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9개월 만의 번복 발표에 북한 반발 가능성
북, 사살 사흘 뒤 시신 소각 부인 통지문 보내와
윤석열 정부와 대립각 세울 소재로 활용할 수도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정부가 2020년 9월 서해 북방한계선 인근 북측 수역에서 발생한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 16일 "자진 월북 증거가 없다"고 발표함으로써 북한의 반응이 주목된다. 1년 9개월 만에 한국 정부의 입장이 뒤바뀐터라 이에 대해 북한이 어떤식으로든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다.
북한이 가장 민감하게 볼 대목은 시신 소각이다.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한 사실을 파악한 국방부는 사건 발생 이틀 뒤인 2020년 9월 24일 "북한이 우리 국민에게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북한은 하루만에 "불법 침입자를 사살했고 부유물은 소각했다"고 반박하는 대남통지문을 보내왔다.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10일 평양 노동당 본부청사에서 열린 당 중앙위원회 8기 5차 전원회의 확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남북관계를 대남에서 대적으로 전환하는 강경 입장을 피력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2022.06.17 yjlee@newspim.com |
북측 수역을 침범한 인원을 북한군 단속정이 사살했을 뿐, 시신에 불을 지르거나 하지는 않았다고 해명하는 취지다. 시산소각이라는 '만행'으로 비춰지거나 여론이 확산될 경우 반인도적이란 비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북한 체제에 쏟아질 것을 우려한 즉각적인 대응으로 보인다.
이런 정황을 고려해 볼 때 북한은 이번 정부의 발표에 반발하며 자신들의 입장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선전전을 펼칠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 때 '자진월북'임을 발표했고, 시신 소각을 부인하는 북측 입장을 수용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태도를 돌변한 건 문제라고 트집잡고 나설 공산이 크다.
특히 북한은 이번 발표를 보수성향인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 힘의 '반북여론 조성책'이라며 대남 대립각을 바짝 세울 수도 있다. 마침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8∼10일 열린 노동당 8기 5차 전원회의 확대회의 결론에서 "대적(對敵)투쟁과 대외사업 부문에서 견지하여야 할 원칙들과 전략 전술적 방향"을 밝힌 것으로 북한 관영 매체들은 전하고 있다. 김정은의 이런 방침에 따라 새로 대남 사업을 담당하게 된 리선권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기류로 몰고갈 호재로 이번 발표를 활용하려 할 것이란 분석이 가능하다.
북한으로서는 고민스러운 대목도 있다. 경위야 어떻든 간에 북측 수역으로 표류해간 한국 국민을 구조 조치 등을 취하지 않은 채 총격을 가해 숨지게 했다는 건 비난받을 소지가 크다. 유족들이 문재인 대통령과 당시 정부 관계자는 물론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북한 군부와 김정은 위원장을 상대로 책임을 따져묻는 탄원과 법적 절차를 진행하게 된다면 불똥이 최고수뇌부로 튈 수도 있다.
이런 부담을 고려해 북한이 이번 사안에 아예 침묵하거나 상당기간 관망하는 입장으로 나올 가능성도 제기된다. 조선중앙통신이나 노동신문 등 관영매체가 아니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대남 선전매체 쪽으로 격을 낮춰 비공식적으로 대응하는 수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서는 문재인 정부에서 윤석열 정부로 권력이 교체됐다는 점을 실감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해수부 공무원 피살 사건뿐 아니라 2019년 11월 발생한 탈북귀순 북한 주민 3명의 강제북송 사건 등 문재인 정부 당시 미심쩍은 남북관련 사안을 재조사 하거나 바로잡으려는 시도가 이어질 것이란 점에서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yj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