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대표, 의사결정권자로 참여"
독일 '자문기능' vs 한국 '경영 참여'
[세종=뉴스핌] 성소의 기자 = 공공기관 노동이사제가 국회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한국전력과 인천국제공항공사를 포함한 주요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등 131개 공공기관에서 노동이사를 임명해야 한다.
이미 유럽에서 절반 이상이 노동이사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한국에선 다소 낯선 개념이다.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을 둘러싼 반발과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11일 기획재정부와 국회 등에 따르면 공공기관에 노동이사를 두도록 하는 '공공기관운영법' 개정안이 이날 국회 문턱을 넘었다. 개정안은 공공기관과 준정부 기관 비상임 이사에 3년 이상 근무한 노동자 1명이 포함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 노동이사제란? "근로자 대표도 의사결정권자로 참여"
노동이사제란 근로자 대표가 기업 이사회에 참석해 의결권과 발언권을 갖는 제도다. 이사회에 파견된 노동이사는 노동자 관점에서 의견을 제시하고, 다른 이사들과 동등한 자격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한다. 경영진의 전횡을 감시하고 의사결정 구조의 투명성을 높이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를 공공부문에 선제적으로 도입하는 차원에서 추진하는 것이 '공공부문 노동이사제'다. 지금까지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이사회 구성원은 대통령이나 장관이 주로 임명해왔다. 그러나 법안이 통과되면 앞으로 내부 직원들이 투표를 통해 뽑은 사람이 이사회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독일의 노동이사제 구조 [자료=한국경제연구원] 2022.01.11 soy22@newspim.com |
현재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둔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개정안은 1명 이상의 노동이사를 비상임이사로 두는 내용을 뼈대로 하고 있다. 이사회 구성원이 5명이든 10명이든 이중 1명은 반드시 노동자 대표로 뽑힌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다.
3년 이상 재직한 사람이면 누구나 노동이사에 출마할 자격이 주어지고, 투표에서 과반 이상 동의만 얻으면 된다. 노동조합원뿐만 아니라 비노동조합원, 비정규직 근로자까지 자격 요건만 갖추면 노동이사로 뽑힐 수 있다. 실제로 노동이사를 두고 있는 다산콜센터의 경우 노동이사 2명 중 1명은 비조합원이다.
◆ 평소에는 노동자, 이사회에서는 1명의 결정권자
노동이사는 근로자 신분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이사로 활동해야 한다. 평소에는 상사의 업무지시를 받으며 노동자로 일하다가도 이사회 의결사항이 있으면 다른 이사들과 함께 동등한 자격으로 기관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노동이사제는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였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의 100대 국정과제를 통해 공공기관 지배구조 개선를 위해 2018년부터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논의가 급물살을 탄 건 여야 대선 후보가 공공부문 노동이사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놓으면서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가 먼저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노동이사제 도입에 찬성 입장을 나타냈다.
[자료=여의도연구원] 2022.01.11 soy22@newspim.com |
◆ 자문기능만 하는 독일식 노동이사 vs 한국은 경영까지 참여
노동이사가 갖는 권한과 힘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 이는 각국의 이사회 구조에 따라 달라진다.
독일처럼 기업 이사회가 '경영이사회'와 '감독이사회'로 분리된 경우 노동이사의 권한은 다소 제한적이다. 노동이사는 주로 감독이사회에만 참여하는데, 이곳에선 경영진의 결정사항에 대해 법적 문제를 검토하거나 자문기능을 주로 수행한다.
그러나 단일이사회의 형태를 띄고 있는 한국기업의 경우 노동이사가 갖는 권한은 독일보다 클 수 있다. 독일의 경우 자문기능 수행이 주된 역할이지만, 한국은 노동이사가 실질적인 경영에까지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탓에 경영계에서 노동이사제 도입을 강하게 반대한다. 법안이 기획재정위 안건조정위원회를 통과한 다음 날인 5일 한국경영자총협회과 대한상공회의소를 비롯한 5개 주요 경제단체들은 "공공부문의 노동이사제 도입이 민간기업에까지 확대될 경우 이사회 기능을 왜곡시키고 경영상 의사결정의 신속성을 저하하는 등 경쟁력을 심각하게 저해할 것이 명백하다"고 우려 입장을 나타냈다.
독일의 노동이사제 구조 [자료=한국경제연구원] 2022.01.11 soy22@newspim.com |
노동이사가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개입할 수 있는 만큼 의사결정 속도가 지체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사회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의사결정이 지체될 수 있고, 결과적으로는 공공기관의 경쟁력을 줄이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노동계에서는 이에 대해 '과잉 우려'라고 지적한다. 7~8명이 참석하는 이사회에 고작 1명인 노동자 대표가 표결로 이기기 상당히 어려운 구조라는 얘기다. 또 노동조합원이 노동이사로 출마할 경우 조합원 자격을 정지해야 하기 때문에 일각에서 우려하는 '이사회 내 노사갈등 침투'도 기우라고 지적한다.
김종진 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노동자들이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참여해서 부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데, 사실상 1명의 노동이사가 이사회 표결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특히 공공기관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이기 때문에 오히려 시행 취지가 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공기업 36곳·준정부기관 95곳 노동이사 임명
공공기관 노동이사제가 국회 본회의에 통과되면서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등 총 131곳이 의무적으로 노동이사를 임명해야 한다.
공기업은 직원 정원 50인 이상, 자산 규모 10억 원 이상, 총 수입액 30억 원 이상인 기업 중 자체수입액 비중이 50% 이상인 공공기관을 말하고 준정부기관은 자체수입 비중이 50% 미만인 곳이다.
지난해 4월 기준 공공기관으로 분류된 곳은 공기업 36곳, 준정부기관 95곳이다. 한국전력공사, 한국가스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등을 비롯해 국민연금공단, 도로교통공단 등도 여기에 포함된다(아래 표 참고).
여기에 예금보험공사,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주택금융공사 등 일부 금융 공공기관도 여기에 포함된다. 다만 한국산업은행이나 중소기업은행, 한국예탁결제원 등은 기타 공공기관으로 분류돼 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
soy22@newspim.com