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리터러시·고강도 업무·기술 노후화·자신감 상실 해결해야
[서울·대전=뉴스핌] 김수진 기자 = # 한 아이를 키우고 있는 김은경(43) 씨는 현재 한 SW기업에서 자율주행 데이터 베이스 구축 업무를 맡고 있다. 김씨는 결혼 전 어린이집 보육교사로 근무하다 결혼과 출산으로 5년 가까이 이른바 '경단녀'로 지냈다. 그러다 서울은평새일센터에서 인공지능과 데이터 구축 교육을 수료하면서 결혼 전엔 상상도 못한 직업을 가지게 됐다. 김씨는 "처음에는 '과연 비전공자인 내가 할 수 있을지 고민됐지만 용기 내 공부하고 현장에서 일하다 보니 자신감이 생겼다"며 "전문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직업인데다 업무방식이 자유롭고 보수도 일반 서비스업보다 높아 다른 경단녀에게도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SW인력난 해결 방안으로 경력단절여성(경단녀)이 주목받고 있다. SW업계 고질병인 인력부족 문제를 경단녀에서 해답을 찾겠다는 정부와 지자체 의지가 강하다.
2020년부터 AI 학습용 데이터 구축 업무에 경단녀들이 대거 유입되기 시작했다. 손쉽게 배워서 경제활동할 수 있다는 인식이 한 몫했다. 실제로 블로그나 유튜브 등에서 "아이 돌보면서 100만원 벌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주부들의 후기를 쉽게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데이터 산업에 대한 여성들의 심리적 벽이 낮아진 지금이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한다. 성인 남녀 간의 디지털 역량 차이는 현실이다. 2018년 기준 시민 디지털 역량은 우리나라 남녀 모두 OECD 평균보다 높았지만, 성인 남녀 간 격차는 OECD 평균보다 큰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은 진로 선택 과정에서 남녀 격차가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성별 디지털 리터러시 차이는 IT 산업 내 남녀 편차로 이어진다. 전체 재직자 중 여성 근로자 비율은 20% 수준에 불과하다. 때문에 데이터에 대한 경단녀들의 관심이 높은 지금 관련 생태계를 건강하게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도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다. 실제로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2020-2024 경단녀 경제활동 촉진 시행계획'을 발표하고 4차산업 관련한 일자리 마련 및 지원에 나서고 있다. 각 지자체는 '새일센터'를 통해 경단녀들의 IT업계 취업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마련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최근 코로나19 장기화로 서비스업에 집중됐던 여성들이 일자리를 대거 잃으면서 SW분야로 눈을 돌리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아예 SW·IT만 교육하는 새일센터도 생겼다. 경기IT새일센터는 메타버스, 앱디자인, SW테스팅, 데이터 활용 등 IT 관련 강의만 진행한다.
출산, 육아 등의 이유로 퇴사한 경력단절여성들의 재취업 문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 정책이 쏟아지고 있으나 본질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비난이 이어진다. [사진=게이이미지뱅크] 2021.07.26 biggerthanseoul@newspim.com |
SW 인력난 해소 대안...경력 경단녀, 기술노후화 막아야
경단녀는 업계가 탐낼 만한 인력군이다. 만성 인력 부족인 IT업계에서는 정부가 이들을 SW 전문인력으로 재교육시켜 투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SW관계자는 "인력 사각지대에 있던 경단녀 시장을 정부도 더는 외면해선 안된다"며 "특히 당장 SW인력난을 해소할 수 있는 몇 없는 대안 중 하나인 만큼 빠른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업무에 대한 적응력이 높다는 것은 장점이다. 한 SW기업 인사관리팀 관계자는 "경제활동을 오랫동안 쉰 경험 때문에 일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다소 걸리는 단점은 있지만 일단 그 시기가 지나면 업무에 대한 이해력과 집중력이 상당하다"며 "데이터나 인공지능 관련한 분야는 아직 미개척 분야인 만큼 업무 열정이 높은 경단녀를 활용하는 편이 기업 입장에서도 더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업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부분 중 하나가 SW업계 경험이 있는 경단녀다. 시장에서 고급인력의 확보가 어려운 데다 신입을 교육하는 데에 드는 비용보다 경력자에게 더 많은 임금을 줘서라도 채용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때문에 만성 인력난에 허덕이는 중소 SW업체들은 여성 개발자 붙잡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사실상 육아휴직이 없다시피 한 중소기업 업계에서 출산·육아 휴직을 보장하고 있는 부문이 바로 SW업계다. 한 SW중소기업 대표는 "1년이든 2년이든 자리를 비워놓을 테니 걱정말고 아이 키우고 돌아오라고 해도 대부분 업무 복귀를 포기한다"며 "이들이 업무를 수월히 진행할 수 있도록 자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만 상당수 그만둔다"고 말했다.
한국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지난 2020년 12월 발표한 'ICT 분야 경력단절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제고방안 연구'에 따르면 3명 중 2명은 동일 분야 재취업을 포기하거나 다른 업종으로 이직한 것으로 나타났다. SW 경력직 경단녀의 동일 분야 재취업 복귀율은 32.5%에 불과하다.
고강도 근무량과 기술노후화가 낮은 복귀율 이유로 손꼽힌다. 특히 기술노후화로 인한 자신감 상실은 경단녀의 사회 복귀를 막는 가장 큰 벽이다. 이종주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산업제도연구팀 연구원은 "4년 전 블록체인 개발자와 지금 블록체인 개발자 시간 당 임금이 100배 정도 차이가 난다"며 "때문에 기술노후화를 극복하지 못하면 시장에서 도태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플랫폼 관련 개발자였던 한 경단녀는 현재 대형마트에서 시간제 근무를 하고 있다. 그는 "업무 시간이 자유로워 보이지만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면 밤샘 근무가 잦아 일과 가정생활 양립이 쉽지 않은 데다, 쉬는 동안 관련 기술이 또 발전해 공부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며 포기 이유를 밝혔다.
[서울=뉴스핌] 김민지 기자 = 1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중부여성발전센터에서 열린 여성 일자리 박람회에서 한 구직자가 채용 정보를 살피고 있다. 2021.10.19 kimkim@newspim.com |
경단녀 IT 활용, 지역경제 활성화 기대도
경단녀를 IT업계에서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디지털 리터러시와 업계 성별 임금 격차가 여전한 만큼 이를 지자체과 공공기관이 적극적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것.
한 인공지능기업 대표는 "공공기관이나 지자체가 경단녀를 대상으로 하는 IT 관련 교육을 실시해 취업에 대한 심리 장벽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를 통한 사회 복귀의 자신감을 회복하고 관련 산업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SW경력직 경단녀를 대상으로 동종업계 재취업 교육프로그램 활성화도 필요하다.
한편 경단녀의 IT 재취업을 통해 지역 경제 활성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일자리 부족 등으로 인구소멸 위기인 전남도, 광주광역시 등에서 경단녀 IT재취업을 통해 인구 유입, 경제 활성화 등의 효과를 거둘 것으로 본 것.
실제로 광주여성새일센터에서 '지역산업 빅데이터 분석가 양성과정'에 참여한 40대 여성들이 광주 계림동에 빅데이터 수집·분석 스타트업을 창업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지난해 6월 경단녀 직업교육훈련센터를 방문해 "취업 지원 대책을 강구해 경단녀 취업 성공률을 높이고 이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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