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전 세계서 가장 먼저 대응나서"
"정부 외교전 격려하고 도와줘야"
"KAMA, 향후 EU 등 전 세계 공조 강화"
[서울=뉴스핌] 조재완 기자 = "집안 싸움으로 우리끼리 다툴 때가 아니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대응 중인 한국 정부가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우리도 힘을 모아야 한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 대표단이 현지에 급파된 가운데,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이 과도한 대정부 비판론을 우려하고 나섰다.
자동차 제조업계와 정부 간 '집안 싸움' 할 문제가 아닐 뿐더러, 섣불리 비관론으로 치닫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 회장은 "민간보다 앞장 선 정부가 잘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때"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지난달 31일 진행됐다.
[고양=뉴스핌] 정일구 기자 =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 2022.08.31 mironj19@newspim.com |
정 회장은 인터뷰 요청을 받은 당시 고심했다고 한다. 앞서 그가 응했던 인터뷰가 종종 왜곡 보도돼 정·재계 갈등을 조장하는 것처럼 비쳤다는 자괴감 탓이다. 정 회장은 "업계가 마치 정부가 불만을 품고 있고, 정부가 늑장대응에 나선 모양새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다"며 "더 이상 인플레이션 감축법 관련해선 인터뷰에 응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 17일 미국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전격 시행되자 급히 대책 마련에 나섰다. 내년 1월부터 한국산 전기차는 미국의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 시행에 따라 북미에서 일정 비율 이상 생산되지 않은 전기차는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없다. 한국 전기차는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신차 1대당 최대 7500달러(약 1010만원) 밀리게 돼 수출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일각에선 정부의 늑장대응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현재 미국에는 한국 전기차 생산라인이 없다. 제조사들이 당장 착공 준비에 들어가더라도 생산라인이 가동되려면 2~3년 가량 걸린다. 미국 내 정치 상황도 녹록지 않다. 이번 법은 11월 중간선거라는 미국의 정치 일정과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실제 조 바이든 행정부가 이번 법 시행으로 지지율 효과를 보고 있어 우리 정부가 당장 미 상·하원을 모두 설득해 법을 개정하긴 쉽지 않다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올 연말께나 양국 간 유의미한 진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정부는 한국이 전 세계서 가장 빨리 대응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일단 한국 자동차 제조업체 피해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전방위 협상에 나선 상황. 정 회장이 다시 인터뷰에 나선 것도 이 같은 사실관계를 바로잡기 위해서다.
정 회장은 "인플레이션법으로 피해를 입게 된 국가는 한국 뿐만이 아니다. 인플레이션법은 한국 업체만 배제하기 위해서 만든 법이 아니라, 자국 보호주의 발상에서 나온 법"이라며 "이 법에 대응하기 위해 전 세계서 가장 먼저 대응하기 위해 나선 정부가 우리나라"라고 강조했다.
그는 "유럽연합(EU)나 일본, 중국 등도 인플레이션법 앞에서 속수무책이긴 매한가지"라며 "실제 이들 국가 자동차협회와 대화를 나눠봐도 우리와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이들은 손도 못 쓰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소모적인 책임 공방을 중단하고 이른바 'IRA 사태에 대해 범국가적으로 공동 대응하자고 당부했다. 정 회장은 "오히려 정부가 민간보다 앞장서서 이번 사태에 대응하고 있어 고마운 마음이 크다"며 "정부가 충분히 잘 대응하고 있고, 업계와의 정보 공유도 원활한 편"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고양=뉴스핌] 정일구 기자 =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 2022.08.31 mironj19@newspim.com |
우리 정부도 미국 등 수입 전기차에 대해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서도 전기차 보조금 체제를 개편하자는 목소리가 커지면서다.
현재 정부는 찻값 8500만원 미만인 전기 승용차에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5500만원 미만이면 보조금 100%, 5500~8500만원 사이면 50%를 지급한다. 수입차도 예외가 아니다.
협회 조사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기 승용차에 지급한 보조금 822억5000만원 가운데 절반 이상인 447억7000만원이 미국산 차에 돌아갔다. 이중 440억 이상이 테슬라 보조금으로 사용됐다. 한국산 전기차는 미국에서 혜택을 받지 못하는 데 비해, 미국산 차엔 정부 보조금이 과도하게 집행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 회장은 "미국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면 완성차 업체들 뿐만아니라 부품 업체들도 어려워진다"며 "이들이 미국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 보완을 해줘야 하는데, 그 일환으로 국내 전기차 보조금을 국산차에 주자"고 했다.
정 회장은 이를 두고 "정당방위"라고 했다. 그는 "우리도 같은 정책으로 대응하는 것은 '보복론'이나 '맞대응론'으로 볼 게 아니다. 정당방위로 봐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협회는 향후 EU를 비롯해 전 세계 자동차 협회와의 공조도 강화해나갈 계획이다. 그는 "EU 측이 하계휴가에 들어간 탓에 긴밀한 대화를 아직 못 나눠봤다"며 "지금부터 미국 외 국가들이 함께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모두 강구보겠다"고 했다.
chojw@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