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전 대통령 사저 집회로 촉발된 집시법 개정안
사회적 약자 목소리 보다 정치적 논리로 계산돼
[편집자]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 집회에 이은 윤석열 대통령 자택 앞 '맞불집회'로 집회 문화가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상호 비방과 공격, 맞불 형태의 집회 등은 표현의 자유를 무색케 할 만큼 정치적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20년 수요집회에서 본격화된 맞불집회는 이후 조국 사태와 검수완박법, 차별금지법 등 주요 법안 제정 과정 등에서 진보와 보수간 이념대결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뉴스핌은 최근 집회문화 변질 배경과 원인을 짚어보고 집회자유 보장 및 향후 바람직한 집시법 개정 방향 등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고자 3회에 걸친 기획물을 보도한다.
[서울=뉴스핌] 강주희 기자 = 지난 4월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된 후 상반된 목소리를 내는 맞불집회가 늘고 있다. 한 장소 또는 다른 장소에서 각기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진 단체들이 충돌하는 일이 잇따르면서 집회가 표현의 자유가 아닌 공격과 보복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귀향한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과 윤석열 대통령 자택이 있는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는 최근 맞불집회 장소로 전락했다. 일부 보수단체가 매주 문 전 대통령 사저 인근에서 확성기를 동원한 집회를 열자 진보성향 유튜브 채널 서울의 소리는 지난 14일 윤 대통령 자택 앞 집회로 맞불을 놓았다.
맞불집회를 주도한 백은종 서울의소리 대표는 "양산 사저 앞 집회가 중단될 때까지 24시간 집회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같은 날 서울의소리 측 집회 맞은편에서는 보수 성향 단체 신자유연대 회원들이 맞불집회를 열고 서울의소리를 비판했다. 경찰은 양측의 충돌을 우려해 10여m 구간을 집회 금지 구역으로 두고 가운데 펜스를 설치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제11조 3항은 대통령 관저와 국회의장·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 공관 등의 100m 이내에서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문 전 대통령의 경남 양산 사저와 윤 대통령의 용산 집무실, 서초동 자택은 이 조항에 해당되지 않는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14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 자택 앞인 서울 서초구 아크로비스타 앞에서 진보 성향 유튜브 채널 서울의소리가 문재인 전 대통령 양산 사저 일대 악성집회 대응 맞불집회를 열고 있다. 2022.06.14 pangbin@newspim.com |
전·현직 대통령 사저가 집회로 몸살을 앓자 여야는 대통령 집무실과 전직 대통령 사저를 집회 금지 구역으로 지정하는 집시법 개정안을 잇달아 발의했다. 최근 한 달 사이 국회에 발의된 집시법 개정안은 총 6건이다.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은 100m 이내 집회 금지 구역에 대통령 집무실을 명시하는 법안을 발의했고,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집시법 11조에 전직 대통령 사저를 포함시키는 법안을 냈다.
◆ 집회, 규제 아닌 '관리의 대상'으로 다뤄져야
맞불집회 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2019년 조국 법무부 장관 사태, 2020년 정의기억연대 수요집회 등 굵직한 사회 이슈가 터질 때마다 서로 다른 정치적 이념을 내세우는 단체들이 동시에 집회를 열고 맞불을 놓았다.
올해 상반기에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둘러싼 맞불집회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이끄는 자유통일당과 이재명 민주당 의원 지지자들이 모인 시민단체 밭갈이운동본부는 지난 4월 서울 여의도에서 검수완박 찬반 집회를 열었다. 양측의 집회는 횡단보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진행됐다.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단체의 집회가 동시에 열리면서 물리적 충돌이 빚어졌다. 집회 참가자들은 상대 집회 장소를 찾아와 시비를 걸거나 마이크를 든 채 욕설을 하기도 했다. 당시 집회에 참여한 한 유튜버는 자신에게 모욕적 발언을 했다며 발같이운동본부 대표와 활동가를 모욕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경찰은 최근 맞불집회에 따른 주민들의 피해가 상당할 것으로 보고 고심책 마련에 분주하다. 지난 14일 열린 경찰청 집회·시위자문위원회 정례 회의에서 위원들은 최근 집회가 진영 대결로 변질되는 것을 우려했다. 또 집회에 사용되는 스피커·확성기 등으로 주민들의 피해가 심각한 만큼 소음 기준을 보다 엄격하게 개정하는 입법이 필요하다고 봤다.
김창룡 경찰청장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다양한 시민사회의 요구를 담아 법률을 개정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를 하려고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서울=뉴스핌] 이한결 기자 = 12일 저녁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일대에서 보수성향 단체들이 조국 법무부 장관 및 문재인 대통령 규탄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2019.10.12 alwaysame@newspim.com |
전문가들은 집시법 개정 움직임에 대해 집회·시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뉴스핌과의 통화에서 "현재로서는 개정을 어떻게든 해야하는데 문제는 지금 나와있는 개정안들이 사심이 너무 가득해 타당해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한 교수는 "집회·시위의 자유는 헌법상 기본권이고, 정치사회적 약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권리"라며 "그걸 제한하는 것이 아닌 촉진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뤄져야한다. 외국의 집시법은 이미 규제가 아닌 관리의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른 로스쿨 교수도 "그동안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신장돼 왔는데 이번 집시법 개정안은 집회·시위 장소를 제한하는 내용이 있어 그동안의 흐름에 역행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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