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 지급 사실상 불가능…계약 해지 우려
연이은 악재에도…"일감 충분, 아직은 괜찮아"
[서울=뉴스핌] 박준형 기자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00일이 지나면서 조선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로 러시아 금융 거래가 제한되면서 수주 물량에 대한 대금 미지급 피해가 가시화됐기 때문이다. 원재료 가격 상승에 대금 미지급에 따른 계약 해지 우려까지 겹치면서 조선업계는 모처럼 맞은 수주 호황에도 웃지 못하는 상황이다.
2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 3사가 러시아 선사로부터 수주한 계약 규모는 80억5000만 달러(약 10조2000억원)에 달한다. 삼성중공업이 50억 달러로 가장 많고, 대우조선해양은 25억 달러, 현대중공업그룹은 5억5000만 달러다.
러시아는 국내 조선 3사의 주요 고객 중 하나다. 원유와 천연가스 등 자원 매장량이 상당한 데다, 최근에는 북극해 항로 개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얼음을 깨고 LNG(액화천연가스)를 운송하기 위한 LNG 쇄빙선을 대량 발주하면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국내 조선 3사의 수주 비중이 상당하다.
대우조선해양 거제조선소 [사진=대우조선해양] |
문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러시아 경제제재 여파다. 국제사회의 러시아 일부 은행 국제금융결제망(SWIFT) 배제 결정으로 대금 결제 지연 및 중단이 불가피하게 되면서 국내 조선사들이 수주 물량 중도금을 받지 못할 상황에 놓인 것이다.
조선사는 주로 선수금을 받고 선박 건조에 들어간 뒤 건조 단계에 따라 중도금을 나눠 받는 방식으로 계약을 맺는다. 그러나 대러시아 경제제재 장기화로 러시아 선사로부터 중도금을 받을 방법이 사실상 전무해지면서 국내 조선사들은 대금 지급 미이행에 따른 계약 해지 위기에 처했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이미 지난달 18일 러시아 선사가 발주한 LNG 운반선 3척 중 1척에 대해 선주가 선박 건조 대금을 기한 내 지급하지 않음에 따라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나머지 2척에 대해서도 대금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3척의 계약 규모는 약 1조원에 이른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원칙적으로 계약서에 따라 현지 선주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한 상황"이라며 "그쪽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 3사 러시아 수주의 절반 이상을 갖고 있는 삼성중공업도 긴장을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삼성중공업 내부적으로도 러시아 수주 물량은 전체 수주 잔고 260억 달러 중 50억 달러에 달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아직 당장의 피해를 입거나 계약 해지를 통보한 것은 없지만 (대금 지급과 관련해) 우리도 계속 협의 중"이라며 "사태가 장기화하면 문제가 될 수 있어 우려는 된다"고 전했다.
더욱이 조선사들 입장에선 이번 사태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답답할 따름이다. 조선은 대표적 기업 간 거래(B2B) 산업이다. 국제정세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자동차 산업과 달리 대부분 주문 발주 방식으로 계약이 이뤄져 최종 판매까지 2~3년 이상 소요되다 보니 어려움이 더하다.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컨테이너선 [사진=삼성중공업] |
특히 역대급 수주 호황으로 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연이은 악재는 아플 수밖에 없다. 영국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에 따르면 한국의 올해 1∼4월 누계 수주량은 581만CGT(표준화물선 환산 톤수)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부터 국내 수주량이 급증했는데 2020년 823만CGT에서 2021년 1744만CGT로 두 배 넘게 증가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원재료 가격 급등에 대금 미지급에 따른 계약 해지 우려까지 겹치자 조선업계는 모처럼 맞은 수주 호황에 찬물을 끼얹을까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수주 측면에서 호황은 맞는데, 코로나19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원자재 가격 급등 등 예측하지 못한 악재로 이렇게 불똥이 튈 줄 전혀 몰랐다"는 게 업계 관계자 전언이다.
다만 현재 전 세계적으로 LNG선 발주가 크게 늘어나는 등 수주 호황이 이어지는 점은 다행이다. 조선업계에서는 조선 3사가 수주 물량을 충분히 확보한 상황이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위험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 3사는 2025년까지 수주 물량을 채운 것으로 전해졌다. 향후 수주하는 선박은 2026년 이후 물량들이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아직은 조선 3사의 일감이 충분한 상황이다. LNG선 시장이 괜찮아서 향후 3년은 문제가 없다"며 "러시아 상황이 우려는 되지만 완전히 부정적이진 않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금 수주하는 선박은 2026년 이후 물량"이라며 "앞으로 수주하는 물량이 오히려 더 좋은 가격을 받을 수도 있고 반대일 수도 있는 등 알 순 없다"고 했다.
jun89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