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행사 실세가 조합 설립 주도
조합장도 제 손으로 앉혀
[서울=뉴스핌] 윤준보 기자 = 지역주택조합 업무대행사 '실세'가 자신의 지인들을 임원으로 삼아 지역주택조합 설립을 주도하고 조합원의 돈과 조합자금, 회삿돈 등 약 656억원을 지능적으로 가로챈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30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1부(김병철 부장판사)는 지난 27일 업무상 횡령,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상 횡령·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A(54)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핵심 공범인 A씨의 처남 B(52)씨엔 징역 7년 6개월을 선고했다.
A씨에겐 396억5700여만원 추징도 명했다. 조합 임원 등 다른 공범들은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A씨와 B씨는 피해 금액 대부분에 해당하는 580억원 상당을 도박과 개인채무변제 용도로 썼다.
◆ 조합장이 업무대행사 실세 사실혼 처, 고교동창
서울 송파구에 주택신축판매업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 '갑'의 명목상 대표이사를 따로 세우고 실질적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던 A씨는 지난 2014년 5월 서울 송파구 ○○동에 지역주택조합 ○○1조합 추진위원회를 설립하면서 자신의 사실혼 배우자인 C(49)씨를 추진위원장으로 추대했다. 이사 2명과 감사도 자신의 지인을 추대했다. 또 같은 지역에 ○○2조합 추진위원회를 만들고 고등학교 동창인 D(54)씨를 추진위원장으로 추대했다. 이사 2명과 감사엔 C씨의 지인들을 추대했다.
그 해 7월 A씨는 조합주택업무대행업을 목적사업으로 하는 회사 '을'을 신설하고 '갑'의 자금 관리를 하는 처남 B씨를 명목상 대표이사 자리에 앉힌 뒤, 그 해 9월 ○○1조합 추진위원회는 '갑'이, ○○2조합 추진위원회는 '을'이 각각 업무대행을 하는 계약을 맺도록 했다. 이후 ○○1조합은 2015년 3월 초, ○○2조합은 2015년 8월 말 각각 조합설립인가를 받았다.
◆ '원금 보장' 미끼로 개인계좌 입금 유도
자신들의 회사가 조합의 업무를 대행하게 되자 A씨와 B씨는 조합원을 모집하며 특혜를 미끼로 '직영조합원'이 될 것을 제안하고, 이에 응한 이들에게 조합 자금 관리 신탁사가 아닌 B씨 개인계좌로 분담금을 입금할 것을 요구했다. 직영조합원이 되면 분양가를 일반조합원보다 2억원 정도 저렴하게 해주고 조합사업이 실패해도 원금을 보장해주겠다고 했다. 실패율이 높은 지역주택조합 사업에 대한 불안 심리를 이용한 것이다.
이들은 이런 방식으로 약 3년간 141명으로부터 266억원 정도를 B씨 개인계좌로 받아 도박, 채무변제 등 개인적 용도에 썼다. 이들은 범행 시작 전 이미 업무대행사 자금을 횡령해 도박 등에 사용하고 회사자금을 반환해야 하는 상황인데다 채무변제 독촉도 받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2018년 4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1조합에서 70명으로부터 135억7980만원을, 2018년 1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2조합에서 71명으로부터 131억2080만원을 B씨 계좌로 받아 대부분 당일에 도박자금 등으로 사용했다.
◆ 조합장-대행사 유착관계 이용해 조합자금 '꿀꺽'
A씨는 조합 임원과의 유착관계를 이용해 다양한 방법으로 조합 자금을 빼돌렸다.
A씨와 각 조합장들은 이미 면제하기로 약속돼 있던 지주조합원들의 업무대행비를 세대당 2000만원(부가세 별도)씩 부과하기로 하는 약정을 체결하고, 형식상 이사회를 열어 지주조합원들의 업무대행비가 완납되기 전에 조합원 분담금에서 지주조합원 업무대행비 상당액을 업무대행사에 선지급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1조합으로부터 20억9000만원, ○○2조합으로부터 16억5000만원을 각각 2020년 8월부터 12월까지 8회에 걸쳐 업무대행사로 이전시켰다. 그 돈은 고스란히 두 조합의 지주조합원 180명의 부담으로 됐다.
