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러스톤 반대에 태광산업, 흥국생명 유증 참여 포기
에스엠, SK 등도 줄줄이 백기...주가도 '들썩'
[서울=뉴스핌] 김준희 기자 = 올해 들어 국내 행동주의 펀드들이 상장기업들과의 줄다리기에서 잇단 승리를 올리며 자본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의 요구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움직임으로 평가되면서 이들의 타깃이 된 상장사들의 주가에도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다.
◆ 트러스톤, BYC 이어 태광산업 조준..."흥국생명 유증 참여 반대"
1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트러스톤자산운용은 전날 장 마감 이후 공시를 통해 태광산업 주식의 투자목적을 '일반 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변경했다. 트러스톤은 태광산업의 2대주주(지분율 5.8%)다.
트러스톤은 태광산업에 ▲현금성자산 활용 방안 제시 요청 ▲주식 유동성 확대 ▲합리적인 배당 정책 ▲정기적인 IR 계획 수립 등을 요구해왔다. 트러스톤 측은 "태광산업이 주주 이익을 최우선으로 독립적 의사결정을 하는지 의구심이 있다"며 "향후 보다 적극적으로 주주활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서 트러스톤은 태광산업의 '흥국생명 유상증자 참여 안건'에 대해 제동을 걸어 무산시킨 바 있다. 흥국생명이 환매조건부채권(RP) 상환을 위해 추진하는 4000억원 유상증자에 태광산업이 참여하려고 하자 "소액주주의 권리를 희생하는 결정"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트러스톤은 태광산업과 흥국생명 간에 지분 및 사업 등의 연관성이 전혀 없다며, 증자에 참여한다면 태광산업의 최대주주인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사익을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전 회장은 흥국생명의 지분 56.3%를 보유하고 있다.
이에 상법상 상장사가 주요 주주(지분 10% 이상 보유) 및 특수관계인에게 자금 지원적 성격의 증권 매입을 금지하는 상법 제542조의9 제1항에 따라 금지되는 신용공여행위라고 주장했다.
태광산업은 흥국생명 유상증자에서 빠지기로 했다. 흥국생명은 전날 오후 공시를 통해 당초 목표인 4000억원이 아닌 2800억원을 제3자 배정 유상증자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태광산업 측은 "금융시장 안정이라는 공익적 목적에 기여하고 현재 보유 중인 가용자금을 활용한 안정적인 투자수익 확보를 위해 전환우선주 인수를 검토했으나, 상장사로서 기존사업 혁신 및 신사업 개척에 집중하기 위해 이를 인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트러스톤은 BYC에 대해서도 지난해 12월 지분투자 목적을 경영참여로 변경 공시하고 적극적인 주주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는 BYC 지분 8.96%를 보유한 2대 주주다.
트러스톤은 BYC가 2016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대주주 일가 및 특수관계법인 등에 일감 몰아주기를 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후 BYC는 지배구조 개선 및 주주가치 제고 등을 요구하며 이사회 의사록을 열람하고, 회계장부 열람 등을 요청한 상태다.
◆ 주주행동주의 요구에 기업들 잇단 수용...'주주환원' 기대에 주가도↑
최근 KT&G도 행동주의펀드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 안다자산운용 등에 주주가치 제고 압박을 받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의 주요 요구사항은 지배구조 개선 및 한국인삼공사 인적분할, 잉여현금 주주 환원, 자사주 소각 등이다. 특히 안다운용이 보낸 주주서한에는 KT&G의 인삼사업부문의 인적분할 계획이 구체적으로 명시됐다.
KT&G는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3일 공시를 통해 올해 주당배당금을 200원 이상 증액하는 것을 고려중이라고 밝혔다. 또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3500억원 규모로 자사주를 취득을 결의했다. 중장기 주주환원정책 이행을 위한 목적이라고 밝혔지만, 최근 목소리를 높인 행동주의 펀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거라는 평가가 나온다.
상장사들이 '주주가치 제고'를 내세우는 행동주의 펀드에 백기를 들면서 이들의 손이 닿은 기업의 주가도 상승세를 보였다. 태광산업은 흥국생명의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하며 이날 전 거래일 대비 2.61% 오른 74만8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KT&G는 FCP가 처음 주주제안을 한 것이 알려진 지난 10월25일부터 이날까지 12% 가량 상승했다.
에스엠 역시 지분 1.1%를 보유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의 주주 서한은 받으며 연초 강세를 보였다. 얼라인파트너스가 처음 주주제안을 한 것이 알려진 2월 21일에는 5%대 강세를 보이기도 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에스엠이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의 개인 회사 라이크기획에 '일감 몰아주기'를 하며 주주가치를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이후 에스엠은 라이크기획과의 프로듀싱 계약을 조기 종료하기로 했다. 발표 당일 에스엠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9.5% 상승 마감한 6만200원이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올해는 증시 불안감이 커지며 주주환원책의 중요성이 더 높아진 상황"이라며 "기업도 (행동주의 펀드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됐고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적인 활동에 주주들의 공감대가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8월 SK 역시 2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소각 계획을 발표했다. 앞서 라이프자산운용은 SK그룹의 지주사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SK에 자사주 소각 및 리스크관리위원회 신설을 요구하는 주주서한을 보낸 바 있다.
zuni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