2023년 1월 22일 뉴스핌은 '1월 8일 위드코로나' 시행후 중국 경제 상황을 취재하기 위해 장강변 도시를 찾았다. 장강 상류의 서부 내류경제 거점 충칭과 전통 도시 펑두(丰都)와 펑제(奉节) 백제성(白帝城), 우산(巫山), 삼협댐의 고장 후베이(湖北)성 이창(宜昌)에 들렀다. 이창에서 기차로 장강변의 또다른 경제 도시 이자 2019년 코로나19 진원지인 후베이성 우한(武漢)으로 이동, '위드코로나' 시행 이후 중국 경제상황을 돌아봤다.
<글싣는 순서>
[장강을 가다] ① 2023년 설 장강에서 만난 新 신중국
[장강을 가다] ② 시장 지표 선행하는 내륙의 상하이 충칭 경제
[장강을 가다] ③ 공자의 훈수를 실천한 도시 충칭
[장강을 가다] ④ 기복신앙 끝판왕, 장강변 펑두밍산의 퓨전 종교
[장강을 가다] ⑤ A주 풍향계, 위드코로나로 3년만의 봄 만난 장강 경제
[장강을 가다] ⑥ 시의 도시 펑제현, 도시와 기업 홍보대사로 소환된 이백
[장강을 가다] ⑦ 하늘에서 옮겨온 장강 절경 구당협과 우산협
[장강을 가다] ⑧ 코로나후 최초 국내 매체 장강 삼협댐 탐방기 <상>
[장강을 가다] ⑨ 코로나후 최초 국내 매체 장강 삼협댐 탐방기 <하>
[장강을 가다] ⑩ 산샤의 추억, 장강서 마주한 삼협댐의 영화 '삼협호인'
[장강을 가다] 11 코로나 진원지 우한에서 본 포스트코로나 중국경제
[장강을 가다] 12 스토리텔링으로 일확천금 만강홍의 충신 악비와 시선 이백
[장강을 가다] 13 장강이 쏘아올린 중국 굴기
[베이징=뉴스핌] 최헌규 특파원 = 중국 경제발전과 기술 굴기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창장(長江, 장강)의 대역사 산샤(三峡, 삼협)댐 공사로 2006년 무렵 장강 상류 충칭까지의 약 600킬로미터 구간은 거대한 '장강 저수지'로 모습을 바꿨다.
수천년 된 마을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장강에는 마오쩌둥도 하지못했던 협곡을 잇는 멋진 아치교들이 수도없이 세워졌다. 양광이 있으면 그늘도 생기게 마련이다. 댐 수위가 치솟으면서 정든 고향 마을이 눈깜짝할 새 수몰되고 도시는 철거와 개발 바람으로 들썩였다.
2023년 설연휴중인 1월 24일 산샤크루즈 유람선 장강3호가 장강의 펑제(奉節)현과 우산(巫山)현을 지나 삼협댐의 도시 이창으로 이동하던 밤 뉴스핌 기자는 스마트폰에서 장강 산샤와 삼협댐을 모티브로 한 오래된 영화 삼협호인(三峽好人, 산샤하오런, 영문제목: STILL LIFE)을 끄집어 냈다. 장강 삼협의 수면위에서 직접 마주한 영화 '삼협호인'은 전과 느낌이 달랐다.
중국 자장커(賈樟柯) 감독의 영화 삼협호인(三峽好人, 산샤하오런, 영문제목: STILL LIFE)은 삼협댐 건설이 이슈였던 2000년대 중반 중국 사회의 모습을 사실적 기법으로 그린 타큐멘터리식 풍경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장강(長江) 상류 도시 충칭(重慶) 펑제현이 주요 무대이며 2006년에 개봉됐다.
