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정부 관할 PMMA 방음터널 대부분 민자구간
도공은 PC 사용 지침 마련…정부는 강제 대신 권고만
80% 지자체 관할 깜깜이…감사원 민자도로 지적
2020년 지자체 도로 사고 방관하던 국토부 뒷북 대응
[서울=뉴스핌] 강명연 기자 = 대규모 사망사고로 이어진 경기 과천시 제2경인고속도로 갈현고가교 방음터널 화재를 계기로 민자고속도로 관리 부실이 지적되고 있다.
화재를 키운 것으로 지목되는 소재인 폴리메타크릴산 메틸(PMMA)은 민자구간이나 지자체 관리구간에서 많이 사용된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도로공사가 건설·운영하는 재정구간 고속도로는 해당 소재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위험성을 인지했음에도 정부 차원의 지침이 없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지자체 소관 도로에서 같은 사고가 나고도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없다가 감사원 지적이 제기된 뒤에야 대응하는 등 소홀한 관리감독 강화 필요성도 제기된다.
[과천=뉴스핌] 윤창빈 기자 = 30일 오전 경기 과천시 제2경인고속도로 북의왕IC 방음터널 화재사고 현장에서 경찰과 소방 관계자들이 감식을 하고 있다. 2022.12.30 pangbin@newspim.com |
◆ 중앙정부 관리 PMMA 방음터널 6개 중 5개 민자도로…전체 80% 지자체 관할 더 문제
3일 국토교통부와 업계 등에 따르면 이번 과천시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를 대형 참사로 확대시킨 원인으로 꼽히는 가연성 방음판 소재에 대한 우려가 나왔지만 관할 국토교통부는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도로공사가 운영하는 고속도로의 방음터널 15곳 중 한 곳인 무안광주고속도로만 폴리메타크릴산 메틸(PMMA)을 사용했다.
나머지 14곳은 폴리카보네이트(PC) 소재 방음판으로 방음터널을 만들었다. 두 소재 모두 플라스틱의 일종이지만 인화점이 각각 280도, 450도다. PMMA가 화재 위험성이 더 높은 것이다. 하지만 PMMA 가격이 약 30% 저렴해 민자 구간에 주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도로공사는 2015년 내부 방침을 세워 방음터널 등 설계에 PC계열 소재만 쓰기로 정했다.
'PMMA는 PC에 비해 착화 시점이 약 400초 빠르고 최대 열 방출률도 더 높은데다 (재질 자체가) 화재의 원료가 돼PMMA는 피해를 키울 뿐만 아니라 되기도 한다'는 2012년 자체 연구결과를 반영해 화재 위험이 높은 소재를 배제한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민자고속도로에서는 PMMA 사용비중이 높다. 25곳의 민자도로 방음터널 가운데 5곳이 PMMA를 사용했다. 중앙정부가 관리감독하는 방음터널 55곳 가운데 PMMA가 사용된 6곳의 대부분이 민자구간이라는 의미다.
더 큰 문제는 지자체 관할 도로다. 지자체가 감독하는 민자도시도로 31곳에 더해 시·군 단위 도로까지 합치면 민자도로를 포함해 최소 수백곳의 방음터널이 운영 중일 것으로 예상된다. 2021년 말 기준 정부 관할 고속도로, 일반국도는 전체 도로의 각각 4.3%, 12.5%에 불과하다. 나머지 80% 이상은 지자체가 관리감독하고 있다. 이러한 도로에 건설된 방음터널에서 PMMA 사용률은 더욱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사고에서 '불쏘시개' 역할을 한 PMMA는 사용에 제약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방음벽에 사용하는 재료 중 외부는 불연성 또는 준불연성이어야 하고 내부의 흡음재료는 자기 소화성으로 연소시 화염을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도로설계편람'을 1999년 제정했지만 2012년 개정하면서 해당 내용을 삭제했다.
2016년에 도입된 '도로터널 방재시설 설치 및 관리지침'을 통해 방음터널에 방재시설을 갖추도록 했지만 예외규정 등으로 인해 느슨하다는 지적이다. 방음터널 재질을 제한하는 내용도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당시 한국교통연구원 역시 화재 취약성 때문에 PMMA를 배제해야 한다고 국토부에 제안했지만 채택되지 않았다.
◆ 감사원 민자도로 안전관리실태 지적…2020년 8월 유사사고에도 방관
감사원은 2021년 7월에도 민자도로에 대한 안전관리실태를 지적했다.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등 민자고속도로의 절반이 건설된 지 10년을 훌쩍 넘었지만 시설물 개선 등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연간 감사계획에 반영했다는 게 감사원의 설명이었다.
당시 감사원은 ▲위험물질운송차량 운행 수집정보 활용 미흡 ▲민자고속도로 휴게시설 설치·운영 부적정 ▲민자고속도로 재난관리 매뉴얼 관리 부적정 ▲방음터널 설치 교량 구조안전성 검토 미실시 ▲터널 제연설비 운영 부적정 ▲건축물 내진성능 확보 부적정 등에 대해 국토부에 관리 소홀을 지적했다. 이에 국토부는 뒤늦게 연구용역 등을 통해 개선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화재사고 관련해서도 국토부는 뒤늦게 관련 제도 개선에 나섰다. 2021년 11월 감사원이 경기도 광역교통망 구축 실태를 감사하는 과정에서 관련 질의가 들어와 작년 7월부터 '터널형 방음시설의 화재 안전기준 마련' 연구용역에 착수했다.
앞서 2020년 8월에도 똑같은 사고가 있었다. PMMA가 쓰인 광교신도시 하동IC 고가차도 방음터널이 화재로 시설물이 완전히 불에 탔지만 야간에 사고가 발생해 인명피해가 없었고 주목을 받지 않았다. 지자체 소관도로이기는 하지만 도로관리책임이 있는 국토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후 감사원이 방음터널 재질의 적합성에 대해 관련 내용을 지적한 뒤에야 검토에 들어갔다.
국토부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국가관리도로는 물론 지자체 소관에 대해서도 유사 재질로 계획됐거나 시공 중인 방음터널 모두 공사를 중단하고 운영 중인 방음터널도 다양한 대체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이번 화재에 대해 "사고가 터지기 전까지 미뤄왔던 정부의 업무 태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규정 미비가 노출된 부분은 서둘러서 개선할 것"이라고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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