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임신 여전…연간 낙태 규모 3만건 추산
낙태 법제도 부재, 불법도 합법도 아닌 상태
낙태죄 공백에 의료현장선 여성·의사 무방비
[세종=뉴스핌] 이경화 기자 = 정부가 국내 인공임신중절(낙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2020년 한 해 동안 약 3만건의 낙태가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무엇보다 임신 경험이 있는 여성 5명 중 1명은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개인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주된 원인으로 분석된다.
이와 관련 앞서 2019년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사실상 낙태죄의 효력이 상실됐지만 임신중절 범위·허용 방식 등 후속 입법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3년째 입법 공백 상태다. 보건복지부는 낙태에 대해 "불법도 합법도 아닌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30일 복지부로부터 위탁 받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2021년 만 15~49세 여성 8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7.1%(606명)가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낙태죄 폐지 1년 4.10 공동행동 기획단이 10일 오후 서울 보신각에서 "모두에게 안전한 임신중지가 보잘될 때까지" 집회를 열고 있다. 4.10 공동행동은 온전한 임신중지 권리 보장을 위해 유산유도제 즉각 승인, 건강보험 보장, 권리 보장을 위한 법·제도 구축을 촉구했다. 2022.04.10 leehs@newspim.com |
구체적으로 인공임신중절을 경험한 여성의 17.2%는 수술 결심 당시 임신 경험이 있었다고 응답했다. 성 경험이 있는 여성 중에서는 8.6%가 인공임신중절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인공임신중절을 받은 여성의 평균 연령은 만 28.5세였다.
인공임신중절 당시의 혼인 형태별로는 미혼이 50.8%로 가장 많았고 법률혼 39.9%, 사실혼·동거 7.9%, 별거·이혼·사별 1.3%가 뒤를 이었다. 인공임신중절 시기는 약물 사용이 평균 6.11주, 수술의 경우 평균 6.74주로 나타났다.
또 대다수 여성은 낙태죄를 규정하고 있는 형법에 대한 2019년도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형법의 낙태죄 조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판결·개정 요구에 대해 조사 완료 여성 8500명 중 10.1%만이 '내용을 잘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50.0%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32.5%는 '들어본 적은 있지만 잘 알지 못 한다', 7.4%는 '전혀 알지 못 한다' 순으로 답했다. 낙태죄 관련 형법 개정안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는 것에 대해 '알고 있다'는 응답 역시 38.3%에 그쳤다.
[자료=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22.06.30 kh99@newspim.com |
모자보건법 제14조는 질환이 있거나 강간에 따른 임신 등에 한해 의사가 임공임신중절을 할 수 있다는 규정이다. 2019년 '낙태죄는 헌법정신에 위배된 법률'이라는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2021년부터는 수술 허용 범위(모자보건법)만 남게 되고 처벌 규정(형법)은 사라졌다.
복지부 관계자는 "현 상황은 낙태죄를 어떻게 규정지을 것인지에 대한 입법 공백 상태"라며 "지금은 모자보건법 허용 범위를 벗어나 수술이 이뤄져도 처벌할 근거가 없다. 합법도 불법도 아닌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연구원은 설문에 참여한 만 15~49세 여성 8500명을 국내 가임기 여성 전체 규모로 환산했을 때 연간 인공임신중절 수술 규모를 연간 3만3479건(2020년)으로 추정했다. 15~49세 여성 기준 1000명당 3명이 낙태 수술을 받고 있는 셈이다. 기존 조사 기준인 만 15~44세 여성 1만명을 적용해도 연간 수술 규모는 3만2063건으로 추정된다.
[자료=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22.06.30 kh99@newspim.com |
이 같은 설문조사를 처음 실시한 2005년에는 34만2433건이었고 2010년에는 16만8738건이었다. 2016년 6만9609건으로 줄다가 가장 최근인 2019년에는 2만6985건으로 추정됐다. 여성의 피임률이 늘고 인공임신중절 경험자의 평균 인공임신중절 횟수가 줄어든 데다 만 15~44세 여성 인구가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을 인공임신중절 수술이 줄어든 원인으로 분석했다.
보사연 측은 "인공임신중절 규모가 줄고 있지만 위기임신 상황에 놓이는 가임기 여성이 여전히 많다"며 "그럼에도 관련 법제도·가이드라인이 부재해 의료현장의 여성, 의사가 안전하지 않은 상황에서 수술을 하게 되고 그 과정상 여성은 여러 어려운 환경에 놓여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러한 위기상황을 예방하거나 위기상황에 있는 여성을 지원하고 안전한 인공임신중절이 가능하도록 대체입법이 신속히 이뤄져야한다"며 "실효성 있는 성교육·피임교육, 인공임신중절 전후의 체계적 상담제도, 사회경제적인 어려움에 대한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kh9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