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징역 8개월·2심 무죄 선고
"토지의 효용 자체가 침해된 것은 아냐"
[서울=뉴스핌] 김현구 기자 = 공동으로 소유한 토지에 공유자의 동의 없이 건물을 짓는 행위는 토지의 효용을 누리지 못하게 한 것일 뿐, 이를 해한 것은 아니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A씨의 재물손괴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3일 밝혔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2020.12.07 pangbin@newspim.com |
A씨는 경기 파주시의 답 2343㎡ 중 일부를 실질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사람이며, B씨 등 28명은 해당 토지를 공유하고 있는 지분권자다.
과거 A씨는 해당 토지에 건물을 지었다가 이를 매수한 새로운 소유자로부터 건물을 철거하고 토지를 인도하라는 민사소송을 제기당한 뒤 패소했다.
하지만 A씨는 2020년 4월 해당 토지에 무단으로 새 건물을 지었다. 이에 검찰은 A씨가 해당 토지에 권한 없이 B씨 등의 토지 이용을 방해할 목적으로 건물을 신축한 것이라 보고 그가 '토지의 효용'을 해했다며 기소했다.
재판 과정에서 A씨는 자신의 배우자가 해당 토지의 공유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그 지분 비율에 따른 면적 범위 내에서 건물을 지었으므로 재물손괴의 고의가 없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1심은 A씨의 혐의를 인정해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토지의 공유자는 각자의 지분 비율에 따라 토지 전체를 사용·수익할 수 있지만, 그 구체적인 사용·수익 방법에 관해 공유자들 사이에 지분 과반수의 합의가 없는 이상 1인이 특정 부분을 배타적으로 점유·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A씨의 배우자는 해당 토지 중 54분의 2 지분만 취득했을 뿐이며, B씨 등이 이 사건 토지에 관해 A씨와 그의 배우자 등을 상대로 건물 철거 및 토지 인도를 청구한 민사소송 및 그 강제집행 절차를 통해 이들이 건물 신축에 동의한 적이 없다는 사정을 잘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그럼에도 A씨는 자신에게 불리한 민사소송 판결 확정 이후 새로운 건물을 지었고, 이로 인해 B씨 등은 해당 건물의 철거 전까지 토지를 이용할 수 없게 됐다"며 "이러한 점을 종합해 A씨의 건물 신축은 토지의 효용을 해하는 행위에 해당하고 재물손괴의 고의도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2심 A씨의 행위가 형법상 손괴로 보기 어려워 민사적인 책임만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건물을 신축한 행위로 토지 전체의 효용이 침해됐다고 평가할 수 없다"며 "토지의 매매에 법률상 장애가 생긴 것도 아니고, 토지 전체를 이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도 아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해당 토지의 지목은 답(물을 이용해 식물을 재배하는 토지)이므로, 효용을 해하는 행위를 해석하면 토지에 유형력을 행사해 벼 등의 재배를 어렵게 하는 행위"라며 "건물 신축으로 이 사건 토지 전체에 그러한 상황이 초래됐다고 볼 수도 없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공유토지에 관해 소수지분권자가 특정 부분을 배타적으로 점유·사용했다고 해서 일반적으로 이를 형법상 손괴로 보지 않는다"며 "A씨는 본인이 한 행위에 대해 민사적인 책임을 지면 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도 2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재판부는 "재물손괴죄는 다른 사람의 재물을 손괴 또는 은닉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그 효용을 해한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라며 "소유자가 물건의 효용을 누리지 못하게 됐더라도 효용 자체가 침해된 것이 아니므로 재물손괴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끝으로 재판부는 "A씨의 행위는 이미 대지화 된 토지에 건물을 새로 지어 부지로 사용·수익함으로써 그 소유자로 하여금 효용을 누리지 못하게 한 것일 뿐 토지의 효용을 해하지 않았으므로 재물손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결론은 정당하다"며 원심을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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