[베이징=뉴스핌] 최헌규 특파원 = 중국 6세대 감독 자장커 감독의 영화 '삼협호인'의 무대인 충칭 펑제현에 1만 7000톤급 대형 유람선이 정박해 있다. 유람선 뒤로 강안 기슭에는 '자연을 보호하고 대개발을 막자'는 내용의 대형 입간판 선전물이 설치돼 있다. 장강 삼협댐 건설은 대규모 이주 개발과 함께 장강변의 지도를 크게 바꿨고 기회와 함께 상실의 아픔을 초래했다. 영화 삼협호인은 1994년에 시작된 댐 공사가 전단계 공정 마무리(2009년)를 향해 피치를 올리던 2006년에 제작됐다. 2023년 1월 24일 뉴스핌 통신사 촬영. 2023.02.10 chk@newspim.com |
중국 6세대 감독의 대표주자 자장커 감독은 개혁개방과 고속 성장 과정에서 일그러진 중국 사회의 부정적 이면에 대해 강한 문제 의식을 표출해왔다. 자장커 감독은 2013년에 발표한 영화 '천주정(天注定, 텐주딩)'에서도 중국 비록 옛날 보다 훨씬 잘 살게 됐지만 이로인해 중국이 어떤 성장통을 앓고 있는지에 대해 대담한 톤으로 지적했다.
경제개발에 계속 드라이브가 걸리고, 빈부 격차 확대 등 성장의 부작용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지만 요즘에는 사회성을 가미한 이런 류의 영화들을 만나기기가 쉽지않다. 중국인 친구들은 평화의 시대가 지나고 냉전의 시대가 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애국소비 조류처럼 영화나 소설 문예 창작 활동에도 애국주의 경향이 뚜렷해졌다는 얘기다.
장강의 엄청난 물줄기를 막고 구축한 만리장성. 삼협댐 공사는 고대의 만리장성 축성과 같다. 장강변의 수천년 경제 사회 지형도를 바꾼 삼협댐 공사는 라오바이싱(老百姓)들의 삶에 있어 어떤 의미일까. 고성장과 경제 개발, 삼협댐과 같은 대공사속에 사람들은 장강의 물결따라 도시로 몰려들고 가족들은 이별의 아픔을 겪었다.
삼협댐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돛단배가 다니던 강은 거대한 '장강 저수지'로 모습을 바꿨다. 댐은 번영을 가져왔지만 사람들이 모두 행복진 것만은 아니다. 마을이 수몰되고 '역사'가 통째 수장됐다. 자장커 감독의 영화 삼협호인은 삼협댐 위에서도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이런 부분들을 드러나지 않게 더치하고 있다.
처지에 따라 장강의 물결은 평온함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이에게는 두려움일 수도 있다. 장강은 누군가에겐 만남의 물길이고, 또 다른 이에겐 이별의 물길이다. 삼협댐 건설은 기회이기도 하지만 되돌릴수 없는 상실의 고통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각자 다른 사연과 가치관에 얽힌 채 삼협댐이 만들어내는 거친 개발의 소용돌이에 휩싸여든다.
[베이징=뉴스핌] 최헌규 특파원 = 자장커 감독의 영화 삼협호인에서 주인공들이 헤어져 각자의 길을 가고 있다. [사진=바이두] 2023.02.10 chk@newspim.com |
자장커 감독의 영화 삼협호인은 삼협위에서 펼쳐지는 두쌍의 부부, 한산밍 부부와 쉔홍 부부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이별에 관한 이야기다. 한산밍과 쉔홍은 둘다 산시(山西)성 사람으로 각자 배우자를 찾아 산샤중 구당협곡으로 유명한 충칭시 펑제에 나타난다. 이들중 한산밍은 다시 부부의 연을 잇게 되지만 쉔홍에게 산샤 펑제행은 이별을 확인하는 가슴 아픈 여행이다.
주인공 한산밍은 산시성 펀양(汾陽)의 광부다. 펀양은 감독 자장커의 고향이기도 하다. 한산밍은 16년 전 집을 떠난 아내를 찾아 펑제현에 발을 들인다. 한산밍은 펑제의 철거 작업장에서 개혁 개방 사회분위기에 단단히 바람이 든 유행과 낭만의 멋쟁이 청년을 만난다.
'우리는 옛것을 그리워하지요. 그런 우리에게 현대 사회는 어울리지 않아요' 청년이 한산밍에게 들먹이는 주윤발의 노랫가사에는 경제 성장에 따른 중국 사회 변화의 단면이 드러난다. 청년의 휴대폰 벨(컬러링)소리는 인생과 사랑의 덧없음을 노래한 광동어 버전의 '상하이탄(上海滩)'이다.
