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인권위 상대 권고결정 취소 청구소송서 패소
"비서 업무 특성상 거부의사·불쾌감 표할 수 없어"
'사랑해요' 메시지는 이성 간 감정이 아닌 존경 표시
[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부하직원 성희롱 사실을 인정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이 타당하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이정희 부장판사)는 15일 박 전 시장의 부인 강난희씨가 인권위를 상대로 낸 권고결정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원고 측에서는 피해자가 망인과 촬영한 사진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리는 등 망인과 친밀감을 표시했으며 4년 동안 피해를 호소하지 않은 사정 등을 들어 성희롱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피해자는 비서직을 수행하면서 직장 내 망인과의 관계를 고려해 피해사실을 어쩔 수 없이 숨길 수밖에 없던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거부의사나 불쾌감을 표하지 않은 것은 시장의 심기와 컨디션을 보살펴야 하는 비서 업무의 특성상 망인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이 사건 각 행위로 인해 초래된 불편함을 자연스레 모면하고자 한 노력으로 보인다"고 부연했다.
또한 "피해자가 망인에게 '사랑해요' 등의 메시지를 보낸 사실은 인정되나 '사랑해요'라는 단어는 이성 사이의 감정을 나타낼 의도로 표현한 것이라기 보다는 피해자가 속한 부서에서 동료들 간 존경의 표시로 관용적으로 사용됐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서울=뉴스핌] 이한결 기자 = 1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 차려진 고(故)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서울시는 박 시장을 추모할 수 있는 분향소를 11일부터 월요일인 13일까지 서울광장에 설치·운영한다고 밝혔다. 2020.07.11 alwaysame@newspim.com |
재판부는 "망인의 행위는 주로 업무공간이나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이뤄졌고 여성을 성적대상화하는 내용이 주된 부분을 차지했다"며 "이 사건 각 행위는 성적인 언동에 해당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성적인 굴욕감이나 불쾌감을 주는 정도에 이르러 성희롱에 이른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결국 이 사건 권고결정에는 절차적 위법이 없고 권고 내용에 비춰 볼 때도 재량권의 일탈·남용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판결 직후 취재진을 만난 원고 측 대리인은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사실 지금 많이 당황스럽고 깊은 유감을 표하고 싶다"는 심정을 밝혔다. 그러면서 "판결문을 받아서 분석해본 뒤 유족과 항소여부 등을 상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박 전 시장은 지난 2020년 비서였던 A씨로부터 성희롱 혐의로 고소당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숨진 채 발견됐다. 결국 경찰은 수사를 종결했지만 인권위는 박 전 시장이 피해자에게 한 언동은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인정했다.
인권위는 구체적으로 ▲피해자의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 등 증거자료 ▲참고인과 피해자 진술의 구체성·일관성 등에 근거할 때 박 전 시장이 텔레그램을 통해 피해자에게 부적절한 메시지와 사진, 이모티콘 등을 보내고 집무실에서 네일아트한 손톱을 만졌다는 피해자 주장은 사실로 인정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서울시에 피해자에 대한 적극적 보호방안 및 2차 피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성역할 고정관념에 기반한 비서실 업무 관행 개선, 성희롱·성폭력 예방 및 구제 제도를 개선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유족 측은 "인권위는 이미 망인이 되어 유리한 진술을 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피조사자를 파렴치한 성범죄자로 낙인찍고 권리 구제할 어떤 방법조차도 없게 만들었다"며 "고인의 인격권과 명예권을 심각하고 중대 명백하게 침해했다"며 권고결정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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