A씨는 조합의 토지 매입 용역업체인 부동산중개업체 '병' 대표 E(57)씨와 짜고, 조합에서 정기적으로 일정액의 토지작업용역비가 '병'으로 지출되면 그 중 A씨가 요청하는 금액을 B씨 명의 계좌로 받을 수 있도록 손을 썼다. A씨는 ○○1조합이 무조건 3개월에 (부가세를 포함해) 1억1000만원씩 '병'에 지급하도록 설계된 계약서를 만들고, 여기에 C씨가 맡겨놓은 조합 직인을 찍었다. 같은 방법으로 ○○2조합으로부턴 무조건 3개월에 2억2000만원이 토지작업 용역비 명목으로 나가도록 했다. 이후 2020년 7월부터 2021년 6월까지 약 1년간 ○○1조합에선 6억6000만원, ○○2조합에선 13억2000만원이 빠져나갔다. A씨는 조합 설립 초기에도 E씨와 짜고 '병'에 지출되던 토지용역비를 B씨 계좌로 돌려받아 쓰고 있었으나 2015년부터 토지작업 성과가 없어 용역비가 지출될 일이 없어지자 이같이 조치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와 B씨는 ○○2조합이 조합 토지와 건물을 담보로 받은 대출금을 자금관리 신탁사가 아니라 조합장 D씨가 관리하고 있던 것을 이용해 그 돈을 B씨의 개인 계좌로 받기도 했다. 이들은 2020년 2월부터 4월까지 7회에 걸쳐 19억원을 받아 사채업자에게 지급하는 등 개인용도로 썼다. 이 시기 A씨와 B씨는 업무대행사 자금을 빼돌려 도박 등 개인용도에 쓰고 자금 반환 압박과 채무변제 독촉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 업무대행사 돈도 다액 횡령
A씨 등은 '갑'과 '을'에 들어온 회사 자금 315억원 상당을 횡령한 혐의도 받았다.
이들은 회삿돈을 '주주임원종업원(주임종) 단기대여금'으로 명목으로 자신들의 개인 계좌에 이체시키는 수법을 가장 많이 썼다. A씨와 B씨는 '을'의 재무이사 F(48)씨를 끌여들여 2014년 7월부터 2021년 6월까지 '을'이 받은 업무대행비 269억2800여만원을 이사회 결의 없이 '주임종 단기대여금'으로 회계처리해 346회에 걸쳐 B씨 계좌로 이체했다. '갑'이 받은 업무대행비 34억500여만원도 2020년 3월부터 2021년 6월까지 13회에 걸쳐 같은 방법으로 횡령했다.
회사 내 다른 임원의 계좌를 횡령에 쓰기도 했다. A씨는 '을' 홍보이사 명의의 계좌를 보관하고 있음을 기화로 해 F씨를 시켜 이사회 결의 없이 홍보이사에 대한 단기대여금 명목으로 회사 자금을 지출하는 방법으로 2016년 1월부터 2020년 5월까지 23회에 걸쳐 8억5870만원을 횡령했다.
유령 직원을 고용해 급여 명목으로도 횡령했다. 이들은 B씨 전처의 통장을 구한 뒤 전처를 '갑'의 직원으로 거짓 등록하고 급여 명목으로 이체해 출금하는 방식으로 2015년 4월부터 2021년 9월까지 94회에 걸쳐 2억2000여만원을 횡령했다.
[서울=뉴스핌] 윤준보 기자 =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방법원 전경 2022.04.20 yoonjb@newspim.com |
재판부는 A·B·C·D·E씨에 대한 공소사실이 모두 유죄로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F씨는 공소장에 '갑'의 허위 직원 급여 지급 범죄에 관여한 것으로 돼 있었으나 재판부가 이 점은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사건 피해 금액이 아주 많고 피해가 회복되지도 않았다"며 "앞으로도 피해가 회복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재판부는 C·D·E씨에겐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200시간을 명했다. F씨에겐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고 16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각각의 범행에 가담하게 된 경위를 참작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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