주윤발의 노랫가사 처럼 사랑은 부질없고, 인생은 정말 허무한 것일까. 이제 막 한산밍의 친구가 된 청년에게 뜻하지 않은 불의의 사고가 발생한다. 청년은 인생의 꽃을 채 피워보지도 못한 채 철거현장 벽돌 무덤에 깔려 비운의 짧은 생을 마감한다.
슬픔은 그리움으로 이어진다. '당신의 목소리엔 특별한 느낌이 있죠. 당신을 향한 그리움을 멈추지 못하게 하는...' 펑제의 공사장 저 편을 지나가며 소년이 신명나게 불러제끼는 양천강의 사랑의 노래 '라오수아이다미(老鼠爱大米, 쥐는 쌀을 좋아해)'가 한산밍에게 다시 아내(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한산밍은 수소문 끝에 뱃일을 하며 고달프게 살아가는 아내와 재회한다. 이곳에서 아내를 데려가기 위해서는 3만 위안에 달하는 거액의 빚을 갚아야 한다. 한산밍은 목숨을 건 막장 일로 이 돈을 마련하기로 하고 둘은 그렇게 다시 부부의 연을 잇는다.
[베이징=뉴스핌] 최헌규 특파원 = 중국 후베이성 이창시 2309미터의 장강을 막아 건설된 삼협댐. 2023년 1월 25일 뉴스핌 통신사 촬영. 2023.02.10 chk@newspim.com |
그래도 삼협댐 영화 삼혐호인이 묘사하는 한산밍은 행운아다. 한산밍이 아내를 데려간 펑제 바로 그 곳에 비슷한 시기 한 여인이 연락이 끊긴 남편을 찾기위해 나타난다. 쉔홍이라는 이 여인의 남편은 삼협댐 개발 바람이 한창이던 때 집을 나간지 2년이 넘게 연락이 끊겼다.
펑제의 거리에 울려퍼지는 팡룽의 2004년 히트곡, 사랑의 노래 '량즈후디에(两只蝴蝶)'와 쉔홍의 어둡고 불안한 발걸음 사이에는 웬지 모를 부조화가 느껴진다. '사랑하는 이여, 함께 숲속을 날아가 작은 계곡에 머물러요' 곡조와 가사가 모두 경쾌하고 감미로운 이 사랑의 찬가와 달리 쉔홍의 마음은 점점 무거워져만 간다.
쉔홍은 수소문끝에 남편과 상면하지만 두사람의 만남은 어색하고 냉냉하기가 이를테 없다. 남편은 삼혐댐 수몰과 관련한 철거 회사의 중책을 맡아 바빠졌고 고향과 아내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쉔홍이 마주한 현실에서 애정은 얼음장보다 차갑다. 산샤댐 수위가 차오르고 도시 철거 작업이 속도를 내면서 도시는 개발 바람에 휩싸인다. 그자리에 사랑은 없다. 공사장 석재가 어지럽게 널부러져 있는 산샤댐 아래 강변에서 쉔홍 부부는 서로 좁힐 수 없는 간극을 확인한 채 각자의 길을 간다.
영화 삼협호인의 무대 장강 상류 펑제현은 삼국지 백제묘당으로 유명한 고장이다. 이곳에서 동쪽 아래 멀지않은 곳 장강 중류 도시 이창(宜昌)에 세계 최대 규모의 수력 발전소 삼협댐이 건설됐다. 전장 2.3킬로미터에 댐 높이 185미터, 총 공사비 1800억 위안이 투자됐다.
1994년 12월에 공사를 시작해 갑문 운하와 리프트 등 전 공정이 2009년 마무리됐다. 외부 핵 공격을 받으면 댐 하류에 얼추 1억명이 수장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지만 산샤댐은 이것까지 염두에 두고 견고하게 설계됐다고 중국 당국은 밝혔다.
삼협댐은 장강 삼협 가운데 최고의 관광지다. 장강 산샤중에서도 평상시 국내외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던 곳이 삼협댐이다. 2023년 1월 8일 위드코로나 시행 이후 창장 산샤 여행 소비도 용수철 회복세를 맞았다.
베이징= 최헌규 특파원 ch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