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 노사정 합의했음에도 1년간 개선 없어
관리 감독 의무 있는 국토교통부 부실 관리 지적
대체배송도 정부-택배노조 갈등
[서울=뉴스핌] 강명연 기자 = 올해부터 택배기사들을 물품 분류작업으로부터 배제하는 방안이 전면 도입됐지만 실제 현장에선 30%만 지켜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70%를 넘는 택배기사들이 물퓸 분류작업을 하지 않기로 한 사회적 합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분류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분류인력을 투입하기 어려운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비용을 지급하는 방식을 도입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지만 결국 방침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다는 의미다. 더욱이 사회적 합의 직후 올초 국토부의 현장점검에서도 이와 비슷한 업무 배치율이 나왔는데 10개월 동안 전혀 시정되지 않는 것이다.
최근 안전운임제를 둘러싸고 정부여당과 화물연대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택배노조의 과로 방지를 위해 도입된 이 제도가 지켜지지 않는데다 노사정 합의에 따라 관리·감독 의무가 있는 국토교통부에 대해서도 관리 부실 책임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1일 오전 서울 광진구 동서울우편물류센터에서 관계자들이 물품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2022.09.01 pangbin@newspim.com |
◆ 택배기사 분류작업 배제 10명 중 3명…1월 초와 동일
13일 택배노조가 모 국회의원실을 통해 받은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1월부터 지난 8월까지 CJ대한통운 등 국내 4개 택배사의 터미널 97곳 가운데 택배기사가 분류작업에서 배제된 곳은 28곳으로 집계됐다.
이는 조사 대상 가운데 29%에 해당된다. 앞서 택배기사를 분류작업에서 배제하기로 한 사회적 합의를 제대로 지키고 있는 터미널이 10곳 중 3곳에도 못미친다는 의미다.
분류인력이 투입됐지만 택배기사가 일부 분류작업에 참여하는 곳은 54곳(56%)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절반 이상의 터미널에서 택배기사들이 여전히 분류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구인난에 처해 있거나 터미널 규모가 협소해 분류인력을 투입하지 않고 택배기사에게 비용을 지급하며 업무를 맡긴 곳은 15곳으로 15% 수준이었다.
이러한 통계치는 올해 1월 초 국토부의 1차 현장점검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 국토부는 1월 첫주부터 불시 현장점검을 수행하고 둘째주에는 민·관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심층조사를 진행했다.
이 결과 점검지 25곳 가운데 택배기사가 완전히 분류작업에서 배제된 곳은 7곳으로 28%였다. 분류인력이 투입됐지만 택배기사가 일부 분류작업에 참여하는 곳은 12곳(48%)이었다. 구인난 등으로 택배기사에게 별도 분류비용만을 지급하는 곳도 6곳(24%)에 달했다.
앞서 지난 2월 CJ대한통운 노조는 이같은 택배기사의 물품 분류작업 참여를 지적해 사회적 합의에 대한 즉각 이행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후 1년이 다돼 가는 지금까지도 현장에서는 작년 6월의 합의가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 "시간 필요하다더니 사회적 합의 미이행"…대체배송도 '갈등'
'택배기사 과로방지 대책 합의'에 따르면 기사의 택배 분류작업 제외는 원칙적으로 분류인력을 따로 투입해 하도록 했다. 택배기사의 과로를 막기 위해 시작된 논의인 만큼 근무시간을 줄이는 게 핵심 목표였기 때문이다. 비용을 지급하는 경우는 특별한 경우로 제한하도록 했지만 여전히 절반 이상의 택배기사들이 분류작업을 수행하고 있어 사회적 합의가 유명무실해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부의 관리·감독도 지적된다. 지난해 6월 사회적 합의는 국토부와 택배사, 택배노조가 함께 합의한 것으로 '노·사·정' 합의로 이뤄졌다. 이처럼 사회적 합의의 한 축이 국토부인데도 정권이 교체 이후 국토부가 관리·감독을 방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1월 논란이 터졌을 때 국토부는 택배기사를 분류작업으로부터 완전히 배제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란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지금도 이 입장만 그대로 유지한 채 사회적 합의 이행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대체배송을 놓고 정부와 택배노조가 갈등을 키우고 있다. 국토부는 새 정부의 국정과제인 대체배송을 생활물류서비스법(생물법)에 명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제1차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 기본계획' 초안에 이런 내용을 반영하고 국민의힘 강대식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을 통해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해당 내용이 반영된 기본계획을 확정하는 과정에서도 논의가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생활물류정책협의회를 두 차례 서면회의로 대체해 요식행위에 그치고 있다는 취지다. 택배노조는 생물법 명시를 계기로 대체배송이 확대되면 택배 파업을 무력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택배노조 관계자는 "분류작업을 비용으로 지급하는 경우를 확대해석하는 등 사회적 합의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데다 대체배송을 생물법에 명시하는 방안은 대화와 토론이 불가능한 형식의 회의로 대체해 첨예한 쟁점을 논의하기 어렵다"며 "대체배송 확대 시도, 비민주적 정책협의회 운영 등 반민주, 반노동적 행태를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택배는 없으면 불편할 뿐이지 국민 생명, 신체 안전 등과는 거리가 멀다"며 "필수공익사업장을 지정하기 위해서는 요건이 까다로운 데다 우체국에 해당되는 소포배달우편업이 이미 포함돼 있는데 민간을 추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최근 안전운임제를 놓고 화물연대의 전면 운송거부가 일어났는데 택배분야의 사회적 합의 미이행 등도 새로운 문제를 키울 수 있다"며 "국토부는 택배노조와 택배사의 사회적 합의 때 노사정 합의의 주체로 참여한 만큼 중재자의 입장에서 관리·감독에 보다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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