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전·탈세·도박투자 빌미로 계좌 대여 요구
금융실명법 위반...대법 '유죄' 취지 판결
대검, 국민 피해 예방 위해 '방통위·금융위'에 제도 개선 요청
[서울=뉴스핌] 김신영 기자 = "우리가 쓰는 계좌가 세금이 많이 나온다. 2주에서 1개월 정도 계좌를 빌려주면 대가로 2880만원을 주겠다."
최근 보이스피싱 조직이 환전과 탈세를 빌미로 계좌를 넘겨받아 보이스피싱 범죄에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검찰은 국민들이 허위광고에 속아 계좌를 빌려주는 일이 없도록 방송통신위원회 등에 제도개선을 요청했다.
18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달 대법원은 "타인의 탈법적인 일에 이용될 수 있도록 계좌를 제공하기만 해도 금융실명법위반방조가 성립한다"는 취지의 유죄 판결을 내놨다. 법원은 ▲무등록 환전 ▲세금과 관련된 사유 ▲도박 등 탈법행위를 목적으로 계좌를 제공한 경우 계좌 명의인들의 금융실명법위반방조를 인정하고 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의 모습. 2022.05.03 pangbin@newspim.com |
최근 계좌 명의인들이 보이스피싱 범행 사실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더라도 무등록 환전 등을 목적으로 제공한 계좌들이 보이스피싱에 악용돼 많은 피해자들이 발생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금융실명법에 따라 타인의 명의로 금융거래를 하는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 처벌을 받게 된다. 탈법행위를 목적으로 타인 명의 금융거래 행위를 도와준 것이기 때문에 금융실명법 위반 방조죄가 성립한다.
대검은 "모르는 사람이 보이스피싱에 사용하려는 것을 숨기고 무등록 환전, 세금과 관련된 사유, 인터넷 도박 등에 사용한다고 해서 금융계좌를 빌려주면 계좌 명의인이 보이스피싱 범죄임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더라도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한 보이스피싱 조직은 "마카오에 본사가 있고 한국에 체인점이 있는데 한국 고객을 상대로 환전 업무를 한다"며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일하면 월 400~600만원을 지급하겠다. 고객이 당신 계좌로 입금한 돈을 인출해 우리가 보내는 환전소 직원에게 건네주면 된다"는 취지로 계좌 제공을 제안했다.
이에 A씨는 이들에게 계좌번호를 알려주고,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본인 명의 계좌로 송금한 940만원을 현금 인출한 후 수수료를 제외한 925만원을 현금수거책에게 전달했다.
이 외에도 해외에서 물품을 구매하는데 관세를 피해야 한다거나, 인터넷 도박 배팅을 위해 계좌를 빌려주면 일주일에 7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제안 사례도 있었다.
대검은 보이스피싱 조직이 유튜브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글로벌 플랫폼에 대부업체를 사칭한 허위광고로 피해자들에게 접근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방송통신위원회에 광고 심사 강화와 시정명령을 요청했다.
아울러 보이스피싱 조직이 ATM 무통장 송금을 이용해 피해금을 총책에게 전달하는 것을 지연하기 위해, 주민등록번호 입력 등을 통해 송금 요건을 강화하도록 금융위원회에 제도 개선을 제안했다.
대검은 "앞으로도 검찰은 선량한 우리 국민이 보이스피싱으로부터 마음 놓고 안전하게 금융거래를 수 있도록, 보이스피싱 범죄에 엄정대처할 뿐만 아니라 제도개선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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